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어느 방송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6개월을 평가해달라기에 독선, 아집, 오기로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가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너무 박한 평가였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박한 평가는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독선이란 자기 혼자만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일을 말한다. 취임 초기 윤석열 대통령은 여야 협치의 필요성을 말했고 국회를 충분히 존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더불어민주당은 종북주사파이거나 이권카르텔에 불과한 집단이다. 그런 집단과 무슨 대화를 하고 협치를 하겠는가.

야당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전 정권이 다 잘한 것도 아니고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도 맞다. 당 대표가 지자체장 시절 유착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오직 그것만으로 야당을 평가하고 대할 수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두고 수구친일집단이며 국정농단 세력이라고 대놓고 칭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대통령 자신의 경험과 판단만을 우선시하는 것은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대응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은 여러 차례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에만 정확히 묻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사태는 경찰 책임이라고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얘기했다. 그러나 그렇게만 말할 수 있는가? 행정안전부 책임은 과연 없는가? 위로는 올라가지 못하고 옆으로만 퍼지는 경찰 특수본 수사에 일선 현장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얘기엔 귀를 닫아버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0일 서울 용산구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0일 서울 용산구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는 이러한 아집의 전형이다. 여당 내에서도 이상민 장관에 대한 경질 또는 자진사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에 나와 “사건 터질 때마다 장관 바꿔라, 청장 바꿔라 하는 것도 후진적”이라고 했다. 대통령도 “엄연히 책임이란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상민 장관이 “대비하지 말라, 구조하지 말라”고 지시한 게 아닌 이상, 무슨 이상한 발언을 했든 책임을 묻는 일은 없을 거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같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고 이 정부가 선진국의 일원으로 평가할 만한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동남아 순방 출국 직전 ‘망언 논란’에 휩싸인 법무상을 경질했다. 그러느라 출국이 하루 늦춰졌다. 법무상이 했다는 ‘망언’은 무엇일까? 법무상의 직무에 대해 “아침에 사형 도장을 찍어, 오후 뉴스 톱이 되는 것은 그런 때뿐이라는 수수한 직책이다”, “법무상이 되어도 돈이 모이지도 않고 좀처럼 표도 얻지 못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공개석상도 아니었다. 경질된 하나시 야스히로라는 사람은 기시다파 소속으로 당내에서도 ‘같은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셈인데, 그러나 우리가 일본만 못할 이유가 있는가?

오히려 이상민 장관은 범정부 재난관리개편 TF 단장을 맡게 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중요 기구의 수장에 앉히는 것으로 경질 및 사퇴 주장을 물리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출국 전 고교 후배이기도 한 이상민 장관의 어깨를 두 번 두드리며 마음이 쓰인다는 표시를 하기도 했다. 남들이 다 안 된다는데 대통령은 ‘된다’고 하는 건데, 바로 이런 것을 오기라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보여준 오기의 정점은 MBC의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것이다. 국익 훼손이 우려된다느니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 뿐이니 했지만 결국 ‘바이든-날리면’ 보도의 괘씸죄를 물은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정말 따져볼 것이 많은데, 열 개도 넘게 따질 수 있지만 세 개만 묻자.

첫째, “이 새끼”와 “바이든”을 들은 사람들이 틀렸다면 대통령이 실제 말한 것, 즉 원래 맞는 답은 뭔가? “하여튼 너흰 틀렸다”는 취지 외의 해명을 들어본 일 없다. 그 얘기를 안 하면서 언론 보도를 부정하고 배후의 의도를 의심하는 게 상식적인가? 이건 권력과 언론 사이에서는 물론 사인 간의 관계에서도 합리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태도다.

둘째, 백보 양보해 오보가 맞다고 해도 그것으로 무슨 국익이 훼손되었는가? “이 새끼”라고 불렀다는 오해(?)로 미국이 동맹국에 대한 보복에라도 나설 거라는 건가? 그거야말로 미국과 한미동맹에 대한 모독이다. 훼손되는 것은 대통령의 체면 정도인데, 이걸 국익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짐은 곧 국가다”인가?

셋째, 대통령실은 이러한 조치를 통보하면서 MBC가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방송하면서 대역을 썼음에도 고지를 안 했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 MBC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MBC는 잘못을 했다. 거기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그게 ‘외교 안보 사안에 대한 취재 편의 제공’과 무슨 관계인가? 이것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후진적인 주장과 조치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의 독선 아집 오기로 어려움에 빠지는 것은 종북주사파-이권카르텔이 아니고 정권과 정부와 여당이다.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청부성 전화를 받은 게 아닌가 의심을 받는 장제원·이용 의원 등이 김은혜 강승규 수석을 운영위에서 퇴장시켰다는 이유로 주호영 원내대표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라. 주호영 원내대표는 “원내대표는 협상을 잘하라고 있는 자리인데, 내가 싸우기만 하면 협상은 누가 하느냐”고 했다고 한다. 아무것도 협상하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여당은 지지층의 환호는 받을지 몰라도 중도층을 설득해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다 이전에 겪어 본 일이다.

이 정권은 언론도 해외언론만 중시하니 지지층에 매몰되는 게 왜 위험한지 해외 사례를 들어 보자. 미국 중간선거 개표가 마무리돼 가는데 초유의 인플레이션 국면에도 ‘레드 웨이브’는 없었다고 한다. 왜인가? 지지층의 환호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내 경선과 유세 방향에 강력히 관여한 결과 중도층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편을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왜 앞뒤가 안 맞는 감세안을 주장하고 밀어 붙이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는가? 바로 그것을 공약하고 소수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인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가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면 민심을 감지하는 ‘레이더’가 고장난 것이다. 늦지 않기 전에 점검하고 바꿔야 한다. 대통령은 지도자이다.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과는 다르다. 수석과 장관이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이거나 대검 부장인 것도 아니다. 국민은 대통령이 지도자답기를 바란다. ‘내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그런 ‘보스 기질’만으로는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대통령은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고 했는데, 충성심의 대가로 권력의 우산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참모 뒤에 숨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행위다. 대통령이 책임있게 권력을 행사해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숨지 않는 태도이다. 대통령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바뀌어야 한다고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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