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말의 힘’이 사뭇 무력하다고 여겨지기 쉬운 시대다. 이는 역설적으로 말을 무기로 휘둘러 제 정파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일 것이다. 아전인수를 위한 편견과 왜곡, 선동이 섞인 아수라장에서 말글은 현실세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데 실패하곤 한다.

그러나 말글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과 그것에 대해 냉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일 것이다. 말글에 영향받는 이들이 있고, 그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존재하는 이상 말글에 대한 평가를 엄정하게 하는 작업은 필요할 것이다. 비평에 대한 비평에 대한 비평의 꼬리 물기가 난무하는 인터넷 시대지만, 이에 미디어스 역시 꼬리 물기에 한 젓가락을 보탠다. 그 대상은 역설적으로 요즘 사람들이 별로 읽지 않는 일간지의 사설 및 기명칼럼이 될 것이다.

모든 평가가 그렇듯이 그 주에 당번을 맡은 기자가 작성하는 이 평가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미디어스는 그 주관성을 흔쾌히 인정한다. 그리고 구미에 맞는 뉴스가 주로 소개되는 이 인터넷 시대에, 주관적 평가가 하나 더해지면서 칼럼 두 편을 더 보게 되고 그 판단 기준을 함께 공유해 보는 일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강변하고자 한다. 앞으로는 매주 월요일을 그 주의 가장 좋았던 칼럼과 가장 나빴던 칼럼을 그렇게 판단한 이유와 함께 소개하면서 출발하게 될 것이다

2월 2주차는 동아일보를 주인공으로 삼아줘도 되는 시기였다. 2월 1주차부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신문과 종편방송을 동원해 김용준 총리지명자를 ‘맹공’하여 그의 사퇴를 견인한 동아일보는 갑자기 ‘신문 같아졌다’. ‘조중동’ 보수언론 내부에서도 ‘맥아리가 없었던’ 이명박 정부 5년 내내의 태도에서 일주일만에 탈피한 것이다.

비판이 영향을 미칠 때 언론은 자신감을 찾게 된다. 동아일보 내부에서도 “지난 정부 때는 우리가 너무했다. 새 정부에서는 (동아일보 보도 기조가) ‘견제와 균형’으로 가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검증이 미친 영향력은 내부 구성원들에게 활력을 주었을 것이다. 과거야 어찌되었든 동아일보가 이 정도의 모습이라도 보여준다는 것은 한국 정치와 언론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동아일보 뿐 아니라 보수언론이 ‘박근혜 인사 및 공약’을 비판하는 방식에서 왜 한국 사회의 보수세력과 민주진보진영의 싸움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불리는지를 알 수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지금 출범하지 않은 정부의 수반으로 최저의 지지율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냉정하게 한번 물어보자. 보수세력은 이 사실에 대해 비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보수언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매체지형의 불균형 때문에, 민주정부의 지지율이 낮아질 때엔 언론이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떠들게 되지만, 보수정부의 지지율은 그 정도로 낮아지더라도 ‘완급조절’을 하면서 훈수를 둘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뉴미디어의 성장은 보수언론 중심의 매체지형도를 바꿨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는 방송이 많이 중립적으로 오면서 어떤 균형점을 찾는 듯 했다. 참여정부 때는 ‘탄핵 국면’ 등에서 민주정부에 너무 편향적이었다는 논란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방송을 장악’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이미 ‘지지율이 낮아도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는 방법’의 체계화를 완료하고 후임자에게 정권을 넘긴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정권 초기의 촛불시위 이후 그들이 방송장악과 민간인 불법사찰 등을 통해 만들어낸 질서가 그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심지어 경제민주화 문제에서까지 중도층과 야권세력 일부의 지지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이 영역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뭔가를 바꾸어 보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국정원 직원 선거개입 논란과 그 이후 수사상황을 보면 앞으로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고쳐질 리가 만무하다는 느낌이다.

보수언론 역시 이 지점에서 공모자다. 그들의 ‘박근혜 당선인 비판’ 역시 민주주의에 일정 부분 공헌하기는 하지만 (동아일보는 조선일보가 자사의 ‘김용준 검증 보도’를 비판하자 ‘민주주의의 기본’을 뒤집는다고 비판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질서’를 건들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기득권의 비판 시늉’일 뿐이다.

▲ 지난 8일자 동아일보 박성원 정치부장의 칼럼

그들이 ‘민주정부 10년’의 기억을 활용하는 방식 역시 그렇다. 민주정부의 ‘문제점’들을 더 크게 부풀려 그걸 먼저 비판하고, 그에 입각하여 박근혜 당선인에게 무언가를 조언하는 식이다. 조선일보 정우상 논설위원이 지난 4일자 칼럼 <홍위병의 추억, 그리고 유혹>에서 한 바도 그러하다. 참여정부 시절 노사모와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참여와 개입 중 부작용을 일으킨 부분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그들의 활동이 ‘정미홍’과 ‘변희재’의 그것에 비견할 정도란 말인가? 하지만 이런 칼럼을 보면서도 ‘보수진영의 문제’를 지적한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는 균형잡혔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동아일보 박성원 정치부장의 8일자 칼럼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 Worst에 선정되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동아일보에는 더 한심한 내용의 칼럼도 있었다. 가령 김순덕 논설위원은 핀란드 노키아가 망한 이후 핀란드 경제가 더 살아나는 상황을 얘기하면서 한국의 기업과 경제구조와 노동시장의 문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클래스’를 선보였다. (8일자 김순덕의 ‘횡설수설’, <“노키아 몰락은 핀란드의 축복”>) 하지만 이 칼럼은 이번 주 [Best & Worst]의 컨셉과 어울리지 않기에 선정에서 제외되었다.

또 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이 쓴 <종편과 SBS, 그리고 DJ>는 SBS 개국시 상황과 종편의 현 상황을 단순비교하며 민주당에게 DJ의 선택을 본받으라는 조언을 했고 이는 앞서 말한 ‘민주정부 10년’의 기억을 활용하는 방식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나쁜 칼럼’이다. 하지만 이는 채널A 당사자의 욕망이 너무 강하게 드러나는 민망한 칼럼인지라 'Worst'에 어울리는 품격도 안 된다고 봐서 탈락시켰다.

박성원 정치부장의 8일자 칼럼이야말로 이번 주 컨셉인 ‘기억의 교묘한 활용’에 어울리는 ‘Worst’였다. 누구나 동의할법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문제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부터 출발하여, 박근혜 당선인 주변의 소통구조와 ‘쓴소리 부재’를 비판한다. 내용 그 자체로 이 칼럼 내용에 반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는 보수언론이 기존의 불공정한 질서는 내버려둔 채 박근혜 당선인에게 ‘고언’할 때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는 더욱 부정당하게 되는 ‘꽃놀이패’의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반면 그들이 언론의 역할을 좀 더 확실히 하려고 한다면 다른 종류의 ‘기억의 활용’도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정권교체’가 가능해진 나라에서는 그 정치세력이 야권이던 시절의 주장도 훗날의 일관성 검증을 위한 잣대가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수언론들은 새누리당의 말바꾸기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지나쳤다. 특히 최근의 인사청문회 논란은 새누리당이 한나라당이던 시절 만든 기준이 지금에 와서 가혹하다고 말하는 꼴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나마 보수언론의 수준에서 제대로 꼬집은 것이 6일자 동아일보 사설이라고 볼 수 있다. <야당 때 만든 인사검증이 불편한 새누리당>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요즘 새누리당이 고위공직자 인사청문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한나라당의 후신(後身)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라고 꼬집는다. 그저 ‘기본’에 해당하는 비판이나 사람들이 보수언론에 기대하는 역할의 최저치 정도는 보여줬다는 점에서 동아일보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사설을 'Best'로 선정한다.

▲ 지난 6일자 동아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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