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언론윤리 TALK>은 취재보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주제로 언론인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계에서 언론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필진이 돌아가며 격주로 집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에 게재합니다.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미디어스= 박재영 칼럼] 카페에서 출입처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면, 대개 출입처 사람이 돈을 냅니다. 혼자서 또는 여러 기자가 출입처 사람과 밥을 먹으면, 역시 출입처 사람이 밥값을 냅니다. 커피 한 잔이나 밥 한 끼는 별로 문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매번 커피나 밥을 얻어먹는다면, 뭔가 이상하고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기자에게 다반사입니다. 이 일을 선배에게 의논하면, 선배는 출입처나 홍보팀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냥 못 이기는 척하고 얻어먹으면 되는지, 아니면 내 밥값은 내가 내야 하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중간쯤의 절충안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작년 7월에 이런 문제를 놓고 기자 12명이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모여서 토론을 했습니다. 토론내용 일부를 여기에 옮겨봅니다.

김영란법 덕분에, 그리고 주변에 보는 눈이 많아져서 취재원과의 밥자리는 매우 단출해졌습니다. 예전처럼 고급 식당에 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언제나 취재원이 밥값을 내는 데 대해 기자들은 불편해 합니다. 어색해서도 그렇지만, 내가 얻어먹었으니 나중에 취재원이 무언가를 부탁하면 들어줘야 하지 않는가 하는 부담을 갖게 돼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결국 기자에게 '마음의 빚'이 됩니다. 그래서 취재원과의 밥자리나 술자리는 아주 난처한데, 별다른 묘책이 없어서 답답합니다. 선배에게 물어봐도 뾰족한 답은 없고 오히려 골치만 더 아파집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선배들은 출입처 사람들이 홍보 예산에서 밥값이나 술값을 내므로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국회의 의정활동비도 그런 돈입니다. 이미 예산에 책정된 돈이므로 기자가 밥값이나 술값을 거절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기자가 밥값이나 술값을 거절하면, 뜻하지 않게 취재원이 곤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취재원은 홍보비를 쓰려고 기자를 만났는데, 기자가 그 비용 지출을 막으면 그는 회사에서 무능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까지 들어보니 공짜 밥이나 술은 어쩔 수 없어 보이는데, 그러면서도 기자들이 자기를 합리화하는 논리인 것 같아서 찜찜합니다. 그래서 몇몇 기자들은 무엇이라도 해보려 하지만, 해법은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취재원과 둘이 만났을 때 기자가 자기 밥값을 내면, 취재원과의 인간적 관계는 어색해지고 소원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더 곤란합니다. 취재원이 출입처의 여러 기자와 함께 만든 자리에서 어떤 기자가 혼자 자기 밥값을 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회사 선배와 함께한 자리라면 선배 얼굴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 편해지자고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직은 우리 사회에서 익숙지 않습니다. 취재원에게 밥을 얻어먹은 다음에 그를 다시 만날 일이 있어서 내심 이번에는 기자가 밥값을 내려고 준비했는데, 막상 결제하려고 하니 취재원이 먼저 해놓은 예도 있었습니다. 이 일을 부장에게 말했더니 부장은 출입처가 법인카드로 사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하면서 오히려 기자가 너무 순수한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합니다.

선물도 골칫거리입니다. 출입처는 종종 명절이 되면 기자에게 화장품, 스포츠용품, 외식상품권 등의 선물을 줍니다. 직접 주면 현장에서 거절할 수 있지만, 우편으로 배달되면 그러지도 못합니다. 저의 제자인 한 기자는 입사 직후 산업부에 배치되어 유통을 담당했는데, 식품업체들이 집으로 과자, 냉동식품, 스틱 커피 등을 보내자 어찌할 줄 몰라서 한동안 쌓아뒀다가 결국 아동보호센터에 상자째로 기부했습니다. 도저히 부담스러워서 못 먹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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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되돌려주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출입처 사람을 만나 선물을 돌려주려고 하면 받느니 마느니 하며 실랑이를 하게 되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큰 스트레스입니다. 집으로 배송된 식품은 반송하기도 애매합니다. 소셜미디어로 날아오는 선물은 원천적으로 거절이 불가합니다. 생일 기프티콘 중에는 웬만한 밥값보다 비싼 것이 있는데, 한두 번은 무심코 받더라도 반복하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물은 받으면 부담이 되고, 거절하면 취재원과 껄끄러워지는 상황에서 과연 기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밥값이나 술값을 출입처 사람들이 내는 현재의 관행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관행 속에서도 자기만의 원칙을 세워보는 것이 하나의 해법일 수 있습니다. 먼저, ‘주거니 받거니 원칙'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취재원이 커피 한 번 사면, 나도 한 번 산다는 원칙입니다. 요즘 대학가에도 각자 밥값을 내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서 한번 실행해볼 만합니다. 매번 주거니 받거니 하기가 어려우면, 두 번 받고 한 번 주는 것도 좋습니다. 어떤 기자는 취재원과의 이런 관계를 되짚어 볼 요량으로 취재원이 사는 밥자리와 술자리를 낱낱이 기록했습니다. (장담컨대 한국 언론 140년 역사에 그런 기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기록이 있다면, 자기가 돈을 내야 할 차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거니 받거니 원칙은 커피나 가벼운 식사는 몰라도 제법 비싼 식사에는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온 원칙이 ‘김치찌개 원칙'입니다. 취재원이 식사하자고 하면, 거기에 응하면서도 식당은 기자가 잡겠다고 하고 김치찌개 집을 예약합니다. 그러면 취재원이 밥값을 내더라도 기자의 마음은 덜 불편해집니다. 만일 취재원이 기자 여러 명이나 기자단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싶다고 하면, 기자단 대표를 통해 이번에는 기자들이 밥값을 내자고 제안하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실비 식사입니다. 이런 모양새가 출입처에 주는 메시지는 의외로 강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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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은 주는 사람이 못 주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의 생일 정보를 비공개 처리하여 취재원이 기자의 생일을 알 수 없도록 합니다. 기프티콘을 받게 되면, 최대한 연장하며 계속 안 씁니다. 그런 행동이 취재원에게 미안하다고 생각되면, 기자도 취재원의 생일날에 비슷한 기프티콘을 보내 답례하면 됩니다. 이런 가벼운 선물이 오간다면, 취재원과 기자의 관계는 더 건전하게 발전할 것입니다. 받기에 부담되는 선물을 취재원 면전에서 거절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김영란법과 회사 규정입니다. 김영란법에 따라 기자가 대접받을 수 있는 식사는 3만원 이하이고 선물은 5만원 이하이므로 취재원에게 이 규정을 언급하면서 난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회사 규정이 있으면, 그것을 보여주며 취재원을 설득해도 좋겠습니다.

취재원은 기자를 찔러보려 하고, 한번 찔러서 들어가면 계속 찌릅니다. 기자가 한번 물러서면 계속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가기 쉽습니다. 속된 말로 물러터져서 취재원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기자는 전 세계에 없습니다. 오히려 기자라면 취재원이 아무리 찔러도 절대 안 들어가는 사람임을 계속 보여줘야 합니다. 또한,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미리 방어막을 쳐야 합니다. 취재원에게 사주는 커피 한 잔은 자기가 그렇게 간단한 기자가 아님을 보여주는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기자는 출입처 사람들에게 지금 당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기자임을 각인시키고, 그래서 그들이 저 기자는 안 통하는 기자로 알도록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취재원이 자기를 경계하도록 만드는 일은 기자에게 중요합니다. 그런 경계심은 기자와 취재원 모두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가격 때문에 밥자리나 술자리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실비 식당은 되고 고급 식당은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밥이든 술이든 선물이든 비싸든 그렇지 않든, 결국 관건은 “기자가 취재원에게 어떤 자세를 유지할 것인가?"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토론에 참여했던 한 기자는 "결국 자존심의 문제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자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연차가 쌓일수록 그런 마음이 더 간절해지더라고 했습니다. 자, 이제 약간의 마음의 준비를 해봅시다. 결국 제일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취재원과의 관계에서 기자의 이름과 얼굴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융통성과 임기응변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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