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동아일보의 해당 사설이 지난주에 가장 번뜩였던 ‘주장’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북한 3차 핵실험을 두고 무수하게 많은 입장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많은 글 가운데서는 동아 사설 보다 훨씬 유의미하고 예리한 통찰을 보여준 글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설을 베스트로 뽑았다. 1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사설의 제목은 ‘고개 드는 애국적 핵무장론, 현실도 고려해야’이다.

▲ 15일자 동아일보 사설, '고개 드는 애국적 핵무장론, 현실도 고려해야’

이 사설은 어떤 변화와 균열을 보여준다. 지난 10여 년간 동아는 조중동 가운데서도 가장 ‘막장’인, 가장 신문을 못 만드는, 조선과 중앙을 봤다면 사실상 안 봐도 무방한 포지션에서 ‘카르텔’을 유지해왔다. 그 낙후됨을 동아는 조중동 가운데서 이른바 ‘종친초’(종북, 친노, 촛불)를 가장 철저하게 활용하는 진영 논리로 버텨왔다. 동아의 이런 자세는 그대로 종편채널인 채널A의 전략으로 이어졌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절정을 이뤘다. 지난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 채널A는 저널리즘이 보여줘서는 안 되는 어떤 ‘바닥’을 드러내며 사실상 언론이라고 할 수 없는 사회악으로 기능했다.

그런 동아가 대선 이후 뭔가 변화의 기운을 ‘암시’하고 있다. 대선이 끝나고 조국, 우석훈 등 진보 진영 인사로 구분되는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면 할애를 비롯해 김용준 총리 낙마 정국을 이끈 적극적 인사검증 보도 등을 통해 동아의 스탠스가 조선, 중앙의 그것과 확연하게 엇갈리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아는 조선을 향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언론’이라는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 13일자 조선일보 사설, ‘나라‧국민 지키려면 ’원치 않는 결단‘ 내릴 수 있다’

애국적 핵무장론에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는 동아의 사설은 지극히 상식적인 인식이지만, 북핵 문제에 있어 동아가 ‘상식’을 발휘한단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스탠스의 큰 이동이라고 여겨진다. 예컨대, 13일자 조선일보 사설 ‘나라‧국민 지키려면 ’원치 않는 결단‘ 내릴 수 있다’를 보면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해 하여간 최대한 강경한 입장과 방법을 통해 북한과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여기서 ‘원치 않는 결단’이 내포하는 문맥적 의미는 ‘핵 무장’, ‘선제 타격’, ‘김정은 정권 교체’ 등의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과격한 선동 같은 것들일 텐데, 이는 딱 동아가 주창해온 대북 노선의 주장들이다.

조선이 북핵 문제를 두고 최대치의 안보 마케팅을 통해 여론을 가장 선정적인 곳으로 끌고 가려 한다면, 동아는 이 대목에 웬일인지 최소한의 ‘합리성’을 갖고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셈이다. 북한 문제에 있어 그냥 ‘우파’도 아닌 ‘아스팔트 우파’가 갖고 있는 단세포적 정서에 가장 충실하게 복무해 온 동아의 과거를 생각할 때, 경천동지라고 할 수 있는 ‘변화’다.

물론, 이건 다분히 정권 교체에 따른 결과적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다. 만약, 민주당 정권으로 교체됐다면 분명 동아는 이런 변화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전히 ‘아스팔트 우파’의 울분을 위무하는 기사와 주장들을 쏟아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수정권의 연장이 약속된 상황에서 동아가 이제 ‘조중동’ 카르텔을 깨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어볼 필요가 있단 생각이다. 일종의 전술 변화, 전략적 선택이다.

종편에서 연간 수백억의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조중동 카르텔의 3등 언론으로 동아의 미래는 지극히 어둡다. 2000년 안티 조선 운동 이후, 조선은 그나마 진영의 대표 주자로 계속 언급되고, 중앙이 자본의 세련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은 것에 반해 동아는 별 다른 언급과 의미 없이 계속 그 묶음 안에서 퇴행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의 변화는 말하자면, 그 스탠스로는 계속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절박함 속에서 등장한 불가피함처럼 보인다. 정권을 창출하는데 혁혁한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니 이제 ‘견제’와 ‘비판’, ‘균형’과 ‘합리’의 포지션을 강화해 언론으로서의 존재와 입지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는 어찌되었건 언론 지형에 변화를 추동할 것이다. 당장에 대선 이후 북핵 문제을 비롯한 굵직한 이슈들에 대한 조선과 동아, 중앙과 동아의 입장이 엇갈렸다. 과정에서 동아는 10여 년간 상실해왔던 독자적 의제 주도력을 발휘했다. 핵 무장론을 여전히 ‘애국적’이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건 방법이 아니라고 타이르는 동아의 사설은 여차하면 ‘원치 않는 결단’을 하자고 설레발을 떠는 조선의 그것에 비해 확실히 정돈된 입장이자 명석한 판단으로 우위에 있어 보인다.

생존을 위해서건, 또 다른 마케팅의 차원이건 동아가 조중동의 카르텔을 깨고 보다 온건한 영역의 매체로 자리매김하려는 이 상황에 대해, 언론 운동의 그리고 다른 언론의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진보 언론은 ‘대화 우선법’이라는 정공법에 갇혀 사실상 붕괴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특별히 인상적인 메시지를 남기지 못했다. 중도의 공략은 선거의 ‘전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가질 때 가능한 문제라는 점에서 진보언론의 분발과 혁신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동아도 이렇게 변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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