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문답에서 MBC 전용기 탑승 거부에 대해 한 말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MBC는 한미 양국 행정부 관계를 이간질 하기 위한 악의적 목적으로 대통령이 미국 의회를 대상으로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했다. 둘째, 이 때문에 대통령은 헌법수호라는 책임을 다할 수 없었고 국민의 안전보장에도 중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셋째, 그러므로 전용기 탑승 배제는 불가피했다. 과연 이러한 규정과 논리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먼저 MBC 보도의 의도에 대해서다. 언론의 보도와 논조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배경을 늘 의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확정하는 것은 특히 권력을 쥔 쪽에서라면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이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MBC가 백악관과 미 국무부 등에 입장을 요구한 것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정상적인 취재 과정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겨우 이런 정도의 근거로 ‘동맹을 이간질 할 목적으로 악의적 보도를 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건 공안검사가 공소장으로 장난칠 때나 하는 일이다.

대통령이 MBC 보도 때문에 헌법적 책임을 다할 수 없었다는 주장도 의문인 건 마찬가지다. MBC 보도로 대통령이 무엇을 못하게 됐다는 것인지, 국민안전에 어떤 영향이 있었다는 것인지 들어본 일이 없다. 이러한 대통령의 인식과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가 논리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당장 유승민 전 의원이 “이렇게 중대한 죄라면 경찰과 검찰은 당장 MBC를 압수수색하고 피의자들을 수사하고 기소해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나”, “MBC와 똑같이 자막을 넣어 보도한 140여 개 언론사들은 모두 ‘같은 중범죄’를 저지른 것이니 동일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썼지 않은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모습 (MBC 보도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모습 (MBC 보도화면 갈무리)​

대통령의 발언 이후 나온 대통령실의 문서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은 ‘뭐가 악의적이냐고 하는 게 악의적이다’를 포함한 10개 항목을 들어 MBC의 악의를 주장했는데, MBC 보도에 대한 대통령실의 태도가 부당하다는 언론계의 지적을 단 한 개도 반영하지 않은 동어반복에 불과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대통령실의 악의가 엿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용보다 형식이다. 대통령실의 대응은 대통령의 발언에 MBC 기자가 현장에서 반발한 것에 대한 것이다. “뭐가 악의적이냐”라고 하니 악의적이라는 근거를 10가지나 들 수 있다는 취지로 억지 반박을 한 셈이다. 심지어 이 입장문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재명 부대변인 명의로 나왔다. MBC 기자와 설전을 벌인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도 YTN 기자 출신이다. 과연 기자 출신들이 ‘자막에 대통령이 하지 않은 미국이란 말을 괄호로 넣은 것은 악의적’이라거나 ‘MBC 특파원이 가짜뉴스를 근거로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에 입장 표명을 요구한 것은 한미동맹을 이간질한 것’이라거나 ‘미 국무부가 한국과 우리의 관계는 끈끈하다고 회신했지만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 황당한 얘기라는 것을 모를까?

대통령이 강경하니 참모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MBC를 반헌법적인 집단으로 규정했다면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게 대한민국 최고 권력 집단의 일반적인 문법이다. 이런 태도는 대통령실의 울타리를 넘는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MBC 기자가 팔짱을 끼고 슬리퍼를 신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쯤되면 마녀사냥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출입기자들의 근무지이기도 한데, 일하는 공간에서 편한 신발을 신고 있다가 미처 갈아신지 못한 건 크게 봐야 부주의일 뿐이다. 이걸 두고 무슨 임금 앞에서 양반다리를 한 것인 양 구는 것은 심각한 시대착오다. ‘슬리퍼’ 타령을 앞장서서 하는 인사 역시 언론인 출신이니 이게 우스운 주장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권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려가는 게 먼저일 뿐이다.

알아야 할 것은 과잉충성은 결국 역효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성과는 정책적 방향과 디테일에 있어선 우려할만한 대목이 많지만 적어도 전 정권의 외교안보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는 보수적 유권자층이 볼 때에는 나름대로 흡족한 결과다. 그러나 ‘MBC, 이태원 참사, 김건희’라는 3대 키워드가 그러한 평가가 이뤄질 공간을 크게 좁혀놨다. 이 결과의 상당한 책임은 충성경쟁을 겨냥한 권력집단의 ‘오버’에 있다.

선천성 심장질환 환아 찾은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선천성 심장질환 환아 찾은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가령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빈곤 포르노’ 논란은 어떤가? 극렬 지지자들의 응원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기-승-전-김건희’로 치닫는 것은 문제다. 오드리 헵번 사진을 표절했다는 둥, 바이든 미국 대통령 팔짱을 낀 게 국가적 망신이라는 둥의 주장은 정치적 시비를 거는 것 이상의 효과가 없는 불필요한 공세이다.

그러나 ‘빈곤 포르노’ 문제는 다르다. 권력이 빈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윤리적 접근은 언제나 필요하다. 비록 더불어민주당이 ‘기-승-전-김건희’ 전략의 일환으로 꺼낸 논제라고 해도 진지하게 다룰 가치가 있다면 그렇게 다뤄야 발전이 있는 거다. 그러나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민주당은 안 그랬냐”라는 피장파장의 논리를 꺼내는 것에 멈추지 않고 이것도 포르노냐, 저것도 포르노냐란 식으로 포르노 조어 경연대회를 벌이며 “김혜자, 정우성도 포르노 배우냐”라는 등의 주장까지 한 것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이런 주장이 영문으로 번역돼 해외 언론에 보도된다고 생각해보라. 이것이야말로 국격의 추락이 아닌가?

지도자는 오기가 아니라 책임감을 앞세워야 한다. 책임감 강한 지도자라면 이런 식의 충성경쟁은 당장 중단시키고 이성과 합리에 근거한 건전한 토론과 타협의 정치를 말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체리 따봉’ 사건으로 이미 확인됐듯, 대통령의 정치관은 이러한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극언을 동원한 충성경쟁을 해야 “우리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거다. 이렇게 바닥의 바닥으로 떨어져도 상관 않겠다는 심보의 배경에 대표의 측근들이 부정부패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는 정당이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안이한 인식이 있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집권 세력과 제1야당이 최악-차악 경쟁이나 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치인가?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게 공정과 상식의 회복인가? 회복이 아니라 응급실에 실려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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