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총리 지명자의 낙마에 ‘동아일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 실이다. 동아일보는 종편채널인 채널A와 합작해 김용준 지명자를 버틸 수 없도록 몰아붙였다. 자사의 독자권익위원장을 오래 지낸 김 지명자를 향한 동아일보의 공세에 신경질이 오른 조선일보는 동아일보를 향해 ‘파파라치’ 같다고 비아냥거렸지만, 동아는 조선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언론’이라고 몰아 붙였다. 결과적으로 김용준 낙마는 실로 오랜만에 동아가 조선에 ‘완승’을 거둔 한판이었다.

이제 2라운드가 시작됐다. 박근혜 당선인은 6개 부처에 대한 장관 인선을 단행했다. 고시 출신과 퇴직 관료로 구성된 인선이라 상대적으로 검증을 통과하기가 수월할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실제론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문제는 김병관 국방 장관 후보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에게 집중되고 있다. 둘 다 부동산이 문제다. 지명 이후 며칠 만에 드러난 의혹의 정도와 강도로 봤을 때, 인사청문회 통과를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두 후보의 경우 정치적 편향성까지 겹쳐져 있어 더 그렇다. 김 후보자의 경우 핸드폰 고리에 박정희-육영수 사진을 달고 다닐 정도로 뿌리 깊은 ‘박정희 키드’라는 점이, 황 후보자의 경우 삼성 X파일 사건을 지휘했던 전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 김용준 총리 낙마 정국을 주도했던 동아는 이번에도 인사 검증을 주도하는 모습이다. 김병관 국방 장관 후보자의 의혹에 집중한 15일자 동아일보 1면(좌), 2면(우) 지면 캡쳐.

공교롭게도 이번 검증국면 역시 동아일보가 주도하고 있다. 1면 사이드 기사를 통해 김병관 후보자의 부동산 시세 차익 문제를 제기했다. 김 후보자가 실제 거주할 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매입해 10억 이상의 시세 차익을 올렸단 의혹 제기다. 김 후보자가 아파트를 구입한 서초구 반포동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재건축 논의와 함께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던 곳이란 취재가 덧붙여졌다.

동아는 2면으로 이어진 기사를 통해 김 후보자의 부인이 사들인 충북 청원군의 땅 역시 ‘투기바람’이 불었던 곳이라고 지적했다. 실거래가 허위 신고 의혹과 함께 “6억 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린 셈”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동아는 김 후보자의 증여세 미납 의혹과 편법 증여 의혹을 정리했다. 동아가 제기한 김 후보자의 부동산 관련 의혹은 5건 정도다.

동아는 이 밖에도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지명된 유정복 후보자의 친형이 인천공항에 68억 원 배관공사를 불법 수의계약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단 사실도 자세하게 전했다. 인천공항 측과 뒷거래 의혹이 있으며, 친형 건설가가 급성장 한 것에 의혹이 일고 있단 문제의식이다. 관련해 동아는 유 후보가 국회 국토위 활동을 한 첫 해에 친형 회사가 인천공항 제3활주로를 수주했고, 도급액은 전년보다 갑자기 2배나 뛰었다는 점을 폭로했다.

▲ 동아는 문제가 집중되고 있는 김병관, 황교안 후보자 뿐만 아니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과 관련한 의혹도 제기했다. 15일자 2면.

대선 기간 정치 뉴스의 활황기가 이어지며 시청률 측면에서 유의미한 진전을 보였던 종편 채널들이 이후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동아와 채널A는 김용준 낙마 정국을 주도하며 상당한 여론 주도력과 함께 다시 한 번 ‘정치 뉴스’로 재미를 봤다. 이번 국면 역시 이러한 차원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 당선으로 보수언론의 영향력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김용준 낙마는 언론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짜릿한 성과였다.

재밌는 것은 김용준 낙마 국면에서 동아를 ‘파파라치’라 냉소하며 훼방을 놓았던 조선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스탠스로 역시 인사 검증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단 점이다. ‘종편발 언론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날선 대립을 보였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이번엔 전현 사정이 다르다.

15일자 조선은 김병관 국방 장관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에 주력했다. 조선은 1면 사이드 기사를 통해 김 후보자가 최근 2년간 무기 중개업체 고문으로 재직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업체는 독일제 잠수함 등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군에 불법 로비를 벌인 혐의로 2011년 독일 검찰과 한국군의 내사를 받은 적이 있다는 취재 내용이 덧붙여졌고,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논란이 될 것이란 자가 전망도 곁들여졌다.

▲ 김용준 총리 낙마 정국에서 동아를 '파파라치'라고 비판했다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언론'이라는 비난을 산 조선은 그러나 이번에는 동아와 검증 경쟁을 벌이고 있다. 주목할 것은 벌써 조선이 '낙마' 가능성을 꺼냈단 점이다. 15일자 조선일보 6면.

조선은 이어 6면에서 김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다뤘다. 김 후보자는 8살 아들에게 임야를 증여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 사실을 공직자 재산 신고에서 누락하다가 장관이 지명된 이후에야 부랴부랴 증여세를 납부했다는 보도이다. 사실 이 정도 내용이면 이명박 정부 당시의 조선이라면 능히 눈감아 줄 수 있는 정도인데, 조선은 이를 두고 “일부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며 바람을 잡았다.

조선은 이 밖에도 황교안 법무 장관이 한 책에서 “세상법보다 교회법이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썼음을 전하며, 그의 법의식을 문제 삼았다. 황 후보자에 대한 논문 특혜 의혹도 제기했다. 조선의 이런 보도는 ‘병역 면제’ 정도가 주된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황 후보자의 문제를 확 넓히는 전개이다.

결국, 이번 인사 검증 국면 역시 동아와 조선이 주도하고 있단 점은 사뭇 시사적이다. 한겨레, 경향 등이 노회찬 의원의 유죄 판결에 집중하느라 다소 소홀하게 검증한 상황에서 동아와 조선은 이명박 정부 때의 잣대와는 전혀 다른 엄격한 기준으로 후보자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리고 의혹을 제기하며 동시에 ‘인사청문회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으며 상황을 압박해가고 있다. 김용준 낙마 정국에서 동아를 비난했던 조선은 이번 인선에서는 동아와 검증 경쟁에 돌입했다. 박근혜 인수위가 “우리의 언론 정책은 이명박 정부와는 다를 것”이라고 말한 때에, 조선의 변신은 언론의 존재감은 비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단 격언에 충실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동아가 ‘조중동’으로 묶여 있던 보수언론의 카르텔을 깬 것은 ‘생존’의 욕구 때문이었다. 지금 동아가 3등 신문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고 있는 종편을 유지해가기 위해선 자본이 탄탄한 조선과 중앙과 같은 생존 전략을 취할 수 없게 된 환경이다. 정권으로부터 존재감을 인정받아 더 많은 배려를 받지 못하면 동아는 생존할 수 없는 잉여 언론이 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며칠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업무 분장과 관련한 동아의 보도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 정권을 길들이는 차원이다.

동아의 이런 인정 투쟁이 방송을 비롯한 다른 매체의 부진과 겹쳐지며 단기적으론 전혀 예상치 못한 언론 국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동아가 카르텔을 깨고 치고 나가자 조선도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동아와 조선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여론 주도력의 ‘신문 르네상스 시대’를 열고 있다. 바야흐로 '보수언론의 봄'이다. 현재 상황은 미디어 환경의 진화로 신문의 여론 주도력이 쇠퇴할 것이란 전망이 무색할 정도로 동아, 조선의 영향력이 절정이다.

딱한 건 이 변화에 다른 주류 매체들이 속수무책이란 점이다. 의미를 인정하는 것 조차 등안시하고 있다. 늘 후져야 하는, 구악이어야 하는 언론들이 갑자기 유의미한 보도를 쏟아내자 '진영적 의심'으로 그냥 어안이 벙벙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만약, 동아와 조선이 김병관, 황교안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결국 낙마로 이어질 경우 박근혜 시대의 언론 지형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사고가 요구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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