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비정규직 노조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현대자동차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하자 법원에 '75세 노모가 책임지게 해달라'는 신청서를 냈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차가 전례 없는 반인권적 손배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현대차의 반인권적 손배 소송이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입법 의지를 밝혔다.
한겨레는 지난 22일 현대차가 울산지법과 부산고법에 낸 '소송 수계 신청서'를 입수해 [단독] 보도했다. 한겨레는 "현대차는 15년 전 울산공장에서 있었던 불법파견 노동자 정규직화 투쟁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조가 벌인 파업에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청구 소송 가운데 지난 1월 숨진 송아무개 씨 사건 2건에서 송 씨 대신 상속인인 75살 노모한테 책임을 물어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현대차는 신청서에서 "송 씨는 2025년 1월 사망하였는바 송 씨 상속인인 어머니 OOO로 하여금 피고 송OO의 지위를 수계해 사건을 진행할 수 있도록 신청하오니, 이를 허가해달라"고 했다.

23일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 관계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에 손배청구 소송 전면 취하를 요구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간사 김주영 의원은 "이것이 과연 2025년 대한민국의 모습인지 묻고 싶다. 소송 중 사망한 노동자의 가족에게 소송 수계 신청을 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며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 일"이라며 "현대차의 비인간적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고 즉각적인 사과와 손배소송 전면 취하를 촉구한다"고 했다.
민병덕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불법은 현대차가 했다.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시정명령 내렸고 대법원도 불법파견을 확정했다"며 "그런데 현대차는 시정도 교섭도 거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손배 소송을 쏟아 부었다. 손해배상이라는 탈을 썼지만 본질은 보복"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 위원장은 "우리에게 맞서면 죽어서도 책임져라라는 협박이다. 손배소를 칼로 쥔 기업, 그 칼 끝을 사람에게 들이대는 사회"라며 "노란봉투법이 왜 필요한지 현대차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 죽음, 이 모욕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이것은 단순한 소송이 아니다. 경제적 폭력, 노동탄압의 진화된 얼굴"이라며 "과거의 물리적 탄압 대신 이제는 손해배상으로 노동자의 삶을 옥죄고 있다"고 말했다. 서 원내대표는 "새 정부는 사회대개혁을 약속한 만큼 노란봉투법 입법을 서두르자"며 "현대차는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모든 손배소를 즉시 취하해야 한다"고 했다.
류하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은 "소송 수계라는 것은 일반적인 민사 소송 절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송도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며 "현대차는 소송 수계가 단순 절차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니다. 로봇의 입에서도 이런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류 부위원장은 "불법행위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다가 피해자가 사망하자 유가족에게 소송을 승계해서 책임 묻는 것은 AI로봇도 못할 짓이라고 결론낼 것이 분명하다"며 "현대차가 인간이길 포기하면 국민들은 당신들의 제품을 포기할 것"이라고 했다.

송 씨는 지난 2003년 1월부터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했다. 그는 지난 2010년 11월과 2013년 7월 현대차 불법파견 시정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에 참여해 1시간가량 생산라인을 멈춰 세웠다. 현대차는 송 씨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 수십명에 대해 손배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현대차의 특별채용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소송이 취하되어 송 씨 등 6명의 노동자만 소송 당사자로 남아 있었다.
현재 울산지법·부산고법에서 진행 중인 송 씨 재판은 파기환송심이다. 울산지법은 송 씨 등 5명에게 2312만 원, 부산고법은 송 씨 등 2명에게 3750만 원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023년 6월 파업 당시 발생한 손해가 추가생산 등으로 회복된 사정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배상이 선고된 두 사건 원금은 6062만 원이지만 그동안 쌓인 지연이자가 1억 7733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송 씨는 법원에서 현대차 소속 노동자로 인정 받았다. 대법원은 2022년 10월 송 씨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대해 현대차가 19년 동안 불법파견 고용을 한 책임이 있다며 송 씨를 현대차 소속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송 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돼 일하다 지난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대차는 소송 수계 신청 이유에 대해 한겨레에 "법률에 따른 절차를 이행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시민단체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 윤지선 활동가는 한겨레에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 등 손해배상청구 소송 중에 노동자가 숨진 일이 있었으나, 회사 쪽이 가족한테 책임을 묻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대리한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현대차가 사내하청 형태로 비정규직을 착취해 수조 원에 이르는 인건비 차액을 챙기며 세계 3위 자동차 회사로 도약해놓고도 이들 비정규직의 노고는 깡그리 무시해왔다"며 "이번 소송 수계 신청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철저히 짓밟는 것도 모자라 가족에게까지 책임을 떠넘기는 잔인하고 냉혹한 행태"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23일 사설 <숨진 노동자 ‘70대 노모’에 손배청구서 내민 현대차>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에 재갈을 물리는 손해배상소송 자체도 부당한데, 당사자가 세상을 떠났으니 나이 든 어머니가 대신 돈을 물어내라고 요구한 것"이라며 "그동안 노조 파업에 대한 회사 쪽의 손배소송이 숱하게 있었지만, 이렇게 비정하고 반인권적인 경우는 처음"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대법원 판결을 보면 현대차가 주장하는 송 씨의 손배 책임은 사라졌다고 짚었다. 대법원에서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 이유였던 불법파견이 인정됐고, 파업으로 인한 손해도 회복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지적이다. 한겨레는 "현대차는 그동안의 불법 행위를 사과하고 과도한 보복 소송을 취하하기는커녕, 송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가족에게 연대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라며 "판매량 기준 세계 3위 자동차 회사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따져 물었다.
한겨레는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두 차례에 걸쳐 거부권을 행사했던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국정기획위원회 핵심 과제로 선정해 공약 이행에 나설 방침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송씨의 경우처럼 합법적 노동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배상 책임은 물을 수 없게 된다"며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차도 이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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