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양당의 공천이 마무리돼 가는 가운데, 공천 탈락 이후 진로를 두고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되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사실상 당 잔류를 선언했다. 페이스북에 “당의 결정을 수용한다”고 쓴 것인데, 이어지는 언론 보도를 보면 일각에서 예상했던 탈당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탈당 시나리오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와 접촉하면서 제기됐다. 일부 언론은 탈당은 하되 불출마한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보도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탈당하면 홍영표 설훈 의원 등이 추진하는 ‘민주연합’ 등 무소속 연합이나 2단계 통합론 등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컸다. 그런 차원에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다음 행보는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잠재적 대권주자, 즉 ‘잠룡’으로 분류된다. 그 정도의 무게감을 가진 인사의 탈당 등 가벼운 처신은 정치인으로서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애초 이낙연 대표와 만날 이유도 없었다. 공천 탈락 이후 얼마간 숙고의 시간을 갖다 통합의 메시지로 사태를 마무리하는 게 처음부터 적절했다고 본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8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천배제 재고 촉구 기자회견 후 퇴장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8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공천배제 재고 촉구 기자회견 후 퇴장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재명 대표가 주도하는 공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한 바다. 공천후유증에 대한 책임은 이재명 대표가 져야 할 것이다. 이른바 ‘친문’도 자신들이 잘나가던 시절엔 비슷한 방식으로 패권을 휘둘렀다는 지적도 있으나, 어찌됐건 주류의 잘못을 이후 바로잡을 책임은 결국 비주류가 일정 부분 감당할 수밖에 없다. 공천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당을 뛰쳐나가는 것은 많은 경우 주류의 전횡을 정당화할 뿐이다.

이의 극단적 경우가 김영주 의원의 사례다. 김영주 의원이 현역의원 평가에서 하위 20%에 포함된 것은 부당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재명 대표는 채용비리 의혹에 대한 소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라고 설명했는데, 김영주 의원의 항변을 보면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김영주 의원에 의하면 제기된 의혹은 2014년 신한은행 채용 비리 건인데, 김영주 의원은 당시 보도한 주체들도 자신에게 사과를 했고 검경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더불어민주당이 “50점을 감점”한 것에 대한 판단근거가 명확했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재명 대표의 설명은 논란이 된 지 여러 날이 지난 다음에야 나온 것이다. 의혹의 실제 내용과 판단 과정이 명쾌하게 공개되지 않는 한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영주 의원이 국민의힘에 입당한다고 하면 문제의 초점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4선 의원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당적을 옮겨 출마한다는 걸 긍정적으로 평가할 유권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오죽하면 동아일보가 4일 지면에 <野 4선 국회부의장 與 입당, 요청한 쪽이나 수락한 쪽이나>란 제목의 사설을 쓰겠는가? 중앙일보 역시 이날 사설에 “불과 2주 전까지 민주당 다선 중진의원 몫으로 국회부의장석에 앉아 있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무소속도 아닌 여당으로 바꿔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려는 건 누가 봐도 기이하다”라고 썼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국회부의장 김영주 의원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회동을 마친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국회부의장 김영주 의원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회동을 마친 후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제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주류는 ‘거봐라, 어차피 국민의힘에 갈 만한 인물…’이라며 자신들의 결정을 정당화할 것이다. 강성 지지자들은 오히려 김영주 의원의 행보에 위안과 안도감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선거는 냉정한 손익계산이다. 서울 영등포구 갑은 이렇든 저렇든 전통적으로 민주당 계열 정당의 텃밭이었던 지역구다. 이게 졸지에 공천 파동으로 ‘험지’가 되게 생긴 거다. 이런 지역구가 한두 군데가 아닐 거다. 위안과 안도감을 얻을 일이 아님에도, 당 주류가 되레 할 말이 생기는 아이러니로 귀결된 셈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보면 여당에 유리한 정국이 조성되고 있음은 명확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며 여론의 호응을 얻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천 파동으로 지지층 일부가 응답 유보층으로 돌아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주류는 방향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으므로 이러한 흐름은 공천이 마무리되더라도 일정 정도 이어질 거다. 더군다나 조국혁신당 등 밖에서 형성되는 원심력도 있다. 뭘 기준으로 봐도 ‘이재명의 민주당’의 셈법으론 불리한 것 투성이다. 이걸 어쩔 것인가?

비주류라면 이런 때일수록 처신이 무거워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다. 앞서 쓴 대로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유권자들의 ‘정권 심판’ 여론을 흡수해왔고 다른 구도를 허용하지 않아 왔다. 그에 대한 책임도 따져봐야 한다.

물론, 정치를 이런 식으로 하고도 ‘이재명의 민주당’이 총선에서 대승한다면? 그 결과 역시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공천 파동의 대상이 된 사람들보다 ‘이재명의 민주당’을 신뢰한다는 유권자들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 역시 정치인으로서는 ‘책임을 지는 모습’의 한 갈래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선이다. 경거망동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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