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정재홍 시사 다큐멘터리 작가가 제31대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지난 2월 21일 정기총회에서 정회원 투표를 거쳐 정 신임 이사장을 선출했다고 밝혔다. 이사장 임기는 4년이다.

1995년 MBC 시트콤 <두 아빠> 집필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정재홍 이사장은 MBC <PD수첩>, <이야기 속으로>, <성공시대>를 집필했고, EBS 교육대기획 6부작 <시험>을 비롯해 영화 <자백>, <공범자들>, <삽질> 시나리오 집필에 참여했다. 현재 <PD수첩>을 집필 중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당선 소감과 함께 현재 방송계 상황에 대해 듣기 위해 지난 2월 29일 서울 국회의사당역 근처 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실에서 정재홍 이사장을 만났다. 다음은 정 이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정재홍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사진제공=한국방송작가협회)
정재홍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사진제공=한국방송작가협회)

제31대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으로 선출되셨는데, 소감 부탁드립니다.

“역대 이사장님들 보면 김수현 선생이라든지 박정란 선생, 김운경 선생, 김옥영 선생, 전임 임기홍 선생 등 방송작가 쪽에서는 영향력 있는 분들이 쭉 맡아오셨어요. 그래서 어깨가 무척 무겁습니다. 이명박 정부 이상으로 방송사와 정부 간, 또 방송에 종사하는 기자, PD, 작가들과 정부 사이가 민감한 시기에 이사장직을 맡게 됐어요. 이사장은 작가의 권익을 지키고 옹호해야 하는 입장인데 시대가 너무 험해서 마음이 엄청 무겁죠. 이 난국을 어떻게 잘 풀어나가면서 작가들의 권익을 지킬지 고민이 무척 많습니다.”

이사장 당선 예상하셨어요?

“사실 전 출마 자체를 검토 안 했었어요. 방송작가협회가 작가를 대변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가급적 ‘스타’ 드라마 작가님들이 맡는 게 정부와 방송사의 협상에서 유리하고 저 같은 시사교양 작가는 실무적으로 서포트하는 걸 이상적인 형태로 생각했기 때문에요.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나갈 생각이 없었던 제가 나오게 됐습니다.

당선될 줄 몰랐어요. 우리 회원이 약 4,700명입니다. 회원들은 협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우리 앞에 나와 있는 과제가 무엇인지 또 그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해답을 제대로 제시하는 후보를 찍죠. 방송작가라는 사람들은 엄청 예민하고 또 민감합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뭔가를 이야기했고 그 과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회원들이 ‘저 친구 정도면 일을 좀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해요.”

당선 소식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시대가 너무 어렵잖아요. 그리고 제가 공약한 과제는 쉽지 않은 과제예요. 대자본과 맞서서 새로운 저작권을 획득해야 하는데 이건 쩐의 전쟁이고 또 싸워야 합니다. 기분이 좋다기보다, 사실 그날부터 압박감이 엄청나게 컸어요. 이 뉴미디어 저작권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다음에, KBS에 이미 <더 라이브> 사태라든가 <역사저널 그날> 종영, 세월호 10주기 다큐 제작중단 같은 문제가 생기고 있잖아요. 이런 일들이 앞으로 MBC, SBS, EBS에 계속 생길 텐데 상황을 돌파해야 하니 단순히 수사가 아니라 마음이 무겁죠.”

해외 OTT (PG) (이미지=연합뉴스)
해외 OTT (PG) (이미지=연합뉴스)

선거기간 협회 소속 작가들 만나셨을 텐데 작가들은 뭐라고 하나요?

“첫 번째는 뉴미디어 저작권 문제예요. 작가에겐 원고료가 중요하죠. 근데 원고료만큼 중요한 게 저작권입니다. 옛날에 저작권이 어떻게 발생했냐면 공중파에서 재방송하거나 케이블에서 재방송, 또는 비디오로 보거나 했을 때죠. 하지만 지금은 전부 인터넷으로 보잖아요. 뉴미디어 환경인데 기존의 저작권 계약들은 케이블과 지상파 중심으로 돼 있어요. 지금 인터넷 환경에 맞는 OTT나 유튜브 쪽 계약이 안 돼 있거든요. 이건 진작에 해결했어야 할 과제죠. 사실 뉴미디어 저작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전임 이사장님들도 하려고 했지만 잘 안됐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요.

두 번째는 협회가 작가 권익을 옹호하는 데 있어서 조금 미적거리지 않는가 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 부분을 고민하게 됐죠.”

OTT·유튜브·IPTV 등 뉴미디어 저작권 확보를 위한 상설 전담기구 설치, 방송 포맷 저작권 확보를 위한 특별 전담기구 신설, 작가 원고료 인상을 위한 상설 전담기구 설치 등을 공약하셨는데?

“저는 평소에 협회가 방송작가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해왔습니다. 뉴미디어 저작권 문제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핵심은 어떻게 그걸 실행할 것인지인데, 그 부분을 많이 고민하게 됐고 공약으로 제시한 거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우리 협회의 조직구조가 어떻게 돼 있냐면 이사장, 부이사장, 저작권 위원장이 있고 사무국 직원들이 20명 가까이 있어요. 저분들은 뭘 하냐면 기존 룰에 의해 들어오는 저작권을 방송사로부터 징수해서 회원들에게 분배하는 역할을 해요. 올드미디어 저작권은 잘 돼 있어요. 문제는 뉴미디어 저작권이죠. 인터넷 기반으로 하는 뉴미디어 저작권을 새로 획득해야 하는데 그 역할이 저작권 위원장 한 사람의 역량에 맡겨져 있었던 것이에요. 밑에 조직도 인력도 없어요. 하지만 그냥 가서 달라고 하면 안 주잖아요.

때문에 협회에서 뉴미디어 저작권을 획득하기 위해 뭘 해야 하느냐면 왜 우리가 이걸 확보해야 하는지, 분명한 논리를 개발해야 해요. OTT 같은 경우에 미국의 작가 노조에서 파업해서 재상영 분배금이라는 걸 받아냈어요.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 있잖아요? 재상영될 때마다 넷플릭스는 이득을 얻죠. 회원들이 가입해서 보니까요. 그래서 재상영되는 만큼의 분배금이라는 이름으로 저작권을 받고 있어요. 남미와 유럽에서도 작가들이 받아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의 모든 저작권을 다 가져가요. 작가는 저작권을 1도 못 받았어요. 불공정하죠. 넷플릭스를 상대로 저작권을 받으려면 미국 작가 노조의 사례를 분석해야 해요. 그다음에 이것이 소송으로 갈 민사적인 문제인지, 법제화가 필요한지 판단해야 하겠죠. 법제화가 필요하다면 정부와 협상해야 하고 정당과 로비를 해야 하고 공청회도 준비해야 해요. 그다음에 언론에 기고하고 인터뷰도 해서 여론을 조성해야 합니다. 소송 검토, 입법화 노력 그리고 문체부 찾아가서 제도화를 위해 여러 각도에서 노력해야 하는데 그걸 저작권 위원장 혼자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뉴미디어 저작권 확보를 위한 상설 실무기구를 만들겠다고 공약했어요.”

K-드라마 [연합뉴스TV 제공]
K-드라마 [연합뉴스TV 제공]

방송은 재방이나 삼방이 정해져 있지만 OTT의 경우 기준이 없지 않나요?

“아니죠.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 같은 경우에 재상영 횟수가 나오잖아요. 상영 횟수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이득이 생기는 거죠. <오징어 게임> 때문에 넷플릭스가 조 단위의 수익을 올렸다잖아요. 조 단위의 수익을 올렸으면 재상영에 대한 저작권료을 달라는 거죠.”

지금 가장 중요한 현안은 뉴미디어 저작권 문제일까요?

“맞습니다. 이것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류 콘텐츠 생태계가 무너져요. 예를 들어 제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친권자잖아요. 그리고 제가 아이를 양육하면서 우리 사회가 재생산됩니다. 그런데 지금 넷플릭스 같은 OTT에서 저작권을 다 가져가니 작가들은 자기가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친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냐면 OEM 방식의 넷플릭스가 제작사에 ‘드라마 제작비 200억 받았지. 내가 220억 줄 테니 센 거 자극적인 거 만들어. 220억 주는데 저작권은 내가 다 가질 거야.’라고 하면 제작사 입장에선 마진이 보장됐잖아요. 제작비 200억 드는데 성공하든 실패하든 20억 더 준다니까 제작사들이 넷플릭스로 다 몰려가죠.

그러면 제작사에서 작가와 계약할 때 예를 들어 ‘원고료 회당 1천만 원 받았지, 내가 1100 줄 테니 저작권 포기해’라고 해요. 그렇게 저작권이 넷플릭스 쪽으로 다 가버린 거예요. 그래서 결국 대박 나면 넷플릭스만 돈 벌고 제작사와 작가들은 창작자로서 권리를 누리고 못하게 된 거죠. 작품이 잘 됐을 때 받을 수 있는 저작권을 계약 때 이미 포기했기 때문에 그냥 소작농처럼 자기 것이 아니게 돼버린 거예요.”

넷플릭스 같은 경우 미국에선 안 그러는 거죠?

“미국 작가들도 그냥 받은 게 아닙니다. 작가들이 파업해서 싸워서 얻어낸 거죠. 거기는 조직이 무척 강하거든요.”

LA 넷플릭스 본사 앞에서 파업 시위하는 미국작가조합(WGA) [AP=연합뉴스]
LA 넷플릭스 본사 앞에서 파업 시위하는 미국작가조합(WGA) [AP=연합뉴스]

또 어떤 문제가 있나요?

“뉴미디어 분야가 3개가 있어요. 예를 들어 시청자들이 <PD수첩>을 유튜브로 보면 MBC는 유튜브에서 이익 얻죠. 그러나 저는 못 받아요. 유튜브, OTT, IPTV 실시간 재방송, 이게 3대 뉴미디어 저작권인데 이걸 확보해야 해요.

또 하나가 포맷 저작권입니다. <복면가왕>으로 MBC가 해외에서 엄청나게 수익을 올렸잖아요. 그러면 포맷 저작권을 받아야 하는데 작가가 못 받고 있어요. 그 부분 매우 중요하고요. 저작권 부분의 핵심적인 문제가 유튜브, OTT, IPTV 포맷 저작권인데 이건 확보해야죠.

두 번째, 지금 작가의 권익이 심각하게 침탈당하고 있어요. KBS <더 라이브> 같은 경우 방송 앞두고 방송사가 작가와 그 어떤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폐지해버렸습니다. 표준계약서에 의하면 4주 전에 통보는 하게 돼 있어요. 그걸 떠나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해야죠. 심지어 작가들의 일터인데 내일 방송 준비하던 작가들에게 ‘오늘 프로그램 그만둬’라고 했어요.

이것은 전두환 시대에도 하지 않던 건데, 언론 민주주의를 30~40년 후퇴시킨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이런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자들은 누구인가요? PD들은 프로그램 없어도 월급을 받아요. 그러나 작가들은 일터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지금 일자리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작가들은 막 내치는 거 아닙니까?”

말씀하셨듯 언론 민주주의 측면에서 현재 방송계 상황이 안 좋잖아요. 이사장님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 문건에 이름이 올랐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와 지금 비교해 보면 어때요?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당시 청와대에서 국정원 통해 사찰하고 MBC 사장에게 ‘저 사람 잘라라’란 식의 암묵적인 경로가 있었는데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조금 다르죠. 체면이나 절차 지키지 않고 방식이 훨씬 노골적입니다. ‘난 눈치 안 봐, 마음대로 할 거야’라는 게 느껴져요.”

이명박 정부 때보다 심한가요?

“정치권력이 방송을 장악해 보겠다는 본질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하는 양상은 훨씬 노골적인데,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어요. 절차 무시하고 염치를 돌보지 않고 질러버리는 거죠.”

정재홍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사진제공=한국방송작가협회)
정재홍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사진제공=한국방송작가협회)

최근 SBS 보도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김건희 특검법에 ‘여사’를 안 붙였다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행정지도를 받았어요. 작가들에게도 상당한 압박이 될 것 같은데?

“당연히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거죠. 언론의 본질 자체가 정치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인데 ‘김건희 특검법’에 여사라는 말을 안 썼다고 징계 주는 건 한마디로 얘기해서 ‘정치권력에 비판하지 마라. 찬양만 해라’라는 메시지로 읽힐 겁니다. 특히나 시사 프로그램들이 강력한 압박을 느낄 테고, 아이템 잡을 때나 방송제작 과정에서 ‘저렇게 하면 징계를 먹는구나’라고 의식하게 되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기구에서 저렇게 칼을 들고 재단하는 상황이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므로 협회에서도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어요.”

4년 임기 동안 방송작가협회 어떻게 이끌어 나갈 계획이세요?

“두 가지에 집중해야겠죠. 뉴미디어 저작권을 확보해야 하겠다는 것 하나가 있고요. 그다음에 계속 벌어지고 있는, 작가의 권익이 침해받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싸워야겠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너무 험난한 시대라 제게 주어진 4년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에게 위기 상황인데, 이는 이사장 개인플레이로 해결할 수 없어요. 우리 4,700명 작가가 똘똘 뭉쳐서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고 힘을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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