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방송의 공공성·공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냐는 소유구조 문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공영방송 KBS가 최근 3년간 보여준 극적인 변화를 생각해 보라. 소유구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수많은 프로그램이 없어지고 이와 함께 시청자들의 환호도 식어 버리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최근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그렇다. 사장 한 명 바꿨을 뿐인데, 얼마나 많은 퇴행적인 조치가 ‘시장상황에 따른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는가.

때문에 SBS 문제를 다룰 때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는 ‘지주회사 체제의 문제점’이라는 용어는 분명 생소할 뿐만 아니라 난데없어 보일 수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당위적인 명제만으로 다루기에는 방송 공공성이란 주제는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방송과 언론의 공공성·독립성은 소유구조를 막론하고 위기에 빠졌는데, 왜 유독 SBS의 경우에만 ‘지주회사’라는 불편한(?) 기제를 거쳐야만 하는가.

이 글의 목적은, 이런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이 이 시기 방송언론의 공공성 논의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있다. 지주회사에 관한 역사적이고 논리적인 두 가지 관점의 언급을 통해, 이 문제가 뻗어나가는 지점이 미래에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 2월 22일 서울 목동 SBS본사에서 개최된 2010년 SBS 주주총회에서 하금열 SBS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이 SBS 이사로 선임됐다. 하금열 사장은 주총 직후 개최된 이사회에서 호선을 통해 SBS이사회 의장이 됐다. SBS 구성원들은 대주주인 미디어홀딩스의 임원이 SBS 이사회 의장이 된 것에 대해 "지주회사 지배체제의 강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곽상아
1. 지주회사 논의의 역사성

SBS 윤세영 회장은-이제 명예회장이 됐다- 지난 2005년 2월, SBS 대표이사 사장직을 내놓고 이사회 의장에 취임했다. 그러면서 ‘방송의 공익성 강화와 소유 경영의 분리가 이뤄졌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지난 2008년 2월 지주회사 ‘SBS 미디어 홀딩스’(이하 홀딩스)가 출범했다. 홀딩스 체제의 핵심 정신은, 바로 윤 회장의 ‘방송의 공익성 강화’와 ‘소유-경영의 분리’ 선언인 셈이다.

다시 조금 전으로 거슬러 가자. 윤세영 회장의 소유 경영 분리 선언은 결코 자발적인 것이 아니다. 윤 회장의 이 선언이 나오게 된 데는, SBS 공공성에 대한 전사회적 논의로 촉발됐던 이른바 2004년 SBS 재허가 논란이 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과제를 민영방송 SBS에서 어떤 형식으로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소유-경영의 분리’를 통해 대주주의 소유는 인정하되 경영·편성·제작에 대한 간섭을 배제하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바로 홀딩스 체제다. 그 때문에 홀딩스 전환 논의도, 시민사회 보다 정확하게는 참여연대와 SBS 노사가 당시 열린우리당 정부의 암묵적인 이해(?) 아래 진행됐다.

그러나 김상조 교수의 최근 지적처럼, ‘지주회사’에 대한 노조와 시민사회의 이해는 결과적으로 불충분했다. 공정거래법상 ‘주식 소유를 통한 사업 지배’가 목적인 지주회사에게, 경영에 관여하지 말라는 요구는 처음부터 순진한 발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지배’의 형식과 내용이, 정치적 환경에 따라 얼마나 요동칠 수 있는지도 충분히 예상치 못했고, 그 때문에 홀딩스 체제에 대한 법적·제도적 규제 역시 정교하지 못했다. 지주회사 체제를 ‘SBS 독립경영’과 동전의 양면으로 기대했던 노조와 시민사회의 생각은 지난 2년간 산산조각 났다.

현재의 SBS 홀딩스는 지배는 하는데, SBS 경영에는 책임지지 않는 공룡이 돼 버렸다. SBS는 적자를 걱정하고 있는데, 홀딩스 아래 SBS 여러 자회사들은 수백억 원의 흑자를 보고 있다. 그렇다고 SBS 경영에 홀딩스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노조가 협상을 하고 싸움을 벌여야 하는 SBS 경영진은 실권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실권을 행사할 의지가 없는, 즉 경영상 이유든 방송 공공성과 관련된 이유에서건 ‘SBS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지배 행위’와 맞설 각오가 없는 사람들로 경영진을 채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22일 오전, SBS노조가 주총장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는 모습. ⓒ곽상아
2. 지주회사 규제 논리와 그 미래

지주회사건 대주주의 직접 지배건 아니면 공영이건 민영이건, 어떤 소유구조를 막론하고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규제의 핵심은 결국 ‘방송 언론의 공익성이고 공공성’이다. 시청료를 걷어 재원을 마련하는 공영방송이나 광고를 통한 수익을 추구하는 민영방송이나, 공공재인 전파를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이상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수많은 언론관련 단체들과 미디어, 심지어 이해관계가 다소 상충하는 신문들의 매체 비평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지주회사 논의의 역사성과 규제 논리적 정합성이 만나는 지점도 바로 이곳이다. SBS 홀딩스 체제의 문제점은 ‘방송 언론의 공익성’ 요구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우회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지상파 방송의 대주주 소유 지분 제한을 40%로 규정한 방송법의 경우, 지상파 SBS에는 적용되지만 SBS 홀딩스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지배하고 있지만 규제를 피해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회사 소유구조를 제한하면서 그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를 들어 본 바 없다.

이른바 ‘터널링’ 문제도 심각하다. 일종의 이익 빼돌리기를 뜻한다. SBS는 세전 수익의 15%를 사회 환원 기금으로 내고, 방송발전기금도 해마다 수백억 원씩 내고 있다. 공영방송에 비해 다소 비대칭적으로 가혹하다는 일부 불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이것이 현재의 룰이다. 그렇다면 홀딩스 입장에서는 굳이 SBS에서 순이익을 많이 남길 이유가 있겠는가. 더구나 뉴미디어의 등장과 한류 덕분에 2차 콘텐츠 판매시장(다시 보기, 해외 판권 등)이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SBS보다는 그 콘텐츠로 사업을 하는 SBS 드라마플러스나 콘텐츠허브 등 다른 자회사에서 수익을 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실제 2010년 SBS는 영업이익이 적자였지만, 드라마플러스와 콘텐츠허브는 각각 183억, 203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요컨대 지상파 SBS는 ‘강력한 콘텐츠 생산기지’ 혹은 ‘납품기지’로서, 지상파 방송에 대한 각종 규제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바람막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가 돼 가고 있다.

독자들, 특히 언론 공공성·공익성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 왜 이 논의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 문제가 언론의 미래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경영 합리화’라는 영역에서 SBS의 경험을, 각 언론 경영진은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사소하게는 최근 MBC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평가제도 'S-T-O-R'(일종의 인사고과 제도)의 모델도 10년 전부터 SBS에서 시행중인 ‘S-A-B-C' 차등 성과급제도이고, 나아가 신문과 종편을 아우르게 된 조중동의 소유구조도 결국 SBS 홀딩스 체제를 벤치마킹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규칙과 제도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생길 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주회사 논의의 역사에서 미처 챙기지 못해 방치됐던 법과 제도의 허점들을 정비하는 것은 닥쳐올 싸움에 대비하는 중요한 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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