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저는 독자 여러분들께 윤희구 바른민주개혁시민회의 의장의 “청와대 여론조작 개입” 폭로를 전해드렸습니다. 그보다 앞선 6일 윤 의장은 대구에서 스스로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가 신공항 백지화 결정지지 광고를 냈다”고 주장한 바 있지요. 그래서 청와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여론을 조작해왔다는 것인지 좀 더 상세하게 인터뷰 기사로 전해드렸습니다. (관련기사:▷나는 MB정부의 여론조작 행동대장이었다)청와대 시민사회소통비서관실은 어떤 일을 해왔나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청와대 시민사회소통비서관실의 김석원 행정관은 보수단체를 동원해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별의 별 일을 다한 듯 보였습니다. 윤 의장의 말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촛불시위·용산사태·미디어법·세종시
지난 4월15일 서울고등법원 제15민사부(부장판사 김용빈)는 YTN이 지난 2008년 ‘구본홍 반대’ 투쟁에 참여한 기자 6명을 해직한 것과 관련해, 6명 가운데 3명에 대해서만 ‘해고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기자에 대해서는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대한 YTN 해직기자들의 입장 전문을 게재한다. 1. 한 입으로 두 말 한 재판부, 법원의 자기부정1) 화해권고결정문에는 ‘6명 전원 복직’, 판결문에서는 ‘3명 해고 정당’ 지난 3월 18일
연이은 자살에 보도, 분석기사 이어져언론들은 지난 1월 8일 故조민홍 학우의 죽음을 입학사정관제의 비극으로 다뤘다. 기사 대부분이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입학사정관제로 우리 학교에 입학한 故조 학우가 영어강의에 어려움을 느끼는 등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했다는 학우의 인터뷰나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아울러 여러 기사에 우리 학교 등에서 시행하는 입학사정관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함께 담겼다.매일신문은 지난 1월 12일 사설을 통해 “이 제도(입학사정관제)의 맹점은 대학이 이들을 키울 여건을 준비하지 않은 데 있다”라고
1중세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그 땐 굶어죽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심리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우리만큼 괴롭진 않았을 겁니다. 그들에겐 분명한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다’ ‘가난함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중세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위와 부가 결정됐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가난한 것은 하늘의 탓일 뿐,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죠. 중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게으르고 나태한 자’라고 도덕적인 비난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릅니다. 가난엔 도덕적 책임이 뒤따릅니다. 이제 가난은 물리적인 고통과 심리적인 불안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가난은 ‘킹크랩을 먹지 못해’ 괴로운 것이 아닌, ‘사회적 무능력자’라는 인식 때문에 우릴 힘들게
지난 2002년 선거를 통해 시작된 민선3기 화두는 단연 개방이었다. 열린행정이란 말이 등장하더니 군수실을 투명하게 개방해 주민들의 문턱을 낮게 하는 것은 물론 군수 관사를 개방해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시설로 전환하겠다는 자치단체가 주류를 이루었다.옥천군도 그중 하나였다. 자치시대를 맞아 그 고장에 살고 있는 군수를 위한 관사가 필요하느냐는 논란이 일었고, 이에 따라 옥천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2002년 군수 선거에서 3선을 달성한 유봉열 군수가 활용방안이 나오면 언제든 비워주겠다고 했던 관사였다. 별 대책없이 유봉열 군수 한 임기를 지나고, 관사 활용방안을 찾겠다던 민선4기 한용택 군수를 거쳐 장장 10년이나 이러쿵저러쿵 말만 했지, 실제 군수 관사는 방치만 됐을 뿐, 활용대책이 없었다.
공공기관이나 일반기업 모두 해마다 이맘 때 즈음이면 지난해의 성과를 결산·평가하고 올 한해의 전망을 내놓는 보고서들을 공개한다. 그러나 정확한 예측은 제쳐놓고라도 어느 정도의 전망조차 확신할 수 없기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삼성경제연구소와 같은 국내 유수의 ‘지식/정보권력’ 집단처럼 10여 가지 예측을 내놓고 이듬해 그 중 몇 개가 적중했는지 스스로 평가할 자신도 없다. 특히나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같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목표들이 난무하는 계획들을 제출하는 기관을 마주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향후 2기 방통위의 행보는 지난 1기의 ‘업적(?)’과 최근의 이슈들을 생각할 때 두 가지 방향에서 짚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지난 3년 동안 방통위가 그토록 바랬으나 아직 이루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참여당의 신임 대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국민참여당의 창당 주체로 유 대표를 떠올리는데, 사실 이 당의 창당을 주도한 사람은 두 사람이다. 참여정부의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이병완 씨와 홍보수석을 지낸 천호선 씨다. 2009년 초부터 이 두 사람이 친노(親盧)신당의 창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건 정치권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들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상대적으로 친노 인사로 분류되는 정세균 의원이 민주당의 대표를 맡고 있었고, 대표적 친노 인사인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당시 민주당의 핵심 지도부였다. 더구나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8년 가을 이후 민주당 복당 의사를 내비치는 등 민주당 중심으로 야권이 재편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져 온 터였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에 단독 출마한 시민기자지회 김철관 후보가 대의원(선거인단) 만장일치로 당선됐다.18일 저녁 7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프레스홀 국화실에서 열린 한국인터넷기자협회 ‘2011년 정기총회’에서 회원 소통과 권익보호, 언론개혁 및 평화통일 사업, 조직활성화 등의 공약을 내건 김철관(50) 후보가 참석 대의원들의 전원일치 박수로 제7대 한국인터넷기자협회 회장에 낙점됐다.수락 인사말을 한 김철관 당선자는 “회원들의 소통과 단결에 힘을 쏟겠다”면서 “역대 회장들이 심혈을 기울어온 언론소비자운동 및 평화통일사업에도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인터넷미디어들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면서 “이런 변화를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협회를 만들겠
“기자가 왜 형사처럼 취재해? 그렇게 하면 안 돼. 당신은 문제가 많은 사람이구만!”‘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된다’는 식의 충고를 전하듯, 그는 불쾌한 어조로 위장취재를 한 저를 쏘아붙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했습니다만 다양한 취재방식 중의 하나입니다. 죄송합니다.”사실대로 기자의 신분을 밝히고 사과를 했지만 그는 여전히 노발대발이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에서 재개발을 맡고 있는 김 아무개 조합장(전 서울시 의원)은 업무방해 등으로 저를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사과고 보도는 보도입니다.’ 취재된 사실 자체에 문제가 없다면 보도를 해야겠죠. 황당하게 진행되고 있는 도림동 재개발 현장 고발 보도는 지난 12일 그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설
의 원작을 전혀 모릅니다. 대신 김태용 감독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는 세상과 단절한 한 여성에게 다가온 한 남자의 이야기랍니다. ‘소통’ 이죠. 김태용 감독은 전작 에서도 소통을 영화 속 중요한 화두로 삼았습니다. 서로의 의도는 언제나 엇갈리고,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워합니다. 신작 에서 김태용 감독은 보다 깊이 있게 소통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1.나는 소통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망이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밖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내가 부자가 되고 싶어서’ ‘권력을 얻고 싶어서’ 스스로 자신만의 욕망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조적으로 모든 욕망은 상징계라 불리는 외부가 가져다 준
지역의 균형발전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명박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지역을 도외시하는 거꾸로 가는 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와의 가장 큰 차이라면 당연히 지역정책과 관련된 것이다.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가장 큰 모토는 지역간 균형발전이었다. 그 위에서 행정수도 건설이 추진됐고, 각 지역별로 지역대학 육성방안을 비롯해 혁신도시를 선정해 그 지역의 균형발전의 축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다. 충청북도에서도 진천군과 음성군에 혁신도시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그 기조가 바뀐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였다.이 정부는 중도 실용정부를 내세우면서 2012년까지
지금까지 들어본 인사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말을 꼽으라면 “나마스테”를 추천하고 싶다. 어감도 감미로운 나마스테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고마워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그 가운데 나는 “내 안의 신이 당신의 신께 경배를 드립니다”라는 해석을 가장 좋아한다. 두 손을 가슴에 단정히 모으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건네는 “나마스테”는 인사를 건네는 이나 받는 이 모두에게 평화를 준다.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섬기는 신을 빌어 상대의 신께 예의를 표한다니, 얼마나 겸손한가. 종교를 떠나서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말도 감동적이다. 6년 전, 나는 인터넷커뮤니티사이트인 홈페이지를 자주 활용하고 있었다. ‘자주’라고는 했지만 잘 꾸며놓은 것은 아니
사실 방송의 공공성·공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소유구조 문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공영방송 KBS가 최근 3년간 보여준 극적인 변화를 생각해 보라. 소유구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수많은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이와 함께 시청자들의 환호도 식어 버리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최근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그렇다. 사장 한 명 바꿨을 뿐인데, 얼마나 많은 퇴행적인 조치가 ‘시장상황에 따른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는가. 때문에 SBS 문제를 다룰 때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는 ‘지주회사 체제의 문제점’이라는 용어는 분명 생소할 뿐만 아니라 난데없어 보일 수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당위적인 명제만으로 다루기에는 방송 공공성이란 주제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
#에피소드 1 / KBS는 경인운하 오염을 외면했다“작년에 KBS에 먼저 제보했는데요. 보도를 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에 제보합니다.”지난 20일. 저는 수자원공사가 경인운하 건설현장에서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는 현장을 고발 보도했습니다. (경인운하 공사장 파보니 ‘오염의 고속도로’가…)이 현장을 제보한 분은 김포시에서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농민이었습니다. 이 농민은 사실 KBS 관계자에게 지난 해 이 내용을 먼저 전했습니다. 이야기는 흘러흘러 KBS 기자에게까지 전해졌지만 어찌된 영문인 지 KBS는 보도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농민은 참다참다 결국 저희 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그 문을 제가 열었습니다. 제보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수자원공사가 경인운하 김포터미널
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잘 알지 못합니다. 얼마 전 선생의 부고를 듣고 ‘벌써 돌아가시다니’하고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난 선생을 육 십 언저리인 어머니 또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돌아가실 적 연세는 향년 80세.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50학번이다. 숫자 ‘50’과 ‘학번’이란 단어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럼에도 선생의 나이를 20살이나 깎아먹은 것은 아마도 내가 선생을 떠올릴 때마다 나의 장모님을 함께 연상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두 분의 외모는 닮지 않았지만, 난 박완서 선생을 떠올리면 장모님이 함께 떠오릅니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완서 선생의 큰 딸이 장모님 또래라고 한다.) 두 분의 외모가 모두 온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장모님 역시 소설을 쓰셨
“당신들이 왜 노동자인가?”한 10년 전으로 기억된다. 마산 MBC에서 일하던 작가, 리포터, MC, DJ들이 ‘노동자’인가 아닌가를 놓고 행정심판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사측에게 고용계약서를 쓰고, 낮은 고료를 인상해 달라는 것 등이었다. 이를 위해 노조가 만들어졌고 사측과 교섭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너희들이 왜 노동자냐?” 몇 년 후 한 지상파 방송국에서 파견근무하던 조연출 한 명이 밤샘 작업 중 과로사로 세상을 달리했고, 2008년에는 작가생활을 시작한 지 7개월 된 막내작가가 방송국 사옥 옥상에서 목숨을 던졌다. 언듯 생각난 일들이다. 아마도 더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또 기억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친척들에게, 처음 보는
저는 UAE 원전 수주 사실이 발표됐던 2009년 12월27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전 정치부 소속으로 국회를 출입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일요일로 휴일이었습니다. 당시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외출을 했는데, 눈이 참 많이 왔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고작 2.6cm의 눈이 왔는데 예보에 전혀 없었던 눈이어서 수도권 일대의 교통이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웬만하면 아내의 거동이 불편하고 해서 승용차를 이용하려 했지만, 너무 차량 정체가 심해서 ‘만원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평소와 같으면 당연히 '톱뉴스'가 됐을 일이었습니다. 시민들의 생활과 직접적으로 밀착해 있다는 점에서 언제부터인가 날씨 뉴스는 그 중요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휴일이었고, 기상청
혼란을 겪고 있는 이집트의 카이로 공항에 머물렀던 우리 국민들을 한국 대사관이 제대로 보호했는지 뒷말이 무성합니다. 카이로 공항에 발이 묶인 채 며칠을 보낸 한 누리꾼이 지난 2일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서 논란은 시작됐습니다.이 누리꾼은 지난 주 “대사관 직원이 과자봉지만 몇 개 쌓아놓고 간 뒤 보이지 않는다. 중국·일본인이 버린 음식을 한국인들이 주워 먹으며 버티고 있다. 다른 나라는 공짜 전세기로 국민을 귀국시키는데 우리는 200만원짜리 전세기 타고 돌아간다”는 등의 글을 남겼습니다.외교부는 지난 6일 반박자료를 내어 “대사관 직원들이 수시로 카이로 공항을 방문해 철수를 지원하고 있고 교민들에게 식수와 간식 등을 제공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영화 ‘실미도’를 기억하는가? 지난 2003년 강우석 감독이 만든 영화 실미도는 1천만명 이상의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게 한 말하자면 대박 영화다.1968년 1월21일 북한이 남파한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로 침투하려다 사살되거나 붙잡힌 사건이 일어난다.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향토예비군이 창설됐다. 이 와중에 북한에 침투, 김일성을 암살해 청와대 습격사건을 일으킨 북에 보복하겠다며 중앙정보부가 주도해 창설된 것이 일명 684부대로 통칭된 실미도부대이다.실미도는 인천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31명으로 구성된 김신조 일당의 수에 맞춰 부대원의 수를 31명으로 정했으며, 김일성 암살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1972년 7.4 공동성명
달동네와 쪽방촌에서 홀로 사는 노인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람을 무척이나 그리워한다. 취재를 목적으로 찾아갈 경우 대개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마음이 늘 급하다. 하지만, 미리 생각해두었던 질문을 던지면 10분, 20분이 넘는 길고도 장황한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쉴 새 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보따리 풀 듯 풀어놓는 그분들 앞에서 때로 고개를 끄덕여가며, 짧은 감탄사로 맞장구도 쳐주며 이야기를 듣다보면 중간에 말을 끊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다. 더구나 예의가 아니다. 그래서 묵묵히 듣는다. 얼마나 사람이 그리웠으면, 말을 하고 싶었으면 생면부지의 젊은이에게 저토록 많은 이야기를 한풀이하듯 쏟아내는 것일까.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을 업으로 가진 내게는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