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 KBS는 경인운하 오염을 외면했다

“작년에 KBS에 먼저 제보했는데요. 보도를 안하더라고요. 그래서 <한겨레>에 제보합니다.”

지난 20일. 저는 수자원공사가 경인운하 건설현장에서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는 현장을 고발 보도했습니다. (경인운하 공사장 파보니 ‘오염의 고속도로’가…)

이 현장을 제보한 분은 김포시에서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농민이었습니다. 이 농민은 사실 KBS 관계자에게 지난 해 이 내용을 먼저 전했습니다. 이야기는 흘러흘러 KBS 기자에게까지 전해졌지만 어찌된 영문인 지 KBS는 보도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농민은 참다참다 결국 저희 <한겨레>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그 문을 제가 열었습니다. 제보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수자원공사가 경인운하 김포터미널 공사현장에서 지하수 관정을 폐공처리 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농민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다가 경인운하 때문에 강제로 내쫓긴 분인데요. 자신의 논에 있던 두 개의 지하수 관정을 폐공처리하는 걸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듣는 순간, ‘이건 기삿감’이란 생각이 바로 들더군요.

▲ 지난 18일 김포시 고촌읍 경인운하 김포터미널 공사현장에서 흙에 묻혀 있던 지하수 관정. 관정은 국토해양부 지침에 따라 폐공처리해야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김진애 의원실

하지만 농민의 말만 듣고 보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게다가 이 관정이 있던 자리에는 준설토가 2미터 높이 가량 쌓여 있어 땅을 파보아야 진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을 잡기는 어려운 그런 갑갑한 제보였습니다.

제보를 받은 KBS 기자는 그래서 보도를 포기한 걸까요. 아니면 데스크가 그냥 취재를 하지 말라고 한 걸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KBS의 최근 분위기를 통해 이런 저런 복잡한 추측을 해볼 뿐입니다.

다만, ‘데스크가 막지만 않았다’면 못할 보도는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한겨레>는 김진애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타사 기자들과 함께 직접 경인운하 공사 현장의 땅을 파보았습니다. 파봤더니, 농민 얘기가 맞았습니다. 관정은 폐공처리 되지 않은 채 그대로 흙 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수자원 보호에 앞장서야 할 수자원공사가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는 현장이 드러난 것입니다.

KBS 기자도 뒤늦게 카메라 들고 현장을 찾아 왔습니다. 리포팅도 하더군요. 그러나 그날 밤 KBS9뉴스는 끝내 이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보도할 게 넘쳐서 그런 거 아니냐고요? 글쎄요. 이날 KBS9 뉴스는 <봄 향기 가득한 휴일…시민들 ‘함박웃음’> <봄이 오는 길목 ‘남해안 풍경’> 등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수자원공사가 경인운하 수자원을 오염시키고 있었다’는 소식이 이들 뉴스보다 비중이 더 떨어진다고 보십니까?

대신 <SBS 8뉴스>만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한 KBS 관계자가 제게 트위터로 메시지를 보내오시더군요. “요즘 ‘시방새’가 우리보다 더 보도를 잘 해요.” 이 메시지를 보내온 KBS 직원은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에피소드 2 / “악질 농민 제보”로 몰아간 수자원 공사

수자원공사는 저희가 현장검증을 벌인 16일까지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관정 폐공 모두 제대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지어 김태열 경인항건설단장은 이날 저에게 제보를 한 농민이 “보상금을 노린 악질 농민”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물론, 수자원공사가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할 거라곤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치밀하게 준비를 했었습니다. 농민이 관정을 폐공처리하지 않았다고 제보한 현장의 시공을 맡은 업체의 공사작업일지를 미리 입수해 ‘관정 폐공 작업’ 기록이 있는지 샅샅이 훑고 현장을 찾았습니다. ‘관정폐공처리 안 했다’는 물증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저희는 당당하게 땅을 파보았습니다.

두 시간 정도 땅을 파보니 예상 외로 불법 폐기물까지 나오더군요. 비닐하우스 철골 구조물들이 으스러진 채 땅에 불법 매립되어 있었습니다. 쓰레기도 제대로 치우지 않고 경인운하 터 닦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죠. 수자원공사 쪽은 어떻게든 포클레인으로 땅 파보는 작업을 중지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관정은 발견됐습니다. 게다가 흙에 묻혀 있던 관정 위에는 바로 부직포까지 덮여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관정을 못보고 지나쳤다는 수자원 공사의 변명도 통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농민들은 수자원공사가 갖고 있는 ‘지장물 보상 신고자료’까지 공개했습니다. 관정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수자원공사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악질 농민’의 제보라고 주장했던 수자원공사는 지금 어떤 입장인지 궁금해집니다.

수자원공사는 사과하고 시정조치를 약속했습니다.

▲ 지난 18일 김진애 의원과 김포시 주민이 김포시 고촌읍 경인운하 김포터미널 공사현장에서 흙에 묻혀 있던 관정을 발견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관정은 국토해양부 지침에 따라 폐공처리해야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허재현 기자

#에피소드 3 / ‘에스케이 건설’ “기사에서 우리 이름은 빼주세요”

관정 폐공처리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않은 것은 수자원 공사입니다. 그렇다면 관정 위로 흙을 덮어버린 실제 작업자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시공을 맡은 해당 건설업체이지요. 경인운하 김포터미널의 시공은 ‘에스케이 건설’이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몇 개의 하청업체들이 물량을 받아 일을 하고 있지요.

수자원공사는 ‘시공업체가 관정을 폐공하지 않았는지 몰랐다’고 변명합니다.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냐’는 주장이지요. 그래서 당연히 ‘에스케이 건설’의 책임도 함께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한겨레>는 기사에 시공을 맡은 업체가 ‘에스케이 건설’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에스케이 건설’ 홍보과에서 ‘회사의 이름을 빼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 이미지에 별로 도움이 안될 것 같아서’라고 솔직하게 말하더군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오보를 낸 게 아닌 이상 이런 부탁은 들어드리지 않는다”고 답변해주었습니다.

이 전화를 걸어 온 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 일간지의 기자였던 분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둔 뒤 대기업 홍보실로 옮겼다고 하더군요. 참 씁쓸한 기자 선배의 부탁이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전화 하지 말아주십시오. 대체 언론을 뭘로 알기에 이런 부탁을 하는 겁니까. 적어도 <한겨레>에는 이런 부탁 안 통합니다.

#에피소드4/ ‘김관순 열사’ 김진애 의원의 활약이 빛났다

이번 보도가 있기까지 민주당 김진애 의원의 활약이 매우 컸습니다. 김진애 의원은 저희 <한겨레>의 제보를 전해 듣고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이 문제를 확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폐공처리 하지 않은 관정이 드러난 2월 18일 아침 8시. 수자원 공사가 언론에 이것이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 하자 아침 일찍 현장에 도착한 김진애 의원은 몸으로 현장을 지켜냈습니다. 구덩이 같은 곳에 직접 들어가 관정 앞에 두 시간을 서 계셨습니다. 수자원공사 직원들은 관정을 치우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서 있어야 했습니다. 덕분에 이 현장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길 수 있었고 여러분은 기사를 보실 수 있었습니다.

16일 아침. 관정을 찾기 위해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보았지만 사실 처음부터 관정이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참을성 없는 몇몇 기자들은 오후가 되자 자리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날 저녁 늦게까지 끝까지 자리를 지켜 수자원공사를 설득시켰습니다. 18일. 드디어 관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김 의원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어떻게 늘리는지에만 관심 있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이렇게 모든 국민을 위해 발 벗고 나서서 일하는 의원들이 있습니다. 그나마 이런 의원들이 있기에 민주당이 굴러가는 것입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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