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지난 24일 오전 9시경 노란봉투법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의 개정안의 별칭인 노란봉투법 통과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로 수년간의 논쟁과 사회적 갈등 끝에 성사된 결과다. 이 법은 노동자들이 파업 과정에서 거액의 손해배상과 가압류 위협에 시달리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법안 통과 과정은 치열했다. 재계와 보수 진영은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고,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회복하는 최소한의 조치”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여야 대립과 사회적 갈등을 남겨두고 통과되었다.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사회적 평가는 여전히 극명히 갈라져 있다. 노동계는 그동안 법원의 판례들이 재벌과 경영계 중심으로 운영돼 헌법상 노동3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이번 조치는 “헌법적 권리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전진이라 자평한다. 반면 재계는 “기업 활동의 위축”과 “국제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며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정치권도 입장이 갈린다. 야당은 경제 악영향과 기업의 부담을 강조하며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여당은 노동 존중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 옹호한다. 찬반의 논리는 서로 평행선을 달리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이 법이 기업의 투자와 전략적 판단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법안 통과 직후 주식시장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법안 통과가 일요일 오전에 이루어져 당일은 주식시장이 열리지 않았고, 법안 통과 후 개장된 첫 영업일에서 로봇 제조업체와 자동화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일제히 큰 폭으로 올랐다. 이는 투자자들이 기업이 인건비 상승과 노사 분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로봇 도입에 속도를 낼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노동자의 협상력이 높아지면 기업은 더 큰 비용 부담과 불확실성에 직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 투자는 경영 안정성을 확보하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떠오른다. 결국 노란봉투법 통과라는 정치·사회적 사건이 로봇 산업의 주가에 직접 반영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6월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공지능(AI) 글로벌 협력 기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 대통령, 김두겸 울산광역시장.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508/314339_224610_537.jpg)
노사 갈등에 따른 생산 차질과 파업 위험, 인건비 상승 압박, 강화되는 노동 규제를 고려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로봇 도입, 자동화 등이 매력적인 대안이 된다. 특히 정부가 최근 휴머노이드 3대 강국 진입을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시점이라 로봇 관련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단순히 기업 비용 절감 차원이나 생산성 향상에 머물지 않고, 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노동권 보장을 위해 제정된 법이 아이러니하게도 노동 수요 자체를 줄여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권리 향상이라는 성과와 함께, 일자리 축소라는 역설적인 파급 효과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사실 법과 제도가 기술 도입을 촉진하는 현상은 역사적으로 낯선 일이 아니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노동시간 단축 법제가 강화되자 기업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기계화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에서도 20세기 초 노동운동이 확산되며 임금 수준이 급격히 상승하자, 기업들은 자동화 설비를 대규모로 도입해 생산성을 끌어올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주문형 키오스크나 테이블 오더를 적극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시장의 자율적 선택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사회적 제도와 정책 변화가 강력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 역시 노동권 보장을 계기로 자동화 투자가 촉진되는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접근하기는 어렵다. 법 제정은 불가피한 사회적 선택이었지만, 그 이후의 파장과 부작용에 대한 대비가 절실하다. 노란봉투법 통과와 로봇 도입 모두 불가역적인 역사적 흐름이라면, 이제 중요한 과제는 노동 인력 축소에 대응할 사회적 안전망과 재교육 정책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이다. 기술이 대체한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국가적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시장의 변화를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구조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대응을 늦출수록 사회적 충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법과 제도의 제정·개정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권리 확대라는 중요한 성과를 남겼고, 이는 불평등한 노사 관계를 일부 정상화로 돌려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성과가 또 다른 불평등을 낳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책임 있게 대응해야 한다. 이번 논쟁은 단순한 노동법 개정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노동, 권리와 일자리의 균형이라는 더 큰 화두를 던져준다. 노란봉투법 통과가 단순히 과거를 보상하는 법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법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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