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미디어스에 새로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주의 BEST: 자꾸 보고 싶은 신디의 눈물 <프로듀사> (6월 19일 방송)

냉정하게 얘기해서 <프로듀사>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스토리가 매력적이진 않았다. 박지은 작가의 전작인 <별에서 온 그대>, <넝쿨째 굴러온 당신>, <내조의 여왕> 등을 떠올려보면, <프로듀사>의 만듦새는 분명 허술했다. 더 냉정하게 얘기하면, 캐릭터 자체가 아니라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힘에 전적으로 의존한 드라마였다.

대학 동아리 선배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에 합격한 백승찬(김수현)은 입사 직후 8년 선배 탁예진(공효진)에게 마음이 뺏겼다. 백승찬의 순정은 그를 방송국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직장에서 똑 부러지게 일 잘하는 탁예진은 방송국만 나오면 “난 아무것도 몰라요”를 외치는, 자신을 좋아하는 두 남자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여자가 됐다. ‘로코의 여왕’ 공효진이었으니 그나마 러블리한 탁예진이 될 수 있었다.

▲ 19일 방송된 KBS <프로듀사>

‘예능국’에 초점을 맞췄던 <프로듀사>는 회를 거듭할수록 전형적으로 ‘예능국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로 빠졌다. ‘뮤직뱅크’ PD도, ‘1박 2일’ PD도 ‘연애인’으로 전락하는 동안, 톱가수 신디만은 꿋꿋하게 ‘연예인’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백승찬-탁예진-라준모(차태현)가 흔하디흔한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고백할 타이밍을 찾는 동안, 신디(아이유)는 백승찬과의 러브라인을 가지고 가면서도 나 홀로 톱스타의 서사를 쌓아갔다.

톱스타 특유의 까칠함을 최고조로 이끌어 낸 신디는 지난 11회, 톱스타의 무너진 민낯까지 보여줬다. 모두가 등을 돌린 와중에 자신을 똑같이 대해준 <1박2일> 제작진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툭-하고 터져버린 울음. ‘눈물이 흐른다’가 아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늘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던 신디는 가녀린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또 울었다.

평소 드라마 여주인공의 눈물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신디의 오열신은 자꾸만 보게 된다. 특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1박2일> 제작진을 쳐다보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우는 모습은 볼 때마다 울컥한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외로움이 한꺼번에 터지는 스물 셋 톱스타의 모습을 아이유만큼 잘 표현하는 배우가 앞으로 또 있을까. 극 초반 톱스타의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캐스팅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나의 안목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아이유, 언니가 미안해요. 좀 많이.

이주의 WORST: 최진기 없었으면 어쩔 뻔? <썰전> (6월 25일 방송)

<썰전>의 두 번째 코너였던 ‘예능 심판자’가 물러나고 ‘썰쩐’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썰쩐’은 시청자 눈높이 맞춤 경제뉴스를 표방한 코너다. ‘썰쩐’만 보면 어디 가서 ‘경제 상식 좀 아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게끔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첫 번째 주제는 순하리 소주 열풍이었다. 방송이 끝난 후, 기억에 남는 경제 상식은 딱 세 가지였다. 낮은 도수 열풍이 아니라 단맛 소주 열풍이고, 이는 대한민국 불안 심리와 연결된다. 롯데주류가 후발주자임에도 업계를 리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류업계의 오랜 문제였던 독점이 단맛 소주 덕분에 경쟁 체제로 바뀌고 있다.

▲ 25일 방송된 JTBC <썰전>

20분짜리 방송치고는 꽤 유용한 상식들이 많이 나왔다. 문제는, 이 모든 정보가 최진기 강사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김구라, 서장훈, 장도연 그리고 게스트 김형석까지 스튜디오에 있었지만, 상식다운 상식 또는 정보다운 정보를 내놓은 건 최진기뿐이었다.

모두가 최진기처럼 전문적인 상식을 내놓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최진기가 지식을 툭 던져놓아도 공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거나 살을 덧붙이면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출연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문제다. 최진기가 “낮은 도수 열풍이 아니라 단맛 소주 열풍이다. 단맛을 찾는다는 건 대한민국 불안 심리와 연결돼 있다”며 아무리 화두를 던져도 받아주는 이가 없으니 활약이 빛바래고 말았다. 경제 현상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한 흥미로운 시각은 최진기 입가에만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최진기쌤이 나 홀로 상식을 전파하는 동안 ‘결벽증’ 서장훈은 단맛 소주병의 세균에 대해 걱정했고 김형석은 “술만 마시면 실성을 해서 곡을 못 쓴다”는 주사를 털어놓았다. 방송 전부터 일반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대변하겠다고 공표했던 장도연은 단맛 소주를 시음하는 것 말고는 거의 한 일이 없었다.

결국 썰전 첫 회는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나 버렸다. 최진기의 강의와 나머지 출연자들의 술자리 농담이 마구 뒤섞여 버린 까닭이다. 어찌됐건 여전히 JTBC를 대표하는 ‘예능’인데 시청자들에게 받아주는 이 없는 ‘인강’(인터넷 강의)을 듣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이가온 / TV평론가
웹진 <텐아시아>와 잡지사 <하이컷>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 회사를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TV를 놓지 못하고, TV평론으로 밥벌이하는 30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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