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미디어스에 새로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주의 BEST : 진정한 ‘나를 돌아봐’가 여기 있다
MBC <위대한 유산> (9월 28일 방송)

명절 때 가족과 함께 TV를 보면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연예인 가족들이 나란히 한복을 입고 출연해서 서로의 장점을 칭찬하거나 사이좋게 노래 부르는 수많은 ‘가족애 과시형’ 추석특집 프로그램이 연이어 방영되기 때문이다. 화면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우리 가족은 분명히 말도 없고, 서로 속 얘기도 잘 털어놓지 않으며, 다정하게 손잡고 노래를 불러본 기억은 평생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봤다. 이렇게 어색한 가족이 과연 우리뿐일까. TV 속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낯설거나 불편한 감정은 우리 가족만의 것일까.

그런 점에서 MBC <위대한 유산>의 기획 의도는 참으로 반가웠다. 오히려 가족이 남보다 어색하고 심리적 거리가 멀 수 있다는 전제조건을 단 <위대한 유산>은 김태원, 윤보미, 산이가 그동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특히 지적 수준이 3세인 중학생 아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 아버지 김태원과, IMF로 이민을 간 후 줄곧 학교 청소 일을 해온 아버지와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지 못한 아들 산이의 이야기는 인위적인 연출이 개입되지 않은 소박함 그 자체였다.

▲ 9월 28일 방송된 MBC 추석특집 <위대한 유산>

갑작스레 가족과 함께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출연자 입장에서도 어색하고, 시청자 입장에서도 오그라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위대한 유산>은 임팩트 있는 오프닝을 통해 ‘왜 그들이 당장 가족에게 달려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가’를 충분히 납득시켰다. 제작진은 건강검진을 핑계 삼아 출연자들의 평소 생활 패턴을 조사했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대략적으로 산출했다. 그 결과, 김태원과 산이에게 남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각각 6개월과 1개월이었다.

<위대한 유산>에 화려한 이벤트는 없었다. 그저 가족의 생활을 일부 공유할 뿐이었다. 산이는 아버지가 일하는 학교에 가서 함께 청소를 했고, 밤늦게 소주를 마시면서 그동안 차마 꺼내지 못했던 진심을 이야기했다. 김태원은 “아들의 주제가”로 만들었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무대에서 아들과 함께 연주했다.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낸 공간은 전혀 낯선 장소가 아니라, 부모의 직장이었다. 덕분에 가족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진심으로 전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부모님의 직장에 한 번이라도 가봤는가. 우리는 자식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려고 노력해봤는가. <위대한 유산>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나는 얼마나 가족에 대해 알고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런 게 바로 진정한 ‘나를 돌아봐’다.

이주의 WOSRT : 쇼는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KBS <전무후무 전현무 쇼> (9월 28일 방송)

전현무가 3년 만에 ‘친정’ KBS에 복귀했다. 이것이 KBS <전무후무 전현무 쇼>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게 다라는 얘기다. 전현무는 오프닝에서 “역대 지상파, 케이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예능”이라고 자랑했다. ‘볼 수 없었던’ 예능인 건 맞지만 결코 ‘재밌는’ 예능은 아니었다.

이계인과 김흥국에게 장수 예능인으로서 롱런의 비결을 묻는 ‘긴급대담’, 9명의 게스트를 즉흥적으로 섭외해서 어떤 것에도 리액션이 없어야 하는 게임을 진행한 ‘전무후무전현무념무상대회’, 저출산이라는 뉴스 주제는 증발되고 ‘빠로레’ 댄스만 남았던 ‘전현무의 1인 뉴스’는 전적으로 전현무의 이름에만 기댄, 시간이 갈수록 산으로 가기 바쁜 코너들이었다.

▲ 9월 28일 방송된 KBS 추석특집 <전무후무 전현무 쇼>

왜 하필 이계인과 김흥국에게 ‘장수 예능인의 비결’을 물어야 했을까. 이계인, 김흥국이 걸어가는 ‘게스트’ 예능인의 길과 전현무가 지향하는 ‘진행자’ 예능인의 길은 엄연히 다르다. 게스트 섭외부터 핀트가 어긋나다 보니, 토크의 방향성을 잃은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전무후무전현무념무상대회’는 ‘유상무상무상’ 같은 재밌는 말장난을 드러내고 싶어 만든 코너였을 뿐, 재미도 감동도 없는 코너였다. ‘표정의 변화가 있으면 즉시 귀가한다’는 룰만 존재한 채 모든 것을 전현무와 게스트의 재량에 맡겼기 때문에,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게스트들이 활약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물론 <전무후무 전현무 쇼>가 얻은 것도 있다. 전현무는 아직까지 즉흥적으로 섭외한 9명의 게스트를 장악할 수 있는 리더십, 예능과 시사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예능인으로서 전현무의 매력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주변인들에게 깐족대거나 유치한 공격을 하다가 구박받고 놀림 받는 순간이다.

사실 전현무가 ‘다작형 MC’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히든싱어>를 제외하고는 단독 MC로 예능을 진행해본 경험이 없다. <히든싱어>에서도 ‘깐족 진행’의 묘미를 살리긴 했으나, 실제로는 오디션 진행자의 역할에 가깝다. 결국 단독으로 토크쇼나 리얼 버라이어티를 진행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라는 점을 <전무후무 전현무 쇼>를 통해 입증했다. 이것이 이번 파일럿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이가온 / TV평론가
웹진 텐아시아와 잡지사 하이컷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 회사를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TV를 놓지 못하고, TV평론으로 밥벌이하는 30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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