<태양의 후예>는 한국과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시청 흐름을 방해하는 간접광고(PPL, Product Placement) 때문에 시청자들로부터 ‘광고의 후예 아니냐’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제작사 NEW에 따르면, 사전제작으로 판매한 간접광고만 30억원이라고 한다. 시청자들의 불만에도 PPL 매출 상승과 함께 광고 효과가 컸기 때문에 제작사와 광고주는 크게 웃었다. 특히 드라마 방영 이후 라네즈 BB쿠션과 다니엘 웰링턴 시계의 일일 판매량이 각각 10배, 8배가 증가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 정관장, 서브웨이, 2S Candle 같은 광고주들도 광고효과를 톡톡하게 누렸다.

그러나 방송사업자들은 ‘대목’을 놓쳤다. 와우몰 김양미 대표이사는 25일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IPTV방송협회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최고시청률이 38.8%이고, 포털에서 28억 클릭이 나오고, 아모레의 투톤 립바는 3월 판매량이 556% 증가했다. 25억원 규모다. 그렇다고 이게 우리에게 돈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실시간방송과 VOD, 그리고 방송 하이라이트 영상 클립에 ‘방송콘텐츠 연동형 T커머스’를 붙여서 매출을 발생시켰다면 PPL 관련 매출도 늘었을 것이다. 그리고 상품 제조사와 주연배우만이 챙겼을 수익을 드라마제작사, 방송사, 유료방송사업자, T커머스 사업자 또한 나눠가졌을 것이다.

▲2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는 <연동형 T-커머스 발전 방안: 방송콘텐츠 연동형 T-커머스의 현안과 대안> 세미나가 열렸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IPTV방송협회가 주관했다. 사진은 세미나 시작 전 모습. (사진=미디어스)

방송에 나온 간접광고 상품을 온라인에서 판지는 꽤 오래됐다. 특히 중국에서는 알리바바가 온라인에 TV프로그램 전용관을 만들어 스타들이 입고 나오는 옷과 촬영지 관광상품 등을 판다. 이를 T2O(TV to Online) 서비스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서비스를 하는 곳이 많다. 그러나 방송사가 직접 수익모델을 성공시킨 적은 없다. MBC 매체전략국의 권철 신매체개발부장이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MBC는 2007년부터 방송콘텐츠 연동형 T커머스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무한도전>의 달력과 음반을 판매하는 수준이었다. 2010년 KT 올레TV의 실시간방송, LG유플러스의 VOD서비스에 연동형 T커머스를 시험하기도 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보급률이 80%를 넘어서고, TV 시청과 동시에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시청자들이 늘어나고, 간접광고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방송사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방송광고 시장이 침체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매출이 늘고 있는 협찬과 PPL을 활용해 수익모델을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양방향광고에 대한 거부감이 줄고, 한국과 중국에서 드라마 PPL 상품의 구매가 급증한 것도 방송사가 직접 PPL 팔이에 나선 이유다. MBC에 따르면 KT와 유플러스와 진행한 연동형 T커머스 시험방송을 분석한 결과, 실시간방송 시청 중 트리거에 대한 반응률은 10% 안팎, VOD 시청 중 트리거 반응률은 7.58%가 된다.

방송사들은 현재 PPL을 직접 팔거나 수수료를 받기 위한 수익모델 개발에 나서고 있다. PPL을 사전에 기획하고, PPL 트리거(프로그램 화면에 갑자기 광고용 화면을 보이게 하는 광고 기법)를 유료방송과 웹에 띄워 매출을 발생시킨 뒤 수수료를 챙기려는 것이다. 문제는 방송과 유료방송과 웹에서 곧장 상품구매로 이어지도록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상용화하는 것인데 다행히도(?) 규제공백 덕에 방송사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시청자를 대상으로 말이다.

JTBC는 KT, 티브로드, 씨앤앰 등 유료방송플랫폼을 통해 내보내는 인기프로그램에 트리거광고를 심고 시청자의 거부감을 없애고 있다. JTBC 디지털기획팀 이상권 과장에 따르면 이 방송사는 <냉장고를 부탁해> <비정상회담> <히든싱어> <슈가맨> <썰전>의 본방송에 트리거로 쿠폰, 투표 이벤트를 진행했고 향후 트리거 광고로 PPL 상품광고를 진행할 계획이다. 5월 방영을 앞둔 <히트메이커>가 그 시작이다. ‘미디어허브’라는 대행사는 KBS, MBC, CJ E&M, JTBC 등 방송사업자는 물론 KT와 네이버 같은 플랫폼사업자, 20여개 연예기획사와 손잡고 네이버 ‘TV속 이 상품’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미디어허브는 삼성전자, LG유플러스와도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MBC 매체전략국의 권철 신매체개발부장이 세미나에서 발표한 MBC 연동형 T커머스 사업계획안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방송사들은 특정한 시청행태를 유도하면서 동시에 규제공백인 VOD와 웹에서부터 T커머스 사업을 하려는 모습이다. MBC 권철 신매체개발부장이 발표한 ‘MBC 연동형 T커머스 사업계획안’을 보면, MBC는 △1단계, TV를 보면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세컨드스크린 서비스를 런칭해 TV와 스마트폰의 동시이용을 유도하고 △2단계, OTT서비스인 ‘푹’을 통해 유통하는 VOD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 제공하는 클립영상에서부터 T커머스 서비스를 시작하며 △마지막으로, IPTV와 디지털케이블의 실시간방송에 연동형 T커머스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방송사, 유료방송플랫폼, T커머스사업자들은 정부의 지원까지 바라고 있다. 이날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정동훈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2003년부터 준비를 시작한 T커머스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규제 위주의 정책 때문”이라며 “정부의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편성고시를 개정해 심야방송시간의 10% 이내 또는 UHD 콘텐츠와 외주제작 프로그램 중 오락 장르에 방송콘텐츠 연동형 T커머스 서비스를 허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방통위와 미래부에 “1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시범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방송사들이 미디어렙법(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의 취지를 무력화하고 있고, 유·무료 VOD와 방송프로그램을 재편집한 웹콘텐츠에 PPL 트리거광고를 삽입하려는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규제기관인 방통위는 손을 놨다. 오히려 ‘진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6일 방통위와 미래부가 세미나를 주최한 목적 또한 ‘사업자들의 만남’이었다.

방통위 이헌 방송광고정책과장은 이날 미디어스에 “T커머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방송사와 대행사가 만나는 장을 만들려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헌 과장은 “정부가 PPL을 장려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T커머스가 왜 실패했는지 보고, 지금 스마트폰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기 위해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축사를 통해 “법적,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상황”이라며 “미래부 등 관련부처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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