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_ 과거 텐아시아, 하이컷 등을 거친 이가온 TV평론가가 미디어스에 새로 연재하는 TV평론 코너 <이주의 BEST & WORST>! 일주일 간 우리를 스쳐 간 수많은 TV 콘텐츠 중에서 숨길 수 없는 엄마미소를 짓게 했던 BEST 장면과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WORST 장면을 소개한다.
이주의 BEST: 오! 나의 최 경장님
tvN <오! 나의 귀신님> (8월 21일 방송)
<오! 나의 귀신님> 15회는 온전히 임주환의 것이었다. 기나긴 사투 끝에 악귀에서 해방됐으나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스스로 낭떠러지 밑으로 몸을 던졌던 최 경장(임주환)의 엔딩씬은 <오! 나의 귀신님>을 통틀어 가장 몰입도 높은 1분이었다. 짧게 한숨을 쉰 뒤 낭떠러지 아래로 투신하던 순간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명장면이었다.
오로지 눈빛만으로 선한 최 경장과 악귀를 표현해 낸 임주환에게 <오! 나의 귀신님>은 남다른 작품이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임주환의 배우 인생은 <오! 나의 귀신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 나의 귀신님> 후반부는 임주환의 드라마였다. 최 경장과 강은희(신혜선)는 뺑소니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 최 경장과 신순애(김슬기)는 살인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 그리고 최 경장과 나봉선(박보영)은 신순애를 매개로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하다못해 파출소의 동료들마저도 최 경장과 투샷을 이루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모든 인물이 최 경장과 얽히고설키면서, <오! 나의 귀신님>은 로코물에서 스릴러물로 빙의됐다.
▲ 8월 21일 방송된 tvN <오! 나의 귀신님>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최 경장은 자신의 스토리를 쌓아갔고, 나봉선-강선우(조정석) 러브라인에 절대 밀리지 않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깡마른 몸매와 해사한 얼굴, 소년 같은 미소는 그동안 임주환이라는 모델이자 배우가 가진 장점이었다. 임주환은 자신의 장점을 버리기보다, 오히려 그 장점을 극대화시키면서 더욱 섬뜩한 악귀를 완성해냈다. 최 경장이 해맑게 씨-익 웃다가 음료수병을 자동차 앞 유리에 던질 때, 찰나의 순간 변하는 그의 얼굴은 <오! 나의 귀신님>이 발굴한 가장 빛나는 보석이었다.
그동안 임주환은 대표적인 모델 출신 꽃미남 배우였다. <탐나는도다>에서 웬만한 꽃미남도 소화하기 힘든, 이마 훤히 드러나는 갓을 제 옷처럼 소화하면서 ‘갓주환’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임주환은 그 이후로도 한동안 ‘꽃미남’이라는 타이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오로지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작품은 <오! 나의 귀신님>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말 그대로, 인생 드라마. 그가 온 몸으로 표현한 죄책감은 오래도록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을 것이다. 그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배우 임주환의 차기작을 하루 빨리 만나고 싶다.
이주의 WOSRT: 조영남 씨, 언제쯤 나를 돌아보실 거예요?
MBC <라디오 스타> (8월 26일 방송)
<라디오 스타>는 격의 없이 막 던지는 예능의 아이콘이고, MC들은 까칠한 공격형 게스트를 환영한다. 그래야 탁구처럼 맛깔나게 주고받는 토크의 묘미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영남은 MC에게도, 시청자에게도 굉장히 불편한 게스트였다. 오죽하면 ‘독설’ MC 김구라마저 “모든 게 어떻게 시비조세요?”라고 한숨을 쉬었을까.
흡사 회식자리에 참석한 대선배,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꼰대’를 연상케 했다. MC들에게 삿대질하면서 얘기하는 것은 기본, 70분 내내 존댓말은커녕 “야”, “너” 같은 호칭을 스스럼없이 사용했다. 다른 게스트가 토크할 때 갑자기 주스를 테이블에 붓는 돌발행위는 그나마 “예술 행위”라고 포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놓인 음료수 병에 턱을 괴고 앉거나, 아예 뒤돌아 앉는 모습은 예능이라는 보호막으로도 커버할 수 없는 불성실함이었다.
▲ 8월 26일 방송된 MBC <라디오 스타>
여성 관련 토크에서도 조영남의 자유분방함을 넘은 불편함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조영남은 트로트가수 조정민의 얼굴을 보고 단번에 쎄시봉 콘서트 게스트로 수락했다고 했다. 김구라가 “그러면 배우를 캐스팅하지 그랬냐”며 농담조로 묻자, 조영남은 “난 차라리 그러려고 했지. 아주 예쁜 여자가 무대에 서면 보기 좋을 거 아냐”라고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그의 입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동안, 그의 두 손은 여성의 몸매를 표현하느라 바빴다.
이날 녹화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최연소 출연자인 규현이었다. 규현과 조영남의 관계는 MC와 게스트가 아닌, 대선배와 막내에 가까웠다. 김구라, 윤종신, 김국진에게도 수시로 공격형 답변을 던졌지만, 유독 규현에게는 ‘삿대질+너 호칭+억지 트집’ 콤비를 날리며 규현을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조영남에게 나이란 공격하기 가장 쉬운 빌미였던 것일까.
최근 발생한 <나를 돌아봐> 사퇴 논란에 대해 규현이 “젊은 세대가 봤을 땐 좀 놀란 사건이었다”고 운을 떼자, 되레 “그럼 우린 무슨 세대야?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세대 나누는 게) 웃기는 거지”라고 받아쳤다. 예능 MC가 대본에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님에도, 규현이 조정민에게 ‘H.O.T. 멤버 중 누구를 좋아했었냐’고 묻자 조영남이 갑자기 삿대질을 하면서 “야, 질문에 있었냐? 없는데 네 맘대로 질문하면”이라고 면박을 줬다.
제작진은 애써 “질문에 있던 거야?”라고 표현을 순화해서 자막으로 내보냈지만, 그렇다고 조영남의 불편함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청자들은 언제까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보호막 아래서 막말을 던지는 게스트를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조영남이 나를 돌아보는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이가온 / TV평론가
웹진 텐아시아와 잡지사 하이컷을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 회사를 퇴사한 후에도 여전히 TV를 놓지 못하고, TV평론으로 밥벌이하는 30대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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