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 뭉개기를 뒤로한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 요구가 여당과 비명계에서 분출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제한하고 이후 4년 중임제를 통해 대선·총선을 같은 시기에 치르자는 게 주된 내용이다.

최상목 대행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로 현행 헌법이 행정부에 의해 훼손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차기 대권을 의식한 개헌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내란 사태로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논의에 불이 붙은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대선·총선 시기를 맞추는 것은 대통령 권한 축소에 역행하는 방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기 위한 언더독의 정치공학적 행위라는 분석도 나온다.   

4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원 정치개혁 대담회 '국가원로들, 개헌을 말하다'에 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황식 전 총리, 김진표 전 국회의장,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유홍림 서울대 총장, 정세균 전 총리, 박병석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총리,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낙연, 김부겸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4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열린 국가미래전략원 정치개혁 대담회 '국가원로들, 개헌을 말하다'에 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황식 전 총리, 김진표 전 국회의장,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유홍림 서울대 총장, 정세균 전 총리, 박병석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총리,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낙연, 김부겸 전 총리 (사진=연합뉴스)

지난 4일 정세균·박병석·김진표 전 국회의장, 정운찬·김황식·이낙연·김부겸 전 국무총리, 정대철 헌정회장,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서울대에서 열린 '국가 원로들 개헌을 말하다' 토론회에 참석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원장 강원택)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서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구상이 논의됐다. 크게 내각제, 책임총리제, 대선·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대통령제가 거론됐다.  

이재명 대표를 향한 메시지가 이어졌다. 이낙연 전 총리는 "정치권 내부에서는 민주당의 '어떤 분'만 개헌에 소극적이고 나머지는 하자고 하는데, 그 어떤 분이 n분의 1이 아니다"라며 "그런데 그분을 위해서도 개헌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박병석 전 의장은 "첫 번째 대통령 임기는 3년으로 하되, 중임의 길을 터주자. 그래야만 가장 유력한 후보도, 국회의 압도적 다수당도 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지금 개헌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할 사람은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이라며 "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개헌에 동참하지 않으면 개헌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정치권의 개헌론은 '차기 대통령 임기 3년으로 단축 후 4년 중임제 도입'으로 압축된다. 여권에서 오세훈·한동훈·유승민·안철수, 야권에서는 김동연·김부겸·김두관 등의 정치인들이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여야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 1위 정치인들은 개헌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밝힌 자신의 개헌 구상이 있지만 현재는 내란 사태 극복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4년 중임제를 지난 대선에서 공약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개헌 필요성이 있다면 차근차근 고쳐나가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회의장 벽면에 106주년 3·1절을 맞아 '헌법수호!'가 적힌 태극기가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회의장 벽면에 106주년 3·1절을 맞아 '헌법수호!'가 적힌 태극기가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7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비대위 회의에서 "국회의 입법 독재 가능성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국회는 그 사이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존재가 되고 말았다"며 "(윤석열)대통령이 임기까지 내던지며, 스스로 희생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이번 기회에 권력 구조를 포함한 개헌은 반드시 이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권한까지 축소하는 개헌 논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당시 한국일보는 기사 <"尹, 임기까지 던지며 희생"… 與 '개헌'에 올인하는 이유는>에서 "국민의힘이 개헌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개헌을 고리로 '탄핵 기각' 여론을 고조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지금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6공화국 체제의 수명을 연장하느냐, 대통령의 희생과 결단 위에 새로운 제7공화국을 출범시키느냐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이 역사적 갈림길에서 헌재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노골적으로 탄핵 기각을 주문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일보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견제의 성격도 크다"며 "다만 실질적 개헌의 키는 이 대표가 쥐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 때문에 개헌을 강조하는 것은 국민의힘 입장에선 이 대표의 바뀐 입장을 부각하면서, '권력자'로서 부정적 이미지까지 덧씌울 수 있게 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이충재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은 '이충재의 인사이트' <'임기 단축' 개헌론이 노리는 것> 칼럼에서 "(임기 단축 개헌론은)언뜻 보면 개헌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판세가 불리한 여권 주자들이 국면을 바꾸려는 의도가 짙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라며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르는 방안에 대해서도 대통령 권력을 되레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 많다"고 썼다. 

이충재 전 국장은 2028년부터 4년마다 대선과 총선을 같이 치러 안정적 국정운영을 꾀하자는 주장에 대해 "통상 대선과 총선이 비슷한 시기에 치러지는 경우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승리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총선 동시 실시는 선거의 일체화 현상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행정권력을 장악한 대통령이 사실상 의회권력도 손에 넣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 대선까지 4년간 권력 견제는 불가능해지는 셈"이라고 짚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행정·입법 권력을 모두 손에 넣게 된다고 주장하며 보수진영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충재 전 국장은 "(대선·총선 동시 실시는)국민의힘에서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거대 야당인 민주당과 한 몸이 돼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거라고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충재 전 국장은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면 정국 불안이 가속화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3년 임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이충재 전 국장은 "집권 1년 뒤인 2026년에 지방선거를 치러야 되고, 그 다음에 또 총선을 치르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라며 "취임해서 국정을 파악하는데 한동안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국정의 비효율성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측면이 크다. 사실상 '식물대통령' 신세를 면하지 못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했다. 

이충재 전 국장은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 없이 4년 중임제를 도입, 2년 주기로 대선과 총선을 실시하는 방안이 대통령 권한 축소 취지에 부합하는 안이라고 판단했다. 이충재 전 국장은 "행정부와 입법부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집권세력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이렇게 되면 대선과 지방선거를 매번 같은 시기에 실시하게 돼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일체화는 물론 선거에 따른 사회적 비용 감소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이충재 전 국장은 "중요한 건 '87년 체제' 극복으로 상징되는 미래지향적 개헌이지 당장의 선거를 의식한 졸속 개헌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5일 발표된 KPI뉴스-리서치뷰 여론조사 결과에서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에 반대하는 여론이 찬성하는 여론의 2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9.5%는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고 개헌을 완수하는 방안에 반대('매우 반대' 39.2%, '반대' 20.3%)한다고 밝혔다. 응답자 28.9%는 찬성('매우 찬성' 12.3%, '찬성' 16.6%)한다고 답했다. '모름'은 11.6%다. 

지지정당별로 살펴보면 민주당 지지층에서 반대(71.5%)의견이 찬성(18.1%)의 약 3.9배에 달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49.9%)가 찬성(37.9%)의 약 1.3배였다. 이념성향별로도 반대 응답은 진보층 67.3%, 중도층 62.1%, 보수층 53.3%로 나타났다.(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 대상. ARS 조사 10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5일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서울 구로구 정의당 당사에서 '광장을 닮은 정치, 광장을 담은 헌법’ 개헌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사진=정의당)
5일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서울 구로구 정의당 당사에서 '광장을 닮은 정치, 광장을 담은 헌법’ 개헌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사진=정의당)

정치권 일각에서는 직접 민주주의 확대와 대의 민주주의 내실화를 골자로 하는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일 정의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광장을 담은 헌법' 개헌운동을 제안했다. 정의당의 개헌 운동은 국민발안권·국민투표부의권, 결선투표제·선거제도 비례성 강화·지역정당 활성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양극화된 국회에서 삼권분립의 원칙은 수시로 훼손됐다. 이제 시민에게 직접권력을 부여하여 ‘제4의 권력’이 개입해야 한다"며 "주권자가 개헌안과 법률안을 직접 작성하고 제안하는 국민발안권, 국회 및 정부에서 공회전하거나 대통령이 여러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쟁점에 대해 주권자 전체의 의견을 묻는 국민투표부의권이 우리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또 권영국 대표는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부터 결선투표제를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며 "낡아빠진 승자독식 선거제도로 인해 선거 때마다 절반에 가까운 표심이 버려지고, 둘 중 하나라는 원치 않는 선택지 중에 골라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광장의 빛깔은 저토록 다채로운데 우리 정치의 색은 어째서 단 두 가지뿐이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권영국 대표는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도록 다당제 연합정치가 실현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우선은 결선투표제가, 그리고 향후 논의를 통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와 지역정당의 활성화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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