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31일 이집트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수천 명의 승객들이 이집트를 떠나는 항공편 정보를 얻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혼란을 겪고 있는 이집트의 카이로 공항에 머물렀던 우리 국민들을 한국 대사관이 제대로 보호했는지 뒷말이 무성합니다. 카이로 공항에 발이 묶인 채 며칠을 보낸 한 누리꾼이 지난 2일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서 논란은 시작됐습니다.

이 누리꾼은 지난 주 “대사관 직원이 과자봉지만 몇 개 쌓아놓고 간 뒤 보이지 않는다. 중국·일본인이 버린 음식을 한국인들이 주워 먹으며 버티고 있다. 다른 나라는 공짜 전세기로 국민을 귀국시키는데 우리는 200만원짜리 전세기 타고 돌아간다”는 등의 글을 남겼습니다.

외교부는 지난 6일 반박자료를 내어 “대사관 직원들이 수시로 카이로 공항을 방문해 철수를 지원하고 있고 교민들에게 식수와 간식 등을 제공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 이집트를 여행한 한국인이 트위터에 올린 글
한국 대사관 부실 대응은 사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최초로 트위터에 글을 남긴 박예원(23)씨와 외교통상부 관계자 등에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기존에 알려졌던 것처럼 중국과 일본인들은 공짜 전세기로 귀국하는데 우리 국민은 비싼 유료 전세기로 귀국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듯 보입니다. 외교부가 파악해본 바에 의하면, 중국·일본·미국 등 모두 개별적으로 항공요금을 지불하고 귀국했다고 합니다. 박씨가 말한 ‘공짜 전세기’ 얘기는 지인에게서 전해들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은 외교부의 설명에 더욱 신뢰가 갑니다.

그러나 그 외 트위터에 올라온 내용들은 대부분 사실로 보입니다. 실제로 대사관 직원은 공항에 발이 묶인 여행객과 교민들을 공항에 상주한 채 돌보지는 못했습니다. 가져다 준 음식도 ‘과자와 음료수’ 등이 전부였습니다. 샌드위치나 빵과 같은 식사거리를 제공한 중국과 일본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외교부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박씨의 말을 들어보면, 대사관 직원 1명과 현지 이집트인으로 보이는 사람 1명이 1월 30일 공항으로 찾아와 음식을 주고 갔는데 그 직원은 “지금 가봐야 할 곳이 너무 많아 음식만 놓고 간다”고 얘기하고 사라졌다고 합니다.

놓고 간 음식은 과자 열 봉지와 비스킷 5세트, 잼과 치즈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공항에 남아 있던 20여명이 며칠간 먹으며 버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요. 이 대사관 직원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와 대화를 나눈 외교부 관계자는 “그 많은 음식을 직원 혼자서 나르기 힘들었을 사정도 이해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그는 공항에 들러 음식을 놓고 간 이집트 주재 한국 대사관 직원과 통화를 한 상태였습니다.

▲ 민동석 외교부 차관이 트위터에 올린 글
이집트 대사관 직원 겨우 5명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저는 한국 대사관 직원들이 교민들 보호에 무성의했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무사히 귀국한 교민들도 꽤 많습니다. 박씨 역시 한국 대사관의 태도만을 문제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구조적인 문제”였습니다.

핵심 문제는 인력이었습니다. 이집트 주재 한국 대사관의 직원 수는 총 5명에 불과합니다. 일본과 중국 대사관에 비해 삼분의 일 밖에 안 되는 규모입니다. 이 5명이 공항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여행객과 교민들, 그리고 이집트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한국인들을 일일이 관리하고 귀국을 돕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인 이집트 공항은 대사관으로서는 조금 소홀하게 관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외교부는 그래서 이집트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인력을 급파하는 것을 고민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결론 내려 인력을 충원시키지 않았고 현지 대사관 인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외교부가 이집트로 민간 전세기를 보낸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빛이 바라고 말았습니다.

외교부에 문제 제기하면 괴담?

그런데 부족한 인력 탓만 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외교부의 태도에도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외교부의 보도자료와 외교통상부 민동석 차관의 해명을 보면, ‘잘하고 있는데 누리꾼이 괜한 불만을 내고 있다’는 식의 태도가 묻어나옵니다.

심지어 이런 문제제기 자체에 뭔가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것처럼 몰고 가고 있습니다. 민동석 차관은 5일 외교부 해명자료를 배포한 뒤 곧바로 자신의 트위터에 “(누리꾼이) 사실과 다른 자극적인 내용을 올리고 있다”, “너무 선동과 괴담만 좇는 것 같다”고 글을 올려 마치 이번 문제제기를 ‘터무니없는 선동’처럼 폄훼했습니다.

저와 통화한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관실의 관계자에게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는 통화 내내 “우리도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데 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런 글을 올렸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습니다. 뭔가 정부를 음해하려는 의도로 이런 글을 누리꾼이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박씨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왜 트위터에 그런 글을 올렸냐”고 말이지요. 그러더군요. “이집트 공항에서 중국과 일본 사람들은 대사관의 철저한 관리 아래 본국으로 잘 귀국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고요. “한 교민이 ‘이런 건 블로그에 꼭 올려서 잘못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부탁했다”고요. 정부를 음해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말입니다.

▲ 민동석 외교부 차관이 트위터에 올린 글
“벌어진 일보다 외교부의 태도가 실망”

객관적인 여러 정황을 놓고 봤을 때, 우리 외교부가 교민 관리에 썩 잘 했다고 자화자찬할 수 있는 상황은 분명 아닙니다. 당시 미국은 전세기를 투입해 귀국료는 후불로 받는 조건으로 신속하게 자국민들을 귀국시켰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200만 원 가까이 되는 항공료 때문에 교민들이 오랫동안 전세기 탑승을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120만 원 수준에서 항공료 협상이 마무리 되어서야 순차적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런 모습에서부터 뭔가 ‘노하우’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중국과 일본 대사관 직원들은 아예 공항에 상주해서 따로 ‘zone’을 만들고 교민들이 모두 귀국할 때까지 수시로 인원수를 체크하며 지켰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는 직원 한두 명이 공항 안팎을 오가며 모든 것을 해결해줘야 했고 공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대사관 직원과 연락 한 번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배고픔을 느낀 우리 교민들이 중국 대사관 직원을 찾아가 음식을 구걸했을 때 다행히도 중국 대사관 쪽은 친절하게 음식을 내어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중국 직원은 “왜 한국 대사관 직원은 안 나와 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집트 공항에 남겨졌던 분들은 중국인의 도움에 감사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하거나 혹은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집트 주재 한국 대사관과 외교부가 엄청난 잘못을 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최선을 다 했지만 역량 부족으로 벌어진 안타까운 일로 보입니다. 1월30일 박씨 외에 카이로 공항에 머물렀던 또 다른 교민은 저와의 통화에서 “공항 자체가 아수라장이었기 때문에 대사관의 어수선한 대응에 불만을 가질 겨를도 없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부가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다”며 적절히 사과하고 이후 대책을 잘 마련하면 끝날 일입니다. 그런데 자꾸 누리꾼 문제제기 자체를 의심하고, ‘왜곡’이니 ‘선동’이니 이런 말로 변명만 늘어놓으니 당사자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것 같습니다.

박씨는 저와의 통화에서 “부족한 점을 개선하겠다는 말은 전혀 안 하고 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여기까지다고만 하는지.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난 뒤 외교부의 태도가 더 실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무조건 ‘우리는 잘못 없다’는 입장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먼 타국에서 곤혹스런 상황을 맞고 일순간 방치됐던 우리 국민의 처지를 외교부가 좀 더 진심으로 이해하고, 겸손한 해명을 해주길 우리 국민들은 기대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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