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정권이 방송·통신 심의제도를 악용해 언론·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보수언론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심의위)는 '김건희 특검법'에서 '여사'를 뺐다, 일기예보에서 '1'을 표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제재에 나섰다. '입틀막 정권' 비판이 고조되는 이유다.
4일 조선일보는 <‘1′자 썼다고, ‘여사’ 뺐다고 방송 제재, 文정권처럼 할 건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조선일보에서 '문 정권처럼'은 현 정권을 향한 최고수위의 비판이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은 과거 어느 정부보다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겠다고 해왔다"며 "그런데 정부의 방송 대응은 점점 전 정권을 닮아간다는 인상을 준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과거 문재인 정권은 '국민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고 해놓고 실제 한 일은 정반대였다"며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청년을 ‘건조물 무단 침입’이란 황당한 죄목을 씌워 재판에 넘겼고, 대통령 비난 전단을 국회에 뿌린 청년은 대통령이 모욕죄로 직접 고소했다. 김정숙 여사를 김정숙씨라고 지칭하는 보도가 잇따르자 ‘여사’라고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방송 출연자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논평하면서 '여사'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방심의위로부터 '행정지도'를 받은 SBS 사례를 언급하며 "출연자가 지칭한 것은 김 여사가 아니라 법안이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여러 언론이 '김건희 특검법'이라고 통칭해왔다. 법안 정식 명칭도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으로 ‘여사’란 말은 없다"고 짚었다.
이어 조선일보는 MBC가 일기예보에서 '파란색 1'을 표기한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해 제재해야 한다는 국민의힘·선방심의위 주장에 대해 "보도에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는 공론장에서 시청자가 판단하는 게 우선"이라며 "권력이 정부기관을 동원해 언론을 통제하려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왜곡을 일삼는 방송사에 도리어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했다.
같은 날 이진순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은 한겨레 칼럼 <아2고! 2게 대체 무슨 일2고?>에서 70년대 '뽀빠이 라면땅'이 유행할 때 '뽀빠이가 간첩'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며 "한 방송에서 숫자 '1'을 파란색으로 내보냈다고 난리가 났다.(중략)뽀빠이의 망령인가"라고 했다. '뽀빠이 라면땅' 봉지 그림에서 뽀빠이의 빨간 상의는 북한을, 파란 하의는 남한을 뜻하고 뽀빠이의 넥타이가 화살표 모양으로 아래를 향하는 것은 남한을 빨갛게 물들인다는 뜻으로 인식됐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과거 뽀빠이 제조사가 빨갱이 괴담 때문에 뽀빠이의 빨간색 윗도리를 흰색으로 바꾼 것처럼, 정부·여당 눈치 보기 급급한 일부 언론사는 앞으로 ‘1’을 써야 할 때마다 대체어를 찾느라 전전긍긍하고 ‘2’ 자를 공평하게 노출하기 위해 고심할지도 모른다"며 "파란 당, 빨간 당이 있기 전부터 세상엔 형형색색의 자연과 생물이 어우러져 살아왔다. 그 존재의 존엄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는 거짓이고, 비판을 처벌하는 ‘공정’은 폭력"이라고 했다.
한국일보 박서강 기획영상부장은 칼럼 <'숏확행'과 '입틀막'>에서 숏폼 플랫폼 틱톡에는 방통심의위가 접속 차단한 윤 대통령 풍자 영상과 유사한 페이크 영상이 "차고 넘친다"고 했다. 방통심의위는 '현저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며 해당 영상을 차단했고, 경찰은 영상 게시자 특정을 위한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박 부장은 "예컨대 윤 대통령의 2024년 신년사 영상 일부를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왜곡 편집한 영상의 경우 조회수 13만 회, 좋아요 2,000개를 넘어서며 계속 확산하고 있다"며 "'남편이 잘못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해 'ㅋㅋㅋㅋㅋㅋ'로 마무리되는 김건희 여사의 기자회견 짜깁기 영상도 수개월 째 공유 중이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얼굴을 다른 사람 몸에 합성하고 발언의 일부를 잘라 붙인 영상도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박 부장은 "물론 총선을 앞두고 허위 정보, 딥페이크에 대한 경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겠지만, 대다수 이용자들은 피식 웃고 지나칠 숏확행 영상에 국가 권력이 정색하고 통제를 가하는 상황은 당황스럽다"며 "경호원들이 카이스트 졸업생의 입을 틀어막고 사지를 들어 끌어내던 장면과도 왠지 겹치는 느낌이다.(중략)반대 의견을 지닌 국민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차분히 이해시켜 나가는 여유와 포용이 더 절실한 때"라고 했다.
한겨레 박용현 논설위원은 지난 2일 <[논썰] ‘여사’ 뺐다고, 일기예보에 ‘1’ 썼다고…기괴한 ‘입틀막’ 정치>에서 "'동료 시민'의 '자유'를 틀어막는 험악한 풍경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표현의 자유, 즉 자유롭게 말할 자유가 부정되는 퇴행의 시대"라고 했다.
박 논설위원은 '여사' 제재 논란에 대해 "타이의 왕실모독죄가 연상됐다"고 했다. 타이 형법 112조는 왕실을 모독하면 1건당 3~15년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박 논설위원은 지난 2020년 방콕 거리 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분홍색 전통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걷는 '왕비 퍼포먼스'를 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는 연합뉴스 기사를 전했다.
박 논설위원은 "‘여사’ 호칭 사건을 타이의 왕실모독죄에 직접 빗대는 것은 비약이겠지만,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옥죈다는 점에서는 본질상 다를 게 없어 보인다"며 ‘미끄러운 비탈길 효과’(slippery slope effect)'를 소개했다. 박 논설위원은 "사소해 보이는 데서부터 시민의 권리를 제약하기 시작하면, 썰매가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점차 더 큰 권리까지 아무렇지 않게 제약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다"며 "코미디 같은 ‘여사’ 호칭 시비가 하나둘 반복되다 보면 어느 새 대통령 부인에 대한 비판 자체를 틀어막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박 논설위원은 한동훈 위원장의 언론보도 법적대응을 비판했다. 박 논설위원은 한 위원장처럼 언론을 상대로 사사건건 소송을 벌이는 공직자는 흔치 않고, 소송 결과는 한 위원장 패배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했다.
박 논설위원은 한 위원장이 ▲2021년 3월 장 모 기자의 SNS 글 '그렇게 수사를 잘한다는 한동훈이 해운대 엘시티 수사는 왜 그모양으로 했대' ▲한겨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 스펙 쌓기 의혹' 보도 등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혐의없음' 처분이 났다고 했다.
또 박 논설위원은 최근 한 위원장이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자신과 관련한 보도를 제소하고 있다며 "하나같이 자질구레한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한 위원장은 2020년 부산고검 좌천 당시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고 했지만 당시는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였다(오마이뉴스) ▲한 위원장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해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물러섰다(뉴시스) 등의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구하거나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언론에 대한 겁박"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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