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갈등은 점입가경이다. 임혁백 공관위원장이 ‘비명 학살’은 없다고 했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분위기다. 21일 비례연합정당 관련 보고를 위해 열린 의원총회는 이재명 대표의 ‘밀실 사천’에 항의하는 성토대회가 되었다. 

이재명 대표는 이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의원총회는 의원들이 모여 여는 것이기에 보통 원내대표가 주재한다. 형식논리로 보면 이재명 대표가 반드시 참석할 필요는 없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재명 대표는 당무보고 일정 때문에 불참했다고 한다. 그런 일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밀실 사천’ 논란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관계된 문제다. 일정을 변경해서라도 의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대표로서 바람직한 리더십이다. 듣기 싫은 얘기가 나올 거 같으니 일부러 피한 거 아니냐는 평가를 자초해서 좋을 게 뭔가? 최고위원인 정청래 의원은 고성이 오가는 사이 이석을 하다 항의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지도부 주류 인사들이 이번 논란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동료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자리에서 조정식 사무총장은 ‘유령 여론조사’ 의혹과 관련해 여론조사 자체는 당이 실시한 것임을 대체적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논란이 된 여론조사가 당 기구와 관련된 바 없다는 이전의 여러 해명과는 배치되는 내용인데, 이러나 저러나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여론조사의 의도가 뭐였느냐는 근본적 의문은 해소할 수 없는 데다, 결국 사실을 인정할 거면 이전에는 왜 당과 관계가 없다고 했냐는 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공천 때 늘 나오는 잡음에 불과하고 3월이 되어 전열 정비가 이뤄지면 대부분 잠잠해질 얘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공천 후유증’은 공천 시즌을 맞은 여의도의 전형적 걱정거리다. 본선에서 지지층이 최대치로 동원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령 5%p 차이로 승패가 갈릴 수 있는 수도권 등 격전지의 경우 ‘공천 후유증’이 지지층 결집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번 총선의 경우 현역 의원은 민주당 소속이지만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표심이 바뀐 지역이 많아 민주당 입장에서 낙관할 수 없는 경우가 상당수다. 당내 일각에서 ‘120석’이란 얘기가 나오는 게 엄살만은 아니게 될 수 있다는 거다.

야권 입장에서 ‘정권심판론’은 여전히 기댈 수 있는 유효한 여론으로 비춰지지만 이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2012년 총선 재현론’이다. 한국일보는 22일 기사에서 “이대로 가다가 2012년 때처럼 크게 질까 두렵습니다”라는 민주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 발언을 인용했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만 기대 과반 의석을 자신하며 일찌감치 축배를 들었다가, 공천 파열음이 잇따르며 새누리당에 과반 의석을 내줬던 2012년 총선 참패의 악몽이 재현될까” 우려된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보면, 당시도 한명숙 대표가 주도한 공천이 내홍으로 이어지며 총선 50일 남긴 시점에 민주통합당이 우위던 정당 지지율 구도가 반전됐고 이후 새누리당 우위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또 구체적 내용이나 대안없이 ‘맹탕 재탕 심판론’을 반복하면서 반사이익만 노리는 오만한 집단으로 인식된 게 새누리당에 과반 의석을 내주는 패배를 불러왔다는 거다. 최근 회자되는 ‘감나무 전략’이라는 말은 당시 박지원 의원도 패배의 원인을 진단하면서 내놓은 단어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2012년’을 떠올리게 하는 프레임은 보수언론을 통해 다소 고약한 방식으로도 형성되고 있다. 조선일보의 경우 22일 1면 헤드라인에 <친북파 국회 입성… 민주가 보증 섰다>라고 썼다. 야권의 선거연대 협상 결과 더불어민주당이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과 비례대표와 지역구 양쪽에서 선거연합을 추진하기로 한 데 대한 보도다.

전형적인 색깔론이지만, 2012년에도 보수세력 전반에서 비슷한 구도의 공격을 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을 볼 필요가 있다. 당시 통합진보당 간 야권연대가 정책적 좌클릭을 불러와 패배의 원인이 됐다는 진단이 민주통합당 내부에서 제기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거다. 앞서 공천 갈등을 둘러싼 문제와 하나의 프레임으로 엮는다면, 이 대목도 ‘2012년 총선 재현론’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거다.

이 모든 것은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이 주장하는 ‘운동권-거야-이재명 심판론’과 연결될 것이다. 수차례 지적했듯, 이 전략엔 정권심판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의도를 간파했다면 당연히 파훼법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오히려 상대의 전략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황당한 일이다. 이철희 전 의원은 21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판을 뒤집으려면 이재명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유권자들은 출마냐 불출마냐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 정도의 절박함이 있는가를 묻고 있다. 무슨 답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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