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와의 권한 다툼까지 벌이며 추진했던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이하 온플법)의 폐기를 선언했다. 공정위가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로부터 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하기 위해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온플법을 폐기하면서 단순히 정권 교체를 이유로 정책을 180도 뒤집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6일 오전 윤수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진행했다. 공정위는 현재 사실상 수장 공백 상태다. 일찍이 사의를 표명한 조성욱 공정위원장이 형식상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송옥렬 후보자 낙마 이후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공정위는 이번 업무보고에서 온플법을 제외하는 대신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민간 중심의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한 자율규제 방안을 구체화'하겠다고 보고했다. 공정위는 ▲자율분쟁조정기구 설치 ▲자율규약 ▲상생협약 ▲모범계약·약관 마련 등의 플랫폼 자율규제 방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이어 공정위는 플랫폼 사업 주요 업종별로 갑을·소비자 이슈 논의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서는 과도한 수수료 문제나 불투명한 검색 노출 기준을 살피겠다고 했으며 소비자에 대해서는 '짝퉁'의 유통이나 리뷰 조작 등의 문제를 보겠다고 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플랫폼 자율규제 실효성 확보를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온플법은 플랫폼 기업에 ▲중개거래계약서 작성·교부 의무 부과 ▲검색·배열 순위를 결정하는 기본 원칙 공개 ▲입점업체에 대한 우월적 지위남용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월 온플법을 발의하고 추진해 왔다. 

공정위의 온플법 제정 의지는 방통위와의 권한 다툼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지난해 온플법 논의 과정에서 공정위 발의안은 플랫폼 업계 반발에 직면했으며 동시에 방통위와 규제 권한 갈등이 불거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발의된 온플법은 규제 권한을 방통위에 두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온플법 규제권한에 대한 두 부처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조율에 나섰지만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급기야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 나서 "방통위가 공정위 역할을 하려 한다"고 쏘아 붙이기도 했다. 조 위원장은 지난해 3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정부의 단일한 합의안'이라고만 대응했는데, 이제는 말해야겠다"며 "온플법은 기존 법과 중복이 없다. 오히려 방통위를 위한 의원입법안이 기존에 공정위가 다루던 공정거래법, 약관법, 표시광고법과 중복된다"고 작심 발언했다. 

이후 민주당 과방위 측에서 공정위 온플법을 겨냥해 "자기표절법안"이라는 검토의견을 내놨다. 민주당 과방위 측은 공정위 온플법의 경우 중개거래계약서 조항 등 5개 조항을 제외한 모든 조항이 현행 공정거래법을 재현하고 있어 특별법 형태의 제정이 불필요하고, 오히려 역외적용 조항이 없어 국내 사업자에만 적용된다고 지적했다.

2021년 3월 9일 매일경제 <>
2021년 3월 9일 매일경제 <[매경이 만난 사람] 조성욱 공정위원장 "온라인 플랫폼 갑을관계 개선 위해 총력>갈무리

조 위원장은 '취임 후 가장 역점을 둔 사안'으로 온플법 제정을 꼽았다. 조 위원장은 온플법이 '기업 옥죄기'라는 업계 비판에 대해 "거대 플랫폼 기업과 입점 업체가 상생할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온플법에는 다른 공정거래 관련법과 달리 형벌 규정이 거의 없다"며 "대부분 과징금 규정이며 시정명령을 불이행하거나 입점 업체에 보복하는 경우만 고발 조치를 하는 구조다. 당사자 간 자발적 분쟁 해결을 돕는 표준계약서, 공정거래협약, 분쟁조정협의회 등 제도적 장치도 도입했다"고 팩트체크 했다. 

공정위는 올해 초 발표한 '2022 주요업무 추진계획'에서도 "디지털 공정경제의 기본규범을 제도화한다"며 온플법 제정 의지를 다졌다. 공정위는 플랫폼 특성을 반영한 시장획정·지배력 평가기준을 구체화해 경쟁제한행위 유형을 규정한 심사지침 제정에 나서겠다고 했다. 또 온라인 구인구직 플랫폼과 법률서비스 등 비대면 거래분야에서의 경쟁제한행위를 집중 감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 이후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플랫폼 분야 자율규제 원칙이 적시되면서 온플법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다. 공정위는 부인했지만 공정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부처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해단식 직전에 모여 플랫폼 자율규제기구 추진에 합의했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6일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제1차 범부처 플랫폼 정책협의체'를 개최해 '민간 주도의 자율규제 원칙'에 따라 플랫폼 정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정책협의체에 공정위도 참여했다.  

2021.03.09 17:52:44
지난 6월 시민사회 연대체 '온라인플랫폼공정화를위한전국네트워크'가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온플법 폐기 수순을 밟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모습 (사진=참여연대)

시민사회에서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플랫폼 기업의 독점·갑질 행위가 바뀌냐'는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 6월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녹색소비자연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 노동·소비자·시민단체는 "정권만 바뀌었을 뿐 플랫폼 기업의 각종 독점·갑질 행위는 여전한 상황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온플법에 대한 공정위의 태세 전환이 놀라울 따름"이라며 "플랫폼업체와 거래하는 소상공인은 물론 대기업 제조업체들마저 플랫폼업체에 종속되다시피 한 지가 오래"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7일 자료를 내어 "정부가 자율규제라는 명목으로 철저히 온라인 플랫폼 기업 중심의 정책을 펴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해당 법 어디에도 온라인 플랫폼의 혁신을 저해하고 성장을 지연시키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이러한 법의 제정에 반대하는 업계와 재계야말로 불공정한 플랫폼 생태계 안에서 중소상인의 눈물을 착취하고 이익을 독식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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