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언론윤리 TALK>은 취재보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주제로 언론인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계에서 언론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필진이 돌아가며 격주로 집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에 게재합니다.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미디어스=이봉현 칼럼] 이번 회차는 좀 희망적인 얘기를 하려 합니다. 언론윤리 측면에서 한국 언론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일상의 보도에서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러 독자의 질타를 받습니다. 같은 오류를 매번 되풀이하다 보니, 우리 언론은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슨 희망이냐고요? 자세히 보면 변화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최근 몇 년간 언론윤리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내용도 좋고 과정도 올바른 보도를 하려는 언론인이 늘고 있습니다. 잘못된 관행을 끊으려 나서는 이들입니다. 어렵더라도 달라지려는 이런 노력이 있어,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우선, 자살 보도가 개선되고 있습니다. 자살 보도 권고기준과 원칙에 맞게 기사를 작성하고 배포하는 기사가 늘고 있습니다. 제목에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을 쓰고, 이마저 '숨진 채 발견'으로 바꿔쓰는 기사를 자주 보게 됩니다. 3~4년 전부터 시작된 일인데, 이제는 상당수 자살 보도가 자살예방 상담전화 안내 문구를 하단에 싣습니다. 기사를 쓰는 이에게도 생명의 귀중함을 한번 더 생각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실종 차량 조사하는 경찰 Ⓒ연합뉴스
실종 차량 조사하는 경찰 Ⓒ연합뉴스

6월 말 불거진 '완도 가족실종 사건' 보도에서도 이런 변화가 확인됩니다. 이런 유형의 사건에 늘 따라 나오던 '동반자살'이란 용어가 사라지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이 제목과 본문에 쓰였습니다. 사안의 성격을 정확히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일가족이 찍힌 폐쇄회로 영상을 처음 보도한 한 방송사는 사건의 비극성을 감안해 [단독] 표지를 달지 않았습니다. 실종 며칠이 지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자 아이 이름과 사진 노출을 자제하는 등 미성년 아동의 인권을 존중하는 모습도 여러 언론사가 보여줬습니다. 자살 보도의 이런 변화가 반갑습니다. 물론 클릭을 노리는 선정적이고 위험한 보도도 여전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걸린 문제여서 촘촘한 보도 규범이 만들어지고, 사회적 감시의 눈길이 많아지면서 현장 기자와 데스크가 조금 더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성범죄 보도 역시 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성차별적‧선정적 보도, 2차 가해를 일으키는 보도를 하지 않으려 고민하는 기자들이 눈에 띕니다. 7월 중순 발생한 '인하대 교내 성폭력 사망’ 사건에서 선정적‧자극적 보도와 속보 경쟁은 여전했습니다. 많은 기사가 ‘옷 벗은 채’, '알몸으로’ 같은 표현을 썼고, ‘여대생'이란 성차별적 표현도 여러 곳에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표현을 피한 제목도 있었습니다. 「인하대서 피 흘리고 쓰러진 채 발견된 학생 숨져」 <MBC>, 「인하대 재학생, 숨진 채 발견 ‘머리에 출혈’」 <시사매거진> 등이 그런 예입니다. 교내에서 발견된 피해자 의류를 두고 ‘하의’, ‘속옷’ 등의 표현을 쓴 기사도 있었지만, 「'인하대 교내 사망 사건’, 화장실서 의류 수거해 조사중」 <한겨레> 이라고 한 곳도 있었습니다.

일부 언론사는 원칙에 어긋난 기사를 나중에라도 바로 잡는 노력을 보였습니다. 한 방송사는 「인하대서 여성 옷 벗은 채 피흘리고 쓰려져…」로 나간 제목을 2시간여 뒤에 「인하대서 여성 피흘리고 쓰려져…」 <SBS>로 바꿨고, 기사 본문에서도 현장에 대한 구체적‧선정적 묘사를 삭제했습니다. 한 신문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이 사건 제1보 제목이 잠시 선정적‧성차별적으로 달려있었음을 고백하면서, 수정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밝히기도 했습니다<한겨레>. 최근 몇 년간 젠더 이슈가 부각되고, 성평등 의식도 확산되면서 젠더데스크나 담당자를 두는 언론사가 늘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관련 보도를 할 때 한번 더 생각하고 성찰하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7월 18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캠퍼스 안에 마련된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학생이 메시지를 적고 있다. Ⓒ연합뉴스
7월 18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캠퍼스 안에 마련된 '인하대생 성폭행 추락사' 피해자를 위한 추모 공간에서 학생이 메시지를 적고 있다. Ⓒ연합뉴스

좀 더 꼼꼼히 사실확인을 하고, 잘못된 내용은 공개적으로 수정해 보도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인터넷매체 <쿠키뉴스>는 기사에 기자 이름과 함께 데스크의 이름을 함께 넣는 데스크 실명제를 2021년 12월에 도입했습니다. 신중한 취재와 책임이 요구되는 단독기사와 기획기사에는 '이 기사는 000 기자가 쿠키뉴스 윤리강령, 보도준칙에 따라 작성하고 ∆∆∆ 데스크가 확인했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갑니다. 이러다 보니 내용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확인하고 된다고 합니다. 인터넷언론사 <시사위크>는 2021년 4월 온라인 기사의 수정 내역을 공개하는 ‘기사수정 이력제'를 도입했습니다. 기사 하단에 수정 일시와 수정 전후의 기사 내용을 비교해 보여주고, 고치게 된 이유도 밝힙니다. 이렇게 기사를 수정했을 때, 제목 앞에 [수정]이란 표시를 해 고친 내용이 있음을 알립니다. 수정과 삭제가 쉬운 온라인 뉴스의 경우 은근슬쩍 고치고 마는 언론계의 관행을 끊어내려는 노력입니다. 정소현 <시사위크> 편집장은 “수정 이력제가 알려지자 취재원도 우리에게 뭔가를 얘기할 때 고친 이력이 남지 않게 하려고 글로 써서 주는 등 뉴스 생산 과정에서 모두가 좀 더 정확하게 하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언론윤리 준칙을 새롭게 하고 이행을 좀 더 실효성 있게 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통일부 기자실은 올 7월 범죄나 심각한 윤리위반을 저지른 기자의 가입을 제한할 수 있는 기자단 규약을 제정했습니다. 사내 성 비위로 퇴사한 기자가 다른 언론사로 옮겨 출입 등록을 신청을 신청하자, 좀 더 명확한 기자단 규약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준칙 이행을 독려, 감시하는 조직으로 <한겨레>가 2020년 저널리즘책무실을 신설했는데, 이후 <연합뉴스>의 콘텐츠 책무실, <채널A>의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등으로 확산했습니다. 젠더 이슈를 바르게 보도하기 위한 직제도 여러 언론사가 만들고 있습니다. <한겨레>, <부산일보>, <경향신문>이 젠더 데스크를 두고 있고,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제신문>은 젠더 담당기자를 두고 있습니다.

윤리적 기준을 지킨 양질의 기사를 기자상 수상작 선정이나 뉴스 배열에서 중시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방송기자협회는 올 2월부터 '이달의 방송기자상' 공모 때 '방송기자 연합회 강령 준수여부 작성표’를 받고 있습니다. 기자상에 보도를 출품하는 기자는 “취재원에게 반론의 기회를 충분히 주었는지”, "동의를 구하지 않은 녹음이나 촬영이 기사에 사용됐는지” 등 취재·편집 전반에 걸친 6개항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취재 과정을 윤리규정에 맞춰 돌아보고 좀더 나은 보도의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이미지 출처= 언론인권센터
이미지 출처= 언론인권센터

요즘 현장의 젊은 언론인들은 선배 세대에 비해 언론윤리에 민감한 편입니다. 'MZ세대'라 불리는 20~30대는 혐오와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높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의 동료 간 상호평가에도 익숙합니다. 독자의 험악한 댓글 공격을 수시로 받는 데다, ‘기레기'라는 험한 말까지 듣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 조심스럽고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지만, 긍정적으로 보자면 한국 언론이 투명하고 책임 있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에너지가 응축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에 더해 뉴스 생산 과정의 핵심적 위치에 있는 데스크가 달라진다면 한국 언론의 윤리적 수준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겁니다. 언론윤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별문제 없던 시절을 보낸 데스크 세대들의 윤리의식을 높이기 위해 언론사와 언론 유관 기관이 지금보다 더 많이 교육하고 힘써야 합니다. 이러다 보면 독자뿐 아니라 동료의 시선이 두려워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사를 쓰기 어려울 때가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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