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전임 정부와 야당을 겨냥한 '반국가 세력'을 또 꺼내 들었다. 대통령실은 야당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지만 대통령이 보수 결집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회를 두 동강 내는 분열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언론 비판이 제기된다.
여권 안팎에서 초유의 '반쪽 광복절' 사태를 맞은 윤 대통령이 광복회와 야권을 겨냥해 강경 발언을 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보수언론에서도 정부의 '중일마'(중요한 건 일본 마음) 논란에 "진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마음"이라는 비판이 이뤄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첫날인 19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허위정보와 가짜뉴스 유포, 사이버 공격과 같은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에 대한 대응 테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해 폭력과 여론몰이, 그리고 선전·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라며 "이러한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암약' 발언은 야당, 언론, 시민단체 등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한국자유총연맹 행사와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정부, 야당, 시민단체 활동 등을 '반국가 세력' '공산전체주의 세력' 등으로 지칭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을 향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언론에 "북한의 위협과 관련한 말씀"이라며 "동시다발적으로 하이브리드전이 일어나는 게 최근 전쟁 양상이며, 북한도 이런 회색 전쟁 형태의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19일 SNS에 올린 글에서 "을지 국무회의를 빙자해 두루뭉 반국가세력이라 하지 말고 콕 집어 야당, 비판 언론, 국민이라고 하라"며 "이태원 참사에 특정 세력 운운, 김건희 명품백 뭉갠 검찰 및 건희권익위, 대통령실 용산 이전 거부 감사원, 언론 자유 말살 방통위 등등. 이들이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반국가세력 아닌가"라고 했다. 같은 날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SNS에 "대통령이 현실을 떠나 가신들을 데리고 극우 판타지의 세계로 집단 이주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20일 동아일보는 기사 <尹 “反국가세력 곳곳 암약… 전국민 항전 의지 높여야”>에서 "여권 안팎에선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이 ‘허위 선동’, ‘날조’, ‘반통일 세력’ 등을 언급하고 이날도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는 데에는 ‘반쪽 광복절’의 원인이 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둘러싼 대통령실과 광복회 간 갈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며 "'광복회와 야권이 근거 없이 친일몰이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미"라고 보도했다.
19일 TV조선은 "국가보훈부가 광복회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을 따지기 위한 감사를 검토중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TV조선에 "(광복회)단독 진행 행사가 정부 탄핵 성격으로 변질된 데 대해 자체 감사를 검토 중"이라며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수사기관에 고발을 의뢰할 방침"이라고 했다. 광복회는 보훈부 산하단체로 정부로부터 연간 32억 원을 지원받는다.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다.
20일 한국일보는 사설 <'반국가세력·항전의지'... 윤 대통령 협치에 다른 메시지>에서 "(UFS 연습)취지를 감안하더라도 '검은 선동세력'을 언급한 광복절 경축사에 이어 과거 공안통치를 떠올릴 법한 대통령 발언에 다수 국민이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반국가세력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윤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이 필요할 때마다 해당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정부가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을 파악하고 있다면, 당장 이들을 체포해 수사하면 될 일"이라며 "괜한 연기 피우기로 국면전환을 노린다는 의심을 살 게 아니라면 대북·해외 첩보망에 구멍이 뚫린 것부터 손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제언했다. 한국일보는 국군정보사령부 블랙요원 기밀 유출 사건과 공작 암호명 공개 논란을 거론했다.
한국일보는 "최근 일제 식민지 미화 논란으로 국가정체성을 흔들고 있는 주요 인사들 역시 분명한 역사인식을 밝힐 필요가 있다"며 "국민은 이러한 난맥상을 걱정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느닷없이 국민에게 항전 의지를 요구하고 있으니 무슨 영문인지 당혹스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사설 <또 불쑥 “반국가세력” 꺼낸 윤 대통령, 민생은 안중에 없나>에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반국가세력 운운한 것은 뜬금없을뿐더러 막연하게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해 사회구성원 간 반목과 불신을 조장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의 입을 틀어막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무책임하다"며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광풍의 작동 방식이 이와 같았는데, 그 출발이 체제 내부의 적에 대한 과대 망상이었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지난 총선에서 참패하고 한동훈 체제 출범 후 여당 내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은 윤 대통령이 보수층을 결집시키려 다시 이념을 들고나온 걸로 보인다"며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 입에서 언제까지 이런 시대착오적 이념의 독전가를 들어야 하나.(중략)지금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윤 대통령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기 바란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윤 대통령 또 “반국가 세력 암약”, 나라 두쪽 내려는가>에서 "‘두 쪽 광복절’ 행사에서조차 국민들 마음의 상처를 보듬기보다는 비판 세력 공격에 힘을 준 윤 대통령은 나흘 만에 또다시 ‘내부의 반국가 세력’을 겨눴다"며 "윤 대통령의 편가르기, 적대시, 분열의 정치에 민심은 지난 4월 총선에서 회초리를 들었다고 봐야 한다. 윤 대통령은 그 뒤에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고 했다.

중앙일보 최현철 논설위원은 칼럼 <진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마음>에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중일마' 발언과 윤 대통령의 인식을 향해 "복통 환자에게 소화제를 여러 번 먹였고, 그에 대해 피로감도 있으니 환자는 고통을 호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최 논설위원은 "약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더 큰 병이 있는데 오진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의사 같다"며 "일본이 진정어린 사과를 한사코 거부하고, 찔끔 사과를 하더라도 뒤돌아서서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데 우리가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진정성에서 우러나왔든, 겉치레든 가해자는 피해자가 용서할 때까지 사과하는 게 정석"이라고 했다.
최 논설위원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KBS '기미가요' 광복절 방송, 뉴라이트 본산 낙성대연구소 연구위원이 쓴 '테러리스트 김구' 출판 등을 거론하며 "이 모든 일이 단순한 우연의 중첩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꺾마’로 무장해 집요하게 ‘중일마’를 추진하는 시나리오의 한 단면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윤 대통령, 광복절 기념사에 웬 "가짜뉴스 맞서 자유 가치 무장해야"
- 광복회장 "용산에 '일제 밀정' 있는 것 같다"
- 보훈부, '친일 국정기조 철회' 요구한 광복회 감사 검토
- '중일마' 질문 없는 조선일보 김태효 인터뷰
- "KBS 기미가요 방송, MBC에서 똑같이 벌어질 수 있다"
- '광복절 기미가요 방송' KBS 뉴스9는 어땠을까?
- 광복절까지 쪼개버린 윤석열 정권
- 독립기념관장 논란에 혹여 MBC 심의 민원 빠질쏘냐
- "이종찬 광복회장이 일본 극우 기쁨조 소리 들을 분은 아니잖나"
- 독립기념관 '광복절 경축식' 취소…광복회 불참 선언 맞불?
- 조선의 붕당정치와 대한민국 보수의 친일
- KBS 광복절 맞춤형 질문 “어느 나라 방송인가? ‘친일 방송’인가“
- 조선일보, NHK 교토국제고 가사 왜곡 '중일마'
- 윤 대통령 지지율 20%대 요지부동…부정평가 이유에 '일본 관계' 등장
- 요란했던 윤 정권 가짜뉴스센터는 어디로 갔을까
- 우원식 "일제 때 국적 일본? 독립운동가는 '반국가 세력'인가"
- 네이버 자율규제 강화한다는 '국가 사이버안보 기본계획'
- 조선일보, 반일 괴담·음모론 진원지
- 문체부 '북한 중학생 30명 공개처형' 가짜뉴스 웹툰 논란
- 국힘, 관변단체 자유총연맹 '출연금·기부금 지원법' 발의
- 윤석열이 탄핵변론 수놓은 '공작' 발언 입버릇 경지에
- 독립유공자 후손들 "광복 80주년 전, 뉴라이트 기관장 모두 사임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