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9월 11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 WM7 프로레슬링 특집

4년 전 WM7 프로레슬링 특집의 마지막 장면. 유재석이 톱 로프에서 몸을 날려 정형돈에게 날아들면서 경기는 끝났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지만, 유재석과 정형돈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한참이나 일어나지 못했다.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주던 두 남자의 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실 그 장면이 방송되기 전 제작진이 미리 공개한 그들의 사진만 보고도 눈물이 핑 돌았다. 벌써 4년이나 지났지만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기억이 생생한, 이 글을 쓰면서도 또 닭살이 돋는 장면이다.

<무한도전> 400회가 갖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이었다. 사실 9년이 넘는 긴 시간을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프로레슬링을 준비했던 1년 동안 고생 많았다고, 충분히 잘 해냈다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네가 애쓴 거 다 안다고 말하는 듯한 유재석과 정형돈의 손.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 그것이 <무한도전>이 9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무한도전>의 기본 모토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도전’이다. 지하철과 달리기 대결을 하고, 목욕탕 물을 퍼내고, 서울에서 방콕 여행을 즐기고, 쪽대본 드라마 촬영을 감행했다. 때로는 프로레슬링, 봅슬레이, 조정 특집 같은 장기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무모한 도전이나 용감한 장기 프로젝트보다 사소한 순간들이 귀하게 느껴졌다. 인터넷에 <무한도전> 검색만 해도 나오는 ‘레전드 도전’이 아니라, <무한도전>을 꾸준히 지켜본 사람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나만의 명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라디오스타’ 특집 때 <정오의 희망곡> 진행을 맡은 정준하는 도시락 배달 코너를 준비했다. 일일 리포터로 나선 멤버들은 끼니를 제 때 챙겨먹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떡볶이가 먹고 싶은 임산부를 위해, 권고사직을 당한 후 카페에서 일했으나 다시 백조가 된 청취자를 위해 직접 도시락을 배달했다. 음식만 전달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단한 인터뷰는 아니었다. 일자리를 잃은 청취자에겐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다독여줬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임산부에겐 태명을 물어봐줬다. 청취자들이 원했던 건 도시락이 아니었을 것이다. 도시락을 함께 먹으면서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런 사람이었다.

▲ 지난달 20일 방송된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특집 때 '정오의 희망곡'진행을 맡은 정준하는 도시락 배달 코너를 준비했다. 일일 리포터로 나선 멤버들은 끼니를 제때 챙겨먹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김밥이 먹고 싶은 임산부를 위해 직접 도시락을 배달했고 음식을 같이 나눠먹으며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섯 남자들이 하루아침에 그런 존재가 된 것은 아니다. 직접 만든 달력을 배달해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에 귀 기울였고, ‘만 원으로 최고의 수익 거두기’라는 미션을 잊은 채 가난한 대학생에게 머리띠를 선물했으며, 장난삼아 한 내기로 만든 소시지 빵을 수능을 막 끝낸 수험생들에게 나눠줬다. 달력을, 머리띠를, 소시지 빵을 건네받은 시민들에게 <무한도전>은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장기 프로젝트가 <무한도전>의 기둥이라면, 이런 작은 순간들은 마루를 지탱하는 장판 한 조각 한 조각이다. 여섯 남자들이 9년 넘게 <무한도전>이라는 집에 오랫동안 앉을 수 있었던 건 이 조각들이 모인 덕분이고, 그 조각들의 대표가 바로 형광팬 캠프에 참가한 60명들이다. 팬들을 초대해 1박 2일 캠프를 진행하고, 그것으로 3주 방송분량을 뽑아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대한민국에 또 있을까.

물론 형광팬 캠프의 하이라이트는 여느 캠프처럼 장기자랑 시간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았던 시간은 밤에 다 같이 둘러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때였다. 단순히 팬들이 열광하는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들보다 조금 더 인생을 살아 온 선배로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과 진심이 담긴 위로를 해주는 여섯 남자들이었다. 무엇이든 도전하고 그 과정에서 좌절할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평균 이하의 여섯 남자들이 9년 동안 우리들에게 건넸던 따뜻한 말 한마디. 이제는 우리도 꼭 말해주고 싶다. 잘했다고, 애썼다고,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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