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일 한국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연합뉴스를 보고 주목할 만한 뉴스를 골라 <주목! 이 뉴스>에 올립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일보 독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5월27일) 한국일보를 보다가 희한한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21면 경제면에 실린 <“스타트업이 저성장 해법”… 中 유니콘 기업 벌써 35곳, 한국은 2곳뿐>이라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산업부 소속 김창훈 기자가 썼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제목이 말하듯, 스타트업이 저성장의 해법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정부가 청년창업을 적극 지원하지 않고 청년들 역시 창업보다는 취업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한국일보는 현실을 이렇게 진단한 뒤에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다각도로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 재입사 기회까지 주며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들의 사외벤처 육성을 밀어주고 있어 호평받고 있다”며 삼성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운영하는 ‘씨랩’(Creative Lab)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 없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한국일보는 주요 대기업들의 스타트업 지원 사례를 소개할 것처럼 운을 띄웠지만 정작 기사에 나온 이야기는 삼성 뿐이었습니다. 특히 삼성의 기업 이미지(이하 ‘로고’)가 바이라인(○○○ 기자) 바로 아래 떡 하니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래 기사 이미지를 보면 삼성 로고가 어색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2016년 5월 27일자 21면 머리기사

언론은 지면을 편집할 때 기업 로고를 싣기도 합니다. 삼성 같은 경우 경영권 승계, 백혈병, 노동 이슈 같은 문제와 관련한 기사가 실릴 때 등장하죠. 때때로 나오는 협찬 기사에도 로고가 등장합니다. 오늘자 경향신문에도 삼성의 로고가 실렸는데, 이런 경우는 전형적인 협찬입니다. 기사가 아닌 광고물입니다. 오늘자 경향신문 16~17면에 기업들의 가족친화경영을 소개한 최병태 기획위원은 편집국이 아닌 미디어전략실 소속입니다. ▶관련기사: 미디어스 2015년 3월 31일자 <Q. 경향신문 기업특집 지면에 ‘삼성’ 로고만 있는 이유는?>

▲경향신문 2016년 5월 27일자 16면에 실린 협찬기사

그런데 한국일보는 이런 경우와 다릅니다.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삼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기-승-전-삼성’의 구성이지만 삼성의 스타트업 지원사업을 소개하는 내용은 한 문단 정도밖에 안 됩니다. 보도자료 내용을 복사한 기사도 아닙니다. 언론사 경제부나 산업부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기획기사로 보입니다.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기획기사라면 굳이 삼성 로고를 넣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창조경제혁신센터나 씨랩의 사진이 기사와 더 잘 어울립니다. 왜 하필이면 바이라인 아래, 그것도 어울리지 않는 로고를 집어넣었을까. 그래서 ‘이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일종의 네이티브광고이거나 협찬기사는 아닐까’ 의심하게 됐습니다.

기사가 아니라 광고라고 가정하면 한국일보가 광고주의 이름을 적시한 것은 오히려 좋은 시도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광고와 기사를 바꿔치기 하고, 스폰서를 밝히지 않은 홍보기사가 판을 치는 언론판에서 광고주나 스폰서를 명기한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디어스 2015년 11월 13일자 <중앙일보 ‘국방부 홍보’ 계약, 한글자에 8571원>, 2015년 12월 10일자 <JTBC, 국방부 제작 다큐 틀고 2420만원 받았다>

문제는 이 기사가 진짜 네이티브광고일 경우에도 논란이 될 수 있다는데에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이 광고를 광고를 싣는 공간이 아닌 경제면에 배치했기 때문입니다. 독자에게 광고를 기사인 것처럼 건넨 것이 됩니다. 이 기사가 연간협찬의 결과물일 경우에는 더 문제가 되겠지요. 이런 사실이 발각(?)되면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은 물론 포털사이트에서도 벌점을 받습니다. ▶관련기사: 미디어스 2016년 3월 30일자 <한국일보 카드뉴스 5건은 ‘광고’ 입니다>

▲한국일보가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 세종대로 17 와이즈빌딩 (사진=미디어스)

한국일보 박일근 산업부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부장이 공석이라 김창훈 기자가 전화를 당겨받았습니다. 제가 ‘사례가 삼성 하나뿐이고 삼성 로고가 바이라인 아래 들어가 있다. 어색해 보인다. 네이티브광고이거나 삼성이 협찬하거나 삼성과 공동기획한 기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김 기자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는 그냥 기사를 썼고, 편집이 어떻게 됐는지는 확인을 못했다. 부장이나 편집팀에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면 편집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종합편집부와 편집국장에게 물어봤습니다. 황상진 편집국장은 “그 지면까지는 제가 보지 않았다. (로고가 들어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이창선 편집1부장은 “21면을 누가 짰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통상) 편집부가 임의로 이미지를 넣거나 빼지는 않는다. 산업부에서 넣어달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 편집부도, 편집국장도 삼성 로고가 들어간 이유를 모릅니다. 박일근 산업부장 정도만이 사정을 알 것 같아 오후 3시 반께부터 총 6시간 동안 수십 차례 연락을 해봤습니다. 첫 전화에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통화거부 메시지가 왔으나, 이후 십여차례 연락에는 이런 메시지도 오지 않았습니다. 열 번째 시도부터는 박 부장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어 연락이 안 됐습니다. 앞서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보냈는데도 답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27일 오후 8시 반께 박일근 한국일보 산업부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혹시 몰라서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씨랩의 실무자에게도 물었습니다. “한국일보 기사가 나온 것은 알지만 최근 기사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고 합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에도 물어봤는데, “혁신센터는 삼성전자 업무다. 전자에 확인을 해보니 ‘협찬한 것도 아닌데 왜 로고가 들어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기사에 로고가 있어 우리가 인발브(involve·관여하다)된 것처럼 보이는데 전혀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와 삼성의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괜한 의심을 했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의심을 받는 일 자체가 한국일보에 긍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월 한국일보의 카드뉴스 5건이 기업과 정부부처로부터 대가를 받고 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습니다. 한국일보는 스폰서를 밝히지 않고, 네이티브광고를 카드뉴스로 속여 유통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매체비평지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고, 한국일보는 언론을 통해 독자에게 사과한 바 있습니다.

카드뉴스 파문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한국일보는 우리가 격려해야 할 좋은 언론입니다. 이 말은 그만큼 비판과 감시가 필요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계속 한국일보를 정독하고 의심할 생각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어떤 기사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미디어스에 연락해 주십시오. 독자가 언론을 감시하지 않고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면 언론은 권력기관과 광고주에 휘둘리게 됩니다. 기사에 대해 묻고 따져야만 언론이 건강해집니다.

사족_ 취재에 응해주신 한국일보 김창훈 기자, 이창선 부장, 황상진 국장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단정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물어보려고 노력했으나, 제 머릿속에는 의심이 98%쯤 가득차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염치 없게도 미리 사과합니다. 저는 뉴스의 이면을 캐내야 하는 매체비평지 기자입니다. 기사를 보며 의심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또 연락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도 이번처럼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박일근 부장님, 기다리고 있으니 꼭 연락주십시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