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언론윤리 TALK>은 취재보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주제로 언론인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계에서 언론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필진이 돌아가며 격주로 집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에 게재합니다.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미디어스=김민정 칼럼] 지난 10월 6일 <경향신문>은 창간 76주년 기획으로 '기렉시트' 현상을 다뤘습니다. '기레기'와 '탈출'을 합친 '기렉시트'라는 말이 새로울 뿐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나는 현상이 아주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가령 <기자협회보>는 2000년 11월 8일자 기사에서 "새 천년을 전후해 언론사를 떠나는 젊은 기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미디어전문 월간지 <신문과방송>은 2003년 9월호(393호)에 ‘기자들 왜 신문사를 떠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2008년 5월호(449호)에는 '떠나는 기자들' 특집을 실었습니다. 그래도 미디어전문지가 다루던 이야기를 중앙 일간지가 다뤘다는 건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나는 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일 겁니다. 특히 젊은 기자들이 언론계를 떠나는 현상은 저널리즘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징표의 하나이니까요. 오죽하면 채용심사를 담당하는 언론사 간부들이 ‘오래 다닐 것 같은지'를 기자 선발 기준의 하나로 고려한다는 얘기까지 하겠습니까.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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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기자들은 왜 떠나는 걸까요?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통과해서 들어온 직장인데 말입니다. 퇴사하는 이유는 물론 개인마다 다르고 복합적일 겁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세태도 반영하겠죠. 하나의 이유로 설명하거나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해도, 젊은 기자들의 자발적 퇴사가 여러 곳에서 공통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니 구조적 문제를 짚어봐야겠습니다. 이럴 땐 학술논문이 도움이 됩니다. <언론과 사회> 2019년 겨울호에 실린 논문("취재 현장을 떠난 젊은 신문기자들의 직업적 삶에 대한 질적 연구에서 이석호와 이오현은 기존 학자들의 논의를 검토한 후 기자들의 직업적 삶에 어려움을 초래하는 요인들을 다음의 4가지로 정리했습니다 : 1) 전근대적 조직문화 2) 비윤리적 직무수행 3) 미래비전 부재 4) 사회적 평판과 영향력 약화.

제 관심을 끈 부분은 '비윤리적 직무수행’입니다. 특히 이 문제를 기자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언론사 조직의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무릎을 쳤습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얘기입니다. 한국 언론은 1960년대 이후 급격히 기업화했고 이는 언론인의 샐러리맨화로 이어졌습니다. 모든 가치 판단에 '경영'이 우선되어 사주, 경영진 또는 광고주가 편집권을 상시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고, 좋은 기사를 쓰는 기자보다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기자가 주요 보직에 배치되고 유능한 기자로 인정받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업성뿐만 아니라 언론사의 정파성 역시 비윤리적 관행이 반복되는 이유의 하나로 지목됩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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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몇 대목을 직접 인용해 보겠습니다. 자발적으로 퇴사한 젊은 기자들은 “광고주인 기업을 봐주거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업을 기사로 ‘조져야’ 하는 부당한 지시가 반복될수록 취재 의욕이 꺾였고”, “데스크 지시에 따라 주어진 '야마’에 맞춰 납득할 수 없는 기사를 억지로 써야 하는 상황”에 회의를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또, “신문사의 정치적 입장이나 경영상 이익과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는 하명 기사가 많았고, 사안이 중요하고 민감할수록 기사 방향과 논조에 취재 기자의 판단이 반영되기보다 신문사의 전통적인 관점 또는 데스크의 관점이 일방적으로 기사화되는 분위기”에 좌절했다고 합니다. 기자가 되어 구현하고 싶었던 가치들이 훼손되는 경험이 쌓여가면서 불신과 냉소도 깊어졌습니다.

‘기레기'라는 멸칭에서 비난의 화살은 '기자'를 향해 있습니다만 기자들에게 비윤리적 업무수행을 강요하는 언론사 조직의 책임도 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언론윤리헌장>의 다섯 번째 항목인 '독립적으로 보도한다'는 원칙을 한번 볼까요. 총 454개 언론사, 1만 5천여 명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2021 한국의 언론인> 조사에는 언론의 역할에 대한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언론의 역할로 ‘사회 현안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을 포함해 7가지 항목을 제시하고 기자들이 각 항목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중요도’)를 묻고 아울러 소속 언론사가 그 항목을 얼마나 잘 실행하고 있는지(‘실행도’)를 물었습니다. 중요도 평가점수와 실행도 평가점수 간 차이가 가장 컸던 항목은 '기업 활동에 대한 비판 및 감시'였고 그 다음으로 큰 차이를 보인 항목은 '정부, 공인에 대한 비판 및 감시'였습니다. 언론인들이 ‘독립적으로 보도한다'는 원칙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이 원칙이 잘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건데, 이는 독립적인 보도를 방해하는 요인을 언론인 개인에서 찾을 게 아니라 언론사 조직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동 조사에서 언론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는 요인으로는 '광고주’가 62.4%로 가장 많았고, ‘편집/보도국 간부’ 47.0%, '사주/사장' 43.4% 등(복수응답)의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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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한국의 언론인> 조사는 언론인이 된 이유에 대해서도 물었는데,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 언론인이 되었다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 응한 3~13년차 취재기자 17명은 조직에 대한 실망과 심리적 탈진 (burnout) 증후군을 토로했지만 그래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 기자로 남아있다고 답했습니다. 기자를 묘사할 때 ‘지사적'이라는 말보다 ‘직장인', '샐러리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시대라지만, 결국 기자로 살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은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믿음이란 얘기일 겁니다.

기렉시트 현상은 어쩌면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말해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기사를 써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은 이들이 기자가 되기를 꿈꾸고, 격무와 박봉에도 불구하고 그 꿈을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이 기자로 남아있다는 걸 말입니다. 윤리적 저널리즘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는 언론윤리의 실행 주체로 언론사 조직, 언론사 경영진, 언론사 사주를 적극 호명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 사회의 성차별이 그러하듯 우리가 주목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구조의 문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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