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저는 독자 여러분들께 윤희구 바른민주개혁시민회의 의장의 “청와대 여론조작 개입” 폭로를 전해드렸습니다. 그보다 앞선 6일 윤 의장은 대구에서 스스로 기자회견을 열어 “청와대가 신공항 백지화 결정지지 광고를 냈다”고 주장한 바 있지요. 그래서 청와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여론을 조작해왔다는 것인지 좀 더 상세하게 인터뷰 기사로 전해드렸습니다. (관련기사:▷나는 MB정부의 여론조작 행동대장이었다)

청와대 시민사회소통비서관실은 어떤 일을 해왔나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청와대 시민사회소통비서관실의 김석원 행정관은 보수단체를 동원해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별의 별 일을 다한 듯 보였습니다.

▲ 바른민주개혁시민회의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로부터 받았다며 6일 공개한 문자메시지. 청와대 김석원 행정관이 “‘세종시 논란 국익 우선해야’ 제목의 연합뉴스 기사를 홍보해달라”는 부탁을 시민단체에 해온 것으로 보인다. ⓒ허재현 기자.
윤 의장의 말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촛불시위·용산사태·미디어법·세종시 등 주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보수단체더러 정부 우호적인 신문광고 등을 싣게 했습니다. 2009년 보수단체가 벌인 ‘노무현 전 대통령 재산 국고 환수 운동’도 김 행정관의 지시로 벌어진 일이었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취임에 반대하는 인권단체에 행패를 부린 보수단체들도 김 행정관의 지시에 따른 움직임이었습니다. 심지어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 김 행정관은 직접 보수단체 사무실에 들러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는 글을 남기도록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윤희구 의장 폭로 매우 구체적

물론 윤 의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가 스스로 기자회견을 열어 폭로한 내용은 사실일까. 대체 뭐하는 분인데 갑자기 나타나 이런 폭로를 하는 것일까. 그의 말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제 발걸음을 윤 의장이 머물고 있는 대구로 옮겨가게 했습니다. 김석원 행정관의 뒤를 캐는 것도 목적이었지만 윤희구라는 사람을 검증하는 것도 인터뷰의 목적이었습니다.

▲ 윤희구 바른민주개혁시민회의 의장 ⓒ허재현
그런데 윤 의장이 저와 나눈 대화들은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보통 어떤 폭로자 말의 신뢰도를 검증할 때 활용하는 좋은 잣대로는, 그가 얼마나 디테일한 묘사를 하는지 살펴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 얘기할 때 얼마나 구체적으로 말을 하는지. 예를 들어, 누구와 어디에 같이 있었고. 어떤 말을 주고 받았고. 같이 있던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었고. 그날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었고 등등등.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 지 살펴보면서 그의 신뢰도를 살펴봅니다.

윤 의장은,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 행정관과 주고 받은 말을 꽤 정확하게 기억해 내었습니다. 세세한 활동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했지만 그는 어떤 경로를 통해 무슨 활동을 했는지. 그가 김석원 행정관의 부탁을 받아 인터넷에 어떤 글을 남겼는지 매우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는 김 행정관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도 갖고 있었습니다.

윤 의장이 김 행정관과 모르는 사이라면 절대 알 수 없는 여러 정황적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청와대의 여론조작 개입’을 입증할만한 결정적 물증은 없었습니다. 물증이 없다면 윤 의장의 폭로를 뒷받침해 줄 제 3자가 나서야 하는데 그런 사람도 없었습니다. 많은 보수단체들이 MB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해도, 윤 의장처럼 양심선언을 해줄만한 분은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윤 의장의 폭로는 사실 좀 애매한 수준에서 기사로 전달되었습니다.

잠적해버린 김석원 행정관

윤 의장의 폭로만으로 정확한 사실 파악이 어렵다면, 김석원 행정관에게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김 행정관은 절대 전화를 안받습니다. 무슨 잠적한 사람처럼 투명인간이 되었어요. 며칠 동안 문자도 남기고 전화도 해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윤 의장의 휴대폰에 저장돼 있던 김석원 행정관 휴대폰 번호로 처음 전화한 것은 지난 9일이었습니다. 김 행정관이 전화를 받긴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김석원 행정관이십니까?”
“네. 그런데요.”
“저는 한겨레 허재현 기자라고 합니다. 윤희구 의장이 언론에 폭로하신 것들에 대해 여쭈어볼 게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지금 회의 중이라서 나중에 통화합시다.”
“나중에 몇시요? 적당한 시간을 말씀해주시면 그 시간에 맞추어 전화드리겠습니다.”
“나중에 통화해요.”
“몇 시가 좋은 지 말씀해주세요.”
“끊겠습니다.”

딸깍.

그의 휴대폰은 이 후 하루 종일 꺼져있었습니다. 다음날, 그 다음날, 그 다음 다음날 계속 전화를 했습니다. 하지만 신호는 가도 그는 끝내 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문자도 남겨보았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습니다.

▲ 김석원 청와대 행정관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해봤지만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허재현
청와대 침묵의 의미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윤희구 의장의 폭로는 가벼운 내용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의혹의 당사자는 묵묵부답입니다. 만약 이 폭로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김 행정관은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명예훼손 소송이라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뭉개고만 있습니다.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로 지금까지.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분석합니다.

“곧 4.27 재보선이 있잖아요. 괜히 뭔가 언급했다가 악재로 작용할 것을 걱정하는 겁니다. 아예 뭉개버려서 여론화 되는 것 자체를 막는 겁니다. 윤 의장의 폭로를 부인하지 않는 건 폭로 내용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는 겁니다.”

청와대는 취재에 응하십시오

윤희구 의장은 스스로 “‘청와대 여론조작 행동대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실 ‘청와대 여론조작팀’의 잔뿌리에 가깝습니다. 원뿌리는 아직 입을 열고 있지 않습니다. 줄기는 제 전화를 피합니다. 몸통은 추정만 할 뿐 아직 누구라고 말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실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이렇게 아무런 답변도 안한다면 저로서는 계속 취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의 취재가 부담된다면, 김석원 행정관은 어서 제 전화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적극 해명하셔야 합니다. 언론의 취재 의지가 꺾이도록 명쾌하게 해명하십시오. 청와대는 일개 개인이 아니잖습니까.

4년간의 제 기자생활에서 얻은 교훈 하나는 분명합니다.
진실은 하나입니다.
청와대 시민사회소통비서관실은, 시민사회와 소통을 하는 곳이었거나 시민사회 여론을 조작하는 곳이었습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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