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동아일보 1면 기사들. 이 정도면 '맹공'도 아니고 '맹폭'이다.

2000년 10월 25일, 과거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박정희 정부 시절 해직된 동아일보 기자들이 만든 언론운동 단체)의 일원이었고 훗날 KBS 사장이 되는 한겨레 논설주간 정연주는 이렇게 적었다. “신문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는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은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는 세습 사주들이 지배하고 있다.”(칼럼 “한국 신문의 조폭적 행태(2)” 링크) ‘조중동’이란 조어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정연주의 필봉에서 탄생한 것이다.

역사적 개념이었던 '조중동', 이젠 바뀔 때가

그리고 매체지형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오늘 아침 1면들을 비교해보면 남북정상회담 때(2000년)부터 함께 묶여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2001년) 이후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넜던 ‘조중동 13년 카르텔’이 동아일보의 이탈로 인해 깨지고 새로운 질서가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

조선일보·중앙일보·서울신문·문화일보 등이 1면에서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비판하지 않은 신문에 해당한다면, 동아일보·한겨레·경향신문·한국일보는 박근혜 정부의 인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비판한 신문들이다. 말하자면 '조중서문' vs '동한경한'의 구도다.

그런데 이 비판의 방식에서도 동아일보는 다른 중도/진보언론들에 뒤지지 않는다. 한겨레와 한국일보가 드러난 인사의 방식과 그 편중을 문제삼고 경향신문이 이 인사방식에서 ‘박정희 스타일’을 읽어낼 때 동아일보는 허태열의 논문 표절 의혹을 단독으로 까버렸다. ‘김용준 총리 후보’ 검증에서 두각을 드러낸(관련 미디어스 기사 링크) 이후의 동아일보의 새로운 기조가 뜻밖에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의 잇따른 ‘여권 비판’은 고무적인 데가 있다. 한겨레·경향신문·내일신문·프레시안·오마이뉴스 등 진보언론의 영향력이 현실적으로 미미한 상황에서 그들의 비판은 보수정권을 움직이기 힘든 반면 동아일보의 비판은 실제로 정국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용준이 낙마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낀 것도 그것이었다. 그리고 동아일보 역시 새삼 자신의 힘을 느끼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아는 사람만 아는 동아일보의 '과거'

사실 ‘조중동’이라는 조어 자체가 동아일보에겐 모멸적인 것이었다. 이 조어가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1990년대까지 유지되던 ‘4대 일간지’(조선·동아·중앙·한국)에서 한국일보가 급속도로 이탈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아일보의 몰락이었다. 조선일보의 극우성과 중앙일보의 친재벌성과는 사뭇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동아일보가 김대중 정부 시절 다른 두 신문을 따라가게 되면서 오히려 확실하게 ‘3등신문’으로 인지되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다른 두 주류 보수신문과는 비교하기 힘든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단지 ‘민주정부 10년 동안’만 야당지였던 신문이다. 중앙일보는 정신적으로 ‘삼성 계열사’를 벗어나본 적이 단 한순간도 없는 신문이다.

그에 반해 동아일보는 어떤 의미에선 조금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순치되었던 ‘이명박 정부 5년’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건국 이후 대체로 야당지였던 그런 신문이다. 2년 전 시사in에 실린 한 칼럼에서 고종석이 군사정부 시절 “1단 기사나 행간을 통해서라도 시대의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에서 다른 신문들에 앞섰”“한국의 <아사히신문>이 될 수도 있었던 신문”(링크)이라 회고하고 평했던 신문이다. 19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5일간(19~23일)은 아예 사설을 뺀 채 신문을 발행했고,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최초로 보도했던 신문이다. 지난 15년, 짧게는 지난 5년의 전락이 끔찍하다 하더라도 변화의 조짐이 있으면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동아일보의 변화’가 지속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갈린다. 한 일간지 기자는 “젊은 기자들은 대체로 보수언론 중 중앙일보가 가장 ‘센스있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선배 기자들은 동아일보가 가장 ‘힘있게’ 만든다고 평하곤 한다. 동아일보가 여전히 신문이라는 매체의 문법에 충실한 구석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라며 동아일보의 ‘실력’이 아직은 남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

반면 다른 일간지 기자는 “동아일보에 2000년대 초반까지는 괜찮은 기자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2000년대 중반에 모두 나가 버렸다. 지금 시점에서 ‘동아일보의 역사와 전통’이란 것이 문서가 아닌 사내 기풍으로 남아 있을지 심히 의문이다”라고 평했다. 동아일보 사주가문이 이건희 가문과 사돈이 된 후 조선일보보다도 삼성에 더 순치된 언론이 되었다는 것도 문제다. 동아일보의 ‘전략 변경’이 ‘채널A’란 매체의 생존전략에서 나온 만큼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채널A’의 미래에 따라 요동칠 거란 점도 걸리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근본적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존재다. 검증이 지속되고 그것이 정국을 바꿔나갈 때 ‘신이 난’ 동아일보가 이 전략을 지속하거나 가속페달을 밟을 가능성도 있다. 결말이 어찌 나더라도 동아일보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 시대에 박정희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 평했던 타임(TIME)지 기사를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보도했던 그 신문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원할 것이다. 동아일보가 '조중서문'에 맞서는 '동한경한'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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