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주한유럽상공회의소(유럽상의)가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관련해 "한국 시장 철수"를 운운한 배경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의뢰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총은 부인하고 있다. 

유럽상의는 노란봉투법 입장에 대한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한국 시장 철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예시에 불과하다고 발을 뺐다. 보수언론은 유럽상의 등 외국기업을 앞세워 노란봉투법을 비판하고 있다. 외국기업들이 글로벌 스탠더드인 노란봉투법에 대해 반발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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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은 원청 사업자가 하청 노동자와 직접교섭을 하도록 하는 '진짜 사장 교섭법', 사용자가 파업노동자에 대해 무분별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손배 폭탄 방지법'으로 불린다. 지난 28일 유럽상의는 '사용자' 정의를 확대한 노란봉투법에 대해 "기업이 단체 교섭을 거부해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할 경우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도 지난 30일 노란봉투법을 우려한다는 입장을 냈지만 '한국 시장 철수' 등의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지난 29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유럽연합이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할 때 한국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을 요청한 적이 있다며 "자유무역을 하는 데 한 나라가 국제기준에 못 미치면 이를 저임금 덤핑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SNS에 "유럽 내에서는 이미 국제 노동기준에 맞춰 온 유럽 기업들이 왜 갑자기 노란봉투법에 기업 철수까지 들먹일까"라며 "만화 '송곳'에 그 답이 나온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지금부터는 여기서도 그러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31일 한겨레 [단독] 기사 <유럽상의 “한국 철수는 최악 가정일 뿐…노란봉투법 입장, 경총서 의뢰”>에 따르면, 유럽상의 관계자는 "'철수' 표현은 만약의 만약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예시로 든 것인데 이 부분이 보도에서 강조됐다"면서 "우리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가졌다기보다는 경총 등과의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입장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9월에 발간하는 백서에 '사용자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넣기로 준비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법안이 급물살을 타자 '백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 먼저 입장을 밝혀줄 수 있느냐'는 쪽으로 논의가 됐다"고 했다. 유럽상의는 해마다 산업별 규제 이슈를 선정해 정부에 건의하고 백서를 만들어 공개한다. 유럽상의는 이번 입장이 회원사의 통일된 입장이 아니라고 했다. 경총은 한겨레에 "경영자 네트워킹이 있기 때문에 참고자료를 공유한 것"이라며 "실무선에서 공식 요청은 없었다"고 했다. 

한겨레는 "노란봉투법 반대 진영의 '선두'에 유럽상의가 등장하자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많다. 노조 활동 등 노동권 보장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유럽계 기업단체가 '한국 시장 철수'라는 강도 높은 표현을 써가며 국회 입법에 반발했기 때문"이라며 "보수언론은 반색했다. 같은 날 나온 경총 입장보다 앞세워 쓰며 '노란봉투법 포비아'를 키우려 했다"고 비판했다. 신장식 의원은 "윤석열은 고발사주, 류희림(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민원사주, 경총은 논평 사주"라고 꼬집었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이 지난 30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중지를 촉구하는 업종별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이 지난 30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중지를 촉구하는 업종별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겨레는 31일 사설 <노란봉투법 취지 왜곡하는 과잉 불안 조장 멈춰야>에서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책임을 강화하는 한편,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자의 삶이 파탄 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며 "그런데도 경영계는 여전히 입법 취지를 왜곡하는 여론전만 펴고 있다. 언제까지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을 건가"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수백개의 하청 노조가 전부 제각기 교섭을 요청해서 산업 현장이 혼란에 휩싸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정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원·하청 교섭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는 중인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노조 활동이라고 해서 무조건 면책권을 주자는 것도 아니다. 불법행위에 대해선 조합원의 지위와 역할, 관여 정도 등을 고려해 형평에 맞게 손해배상 책임 비율을 정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외국기업들 노란봉투법 반발, 여기선 그래도 된다는 건가>에서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주한 외국 기업 단체들의 반발이 도를 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내외 경제단체들은 '무조건 반대'식 태도를 접고 입법 논의에 참여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옳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노조법 2·3조 개정을 수차례 권고했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란 얘기"라며 "유럽 각국은 한국에 비해 노동자의 권리를 더 폭넓게 보장한다. 그런데도 EU상의가 노란봉투법에 반대하며 철수까지 운운하는 것은 유럽과 달리 한국에선 노동자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이중잣대"라고 질타했다. 

경향신문은 국내외 경제단체들이 노란봉투법 시행 시 하청노동자 파업이 1년 365일 이어지고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터무니없는 침소봉대"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노란봉투법은 없는 갈등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원청사업주와 하청노동자의 갈등을 제도화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제도의 틀로 들어와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안정적 노사관계 토대에서 기업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장기적이고 격렬한 노사분규 대부분이 하청사업장이나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짚었다.

하지만 보수언론에서 유럽상의 입장을 앞세워 노란봉투법을 비판하는 보도와 사설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31일 사설 < “한국서 철수할 수도” 미·유럽 기업 ‘노란봉투법’ 반발>에서 "주한 외국 기업들의 우려는 곧 각국 정부와 본사로 전달될 것이다. 통상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다"며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법적 리스크가 증가한다면 누가 한국에 투자를 하겠나.(중략)노란봉투법 같은 반(反)기업 법안들은 결국 기업들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증시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게 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꼽히는 상법을 개정해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방안에도 반대한다. 조선일보는 지난 3월 1일 사설 <'코리아 디스카운트' 만든 게 누군가>에서 "대표적인 반(反)기업 법안인 노란봉투법도 재발의한 것이 민주당"이라며 "지금 기업들은 소액 주주의 소송 남발, 경영 활동 위축 등의 우려 때문에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이 집권하면 코스피 지수가 3000대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며 "규제 만능의 민주당식 경제 노선으로 3000이 아니라 나라 경제 전체가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고 했다. 지난 30일 코스피는 3254.47로 마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방문해 손경식 경총 회장과 회장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방문해 손경식 경총 회장과 회장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동아일보는 사설 <주한 美상의도 ‘노봉법’ 반대… “韓 투자 매력에 부정적”>에서 "가뜩이나 경직된 노동 환경으로 한국은 ‘기업 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12∼2021년 한국의 파업으로 인한 연평균 근로 손실 일수는 임금근로자 1000명당 38.8일이었다"며 "여기에 노란봉투법까지 시행되면 노동 규제와 노사 갈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외국 기업의 투자 축소나 사업 철수가 현실화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사설 <중도·실용 공약 너무 빨리 내팽개치는 여당>에서 경총, 미국상의, 유럽상의의 노란봉투법 반발을 전하며 "경제성장을 대표 공약으로 내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해외 투자 기업에까지 불안감을 안긴 것"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이재명 대통령이 기업 배임죄의 문제점을 거론하며 재검토를 언급한 데 대해 "해외 기업들이 지목한 건 여당이 강행하는 노란봉투법"이라고 날을 세웠다. 

국민일보는 사설 <미국과 유럽 기업들도 반발하는 노란봉투법>에서 "여당은 다음 달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자칫 국제 문제로도 비화할 수 있는 만큼 절대 서두를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이들 단체 발언엔 날이 잔뜩 서 있다. ECCK(유럽상의)는 '(무수한 하청 노조의) 교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한다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며 "한국보다 노동친화적 환경에 익숙한 유럽계 기업들의 반응이기에 예사롭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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