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미디어스에 새로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주의 BEST: 김현숙만이 만들 수 있는 명장면
MBC <진짜 사나이2> (8월 30일 방송)

제작진조차 ‘사상 초유의 재검 요청’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몸무게 축소가 아닌 확대를 위해 재검을 요청한 사람은 남녀 군인, 남녀 연예인을 통틀어 김현숙이 최초일 것이다. MBC <진짜 사나이2> ‘여군 특집’이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면서 각종 명장면이 탄생했지만, 몸무게 재검을 요청한 사례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김현숙만이 만들 수 있는 ‘단 하나의’ 명장면이다.

“여배우가 50kg 넘으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에서 대부분의 여자 연예인들은 키와 상관없이 50kg이 넘지 않는 몸무게를 포털 사이트에 등록한다. 대중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막돼먹은 짓’을 할 때, 김현숙은 무려 59kg이 나왔음에도 “내가 나를 아는데, 이 몸무게는 대학교 때나 봤던 몸무게”라며 재검을 요청했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는 이유로 38년 동안 아예 포털 사이트에 몸무게를 공개하지 않았던 김현숙은 첫 번째 판도라의 상자를 정말 화끈하게 열어젖혔다.

▲ 8월 30일 방송된 MBC <진짜 사나이2>

김현숙은 입대 전날 소고기를 섭취하고 입대 날 아침 소고기 국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다. 그리고 신체검사를 위해 체중계에 올라선 그녀의 몸무게는 간호장교에 의해 59kg으로 기록됐다. 김현숙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3kg도 아니고, 해도 해도 이건 뭐 앞자리 숫자가 달라서”라며 급기야 몸무게 재검을 요청했다. 절대 희미한 미소조차 보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던 간호장교마저 ‘동공지진’에 이어 웃음을 참지 못했다. 결국 ‘김현숙의 몸무게는 59kg이 아닌 69kg으로 정정됐다.

아무리 걸 그룹 멤버가 아니더라도 여배우라면 자신의 신체사이즈에 민감할 텐데, 10kg이나 늘어난 김현숙의 표정은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보였다. 본격 입대도 하기 전에 몸무게로 웃기는 김현숙은 배우이기 전에 타고난 코미디언이다. 어디 몸무게뿐인가. 육군 훈련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뭐 또 이번에 캐리어나 질질 끌고 갔다가 힘들면 질질 짜다가 뭐 그러고 오겠지”라는 네티즌의 예상 반응을 읊어대던 김현숙은 “그래서 전 백팩을 가지고 왔습니다”라며 ‘진짜 군인 정신’을 보여줬다. 영애씨는 막돼먹었지만, 현숙씨는 절대 막돼먹지 않았다.

이주의 Worst: 어린이 활용의 가장 나쁜 예
JTBC <내 나이가 어때서> (9월 1일 방송)

“보증 한 번만 서 주라. 일주일 안에 다 해결할 수 있어”
“명품백 하나 사놓으면 재테크 된대”

언뜻 MBC <세바퀴> 출연자들의 즉흥 상황극 대사 같기도 하고, MBN <속풀이쇼 동치미>의 중년 연예인들이 흔히 내뱉는 멘트 같기도 하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대사들은 키즈 토크쇼 JTBC <내 나이가 어때서>에 출연하는 9세 어린이들의 입에서 나온 표현들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의 김미연 PD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혀 대본을 외우게 하지 않았다. 상황극 또한 대사 없이 상황에 대한 설명만 주었을 뿐, 모든 것은 아이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이런 반응(대본 암기한 것 아니냐는)을 보이신다는 건 아이들이 말을 정말 잘해서가 아닐까”라고 해명했다. 백 번 양보해서 제작진이 대본을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황극의 구체적인 주제를 정한 주체는 분명 제작진이다.

게스트로 출연한 정준하는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고민을 들고 나왔고, 7~9세 어린이 돌직구 위원들은 상황극을 통해 정준하의 고민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제작진이 어린이 위원들에게 제시한 상황극은 ‘20년 지기 친구가 보증을 서달라고 할 때’와 ‘아내가 생일 선물로 명품백을 사달라고 할 때’였다. 왜 하필 보증이고, 명품백이었을까.

▲ 9월 1일 방송된 JTBC <내 나이가 어때서>

아마도 제작진은 좀 더 자극적인, 혹은 예능적인 재미를 원했던 것 같다. 9살짜리 정지훈 위원은 “보증 한 번만 서주라. 일주일 안에 다 해결할 수 있어”, “이번에 재기 못하면 우리 식구들 다 노숙자 행이야”처럼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에나 나올 법한 막장 대사를 내뱉었다. 고가의 명품백 선물을 요구하는 아내 역을 맡은 9살짜리 김태린 위원은 “명품백 하나 사놓으면 재테크도 된대. 나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나야, 명품백이야?” 같은, 소위 ‘된장녀’를 연상케하는 대사를 내뱉었다.

어린이 입에서 ‘보증’, ‘명품백’, ‘재테크’ 같은 표현들이 나오는 것을 여과 없이 방송에 내보내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부정적인 시선을 끄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것”이라고 해명하는 제작진의 이중적인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른의 고민을 어린이의 시각에서 해결한다는 취지 자체는 좋다. 그러나 어린이의 허를 찌르는 솔직한 입담을 보는 것과 어른 흉내를 내는 어린이를 지켜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자는 재밌는 예능이 될 수 있지만 후자의 경계로 들어서는 순간 굉장히 불편한 예능이 된다.

돌직구 위원들을 이끌고 가는 어른 MC들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다. 한 어린이가 자신과 결혼해달라는 여자친구가 5명이나 있는데 거절을 못했다고 말하자, MC 이휘재는 “저는 유치원 원장 딸을 선택해서 편하게 유치원을 다녔다”며 위풍당당하게 노하우를 전수했다. 아무리 예능이라지만, 어디까지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른들의 고민 해결보다 수위 조절이 더 시급하다.

이가온 / TV평론가
웹진 텐아시아와 잡지사 하이컷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 회사를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TV를 놓지 못하고, TV평론으로 밥벌이하는 30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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