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언론윤리 TALK>은 취재보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주제로 언론인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계에서 언론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필진이 돌아가며 격주로 집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에 게재합니다.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미디어스=이봉현 칼럼] 대통령 선거 열기가 뜨겁습니다. 국민의 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뛰는 언론인 여러분도 수고가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뉴스 하나에 따라 판세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보도를 둘러싼 논란도 적잖이 벌어집니다. 그 가운데 지난 1월 중순에 나온 김건희 녹취록' 보도는 언론윤리 측면에서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졌습니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이를 다루기도 해서 이 글에서는 한 가지 쟁점만 같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바로 “기자가 취재원 또는 취재대상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가”입니다.

흔히 기자는 ‘거리를 둔 관찰자'(detached observer)라고 합니다. 취재원과는 '불가근불가원’한 게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실천하기에 이 말은 모호하고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취재원과 친해지지 않으면 제대로 이야기를 듣기 어렵고, 너무 가까워지면 유착이 되어 기사의 객관성, 중립성, 공정성이 의심받게 됩니다. 적당한 거리는 중간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두 가지 각도에서 취재원과 기자 사이의 '건강한 긴장 관계’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우선 공식적, 개인적 관계를 구분하는 일입니다. 녹취록에 대해 국민의힘은 “사적인 대화를 보도할 수 있느냐”고 항의했습니다. 녹취록을 들어보면 유튜브 방송 <서울의 소리> 기자는 김건희 씨와 첫 통화에 기자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6개월간 이어진 대화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동생”, “우리 명수”, “누님”으로 바뀝니다. 말투도 친구 사이에 편하게 하는 말로 들립니다.

뉴스를 접하는 순간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마음속에서 어떤 윤리적 갈등이 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걸린 전광판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의 '7시간 전화 통화' 내용을 다루는 MBC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방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적인 대화라도 동의 없이 녹음하거나, 보도를 못할 바는 아닙니다. 공익성이 더 크다면 법적,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것입니다. 취재원에 대한 미안함은 기자의 숙명이겠지요. 이번 녹취록의 형식은 사적인 대화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국민이 알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 발언을 한 이의 남편이 직전에 검찰총장이었고 지금은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조국 전 장관 수사에 관해 “가만히 있었으면 조국, 정경심도 그냥 구속 안 되고 넘어갈 수 있었거든. 조용히만 좀 넘어가면,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라거나,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청와대 가면 전부 감옥에 넣어버릴 것”이란 말이 그렇습니다.

기자가 취재원과 친해지는 것은 좋은 능력입니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하면 더 좋겠지요. 문제는 취재원 말을 기사화했을 때 “취재인 줄 알았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 항의하는 경우입니다. '기만, 배신감‘ 같은 황량한 단어가 튀어나오고 친한 사이에서 전화조차 받지 않는 관계가 됩니다. 우리의 고민은 이런 수렁에 빠지지 않으면서, 취재할 수는 없겠냐는 것입니다.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 격의 없이 이야기하면서 “여기까지는 사적 대화, 이제부터는 취재” 이렇게 할 수는 없겠지요.

유능한 취재가 기만으로 흘러가지 않을 균형점을 저는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취재원이 자신이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대화 내용이 어떤 형태로든 기사화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선 친해지기 위해, 말을 끌어내는 데 급급해 기사를 쓰지 않을 것 같은 암시나 믿음을 취재원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녹음은 동의를 받고 하는 게 원칙이며, 의도를 숨기고 대화했더라도 기사화할 때는 말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쓰려는 내용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기사를 쓰지 말라"거나, “그런 뜻이 아니었다”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어렵지만 취재원을 설득하고, 보강 취재를 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쉬운 길 두고 험한 길 가는 것이 어디 '과학수사'뿐이겠습니까?

16일 MBC <스트레이트>에서 방송된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 화면 (사진=MBC)

두 번째는 취재원과 어떤 내용으로 대화할 것인가입니다. 취재는 정보를 매개로 한 교환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뭔가를 알아내려면 나도 상대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합니다. 취재원도 기자와 대화했는데, 이른바 '영양가가 없다면 만남이 계속 이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꿀벌처럼 정보를 이리저리 퍼 나르는 기자는 취재원을 더 잘 만나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납니다. <서울의 소리> 기자도 김건희 씨가 접근하기 어려운 취재원인 만큼, 신뢰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그가 관심을 가질만한 정보를 꾸준히 제공했다고 합니다. 녹음을 들어보면 김건희 씨 어머니와 18년 넘게 송사를 벌여온 정대택 씨와 관련한 자료를 건네주겠다고 하는 대화도 나옵니다.

그럼, 기자가 취재원에게 해주는 이야기의 윤리적 한계는 없을까요? 실제 취재현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법조 출입 기자가 평소 알고 지내던 검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검사가 수사 중인 피의자 쪽 변호사 생각이 어떤지 기자에게 물어봅니다. 이번에는 변호사를 찾아가니 검사가 무얼 주목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선거캠프에 들른 정치부 기자라면, 라이벌 후보의 전략이 무엇이냐고 묻는 정치인을 만나게 됩니다. 산업을 취재하는 기자라면, 식사 자리에서 경쟁사 동향을 묻는 기업인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정보를 취재해서 알고 있다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포괄적으로 이야기해 주면 될까요? 구체적인 숫자나 인물을 적시하지 않으면서요. 취재한 내용을 기자의 생각인 양 “~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면 무방할지요? 누구나 노력하면 구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면 별문제 없는 걸까요? 윤리적 질문답게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겁니다.

다만 취재의 방편으로 정보를 노골적으로 옮기거나
그런 모습으로 비치는 것은 언론인에게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기자는 정보원이 아닙니다.

취재한 내용은 매체를 통해 모두가 알 수 있게 공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은 “우리는 취재 활동 중에 취득한 정보를 보도의 목적에만 사용한다"라고 밝힙니다. 민감한 내용이라면 기자가 법적인 책임을 질 수도 있습니다.

기자와 취재원의 거리 유지라는 고민이 부질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거리 두기는커녕, 아예 자신이 '상황의 일부‘가 되는 기자도 흔하기 때문일 겁니다. 기자에게 선거캠프로 이직하라 조르고, 기자가 캠프에 가서 선거전략을 조언하는 일을 이번에도 목격했습니다. 최근에 번역된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가족이 함께 쓰는 자동차 범퍼에 정치적 입장이 드러나는 스티커도 붙이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언론윤리헌장 2조는 '투명하게 보도하고 책임 있게 설명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취재·보도는 기본적으로 공적인 행위임을 잊지 않으며
이해 충돌이 없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과정과 결과 모두 떳떳하고 윤리적일 때 독자의 신뢰도 높아질 것입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