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기업과 정부부처로부터 수백만원씩의 대가를 받고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포털에 기사로 전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른바 ‘스폰서’가 있는 네이티브 광고이지만 이를 ‘기사’로 유통한 것이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이 같은 사례는 총 5건이다. 한국일보는 스폰서를 밝히지 않은 점에 대해 독자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한국일보는 서울 중구 세종대로 17 와이즈빌딩 16~18층에 입주해 있다. (사진=미디어스)

한국일보는 편집국 디지털뉴스부 명의로 기업과 홍보대행사에 ‘한국일보닷컴 Native Contents 제안’ 문서를 보냈다. 그런데 이 제안서에는 한국일보가 노스페이스, ISO서울총회, 농수산식품유통공사, 고용노동부(2건)로부터 수주한 카드뉴스 사례가 실려 있다. 한국일보가 제안서에 예시로 든 콘텐츠는 총 5개로 지난해 8월에서 10월에 한국일보가 포털사이트 등에 기사로 내보낸 것이다.

사례는 이렇다. 2015년 10월 15일자 카드뉴스 <가을 아웃도어 똑똑하게 고르는 법>은 노스페이스코리아가 발주해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에 실렸다. 9월 3일자 <표지판을 볼 줄 안다면>은 ISO서울총회가 발주했다. 9월 1일자 <어니언즈 삼형제 ‘운명의 어드벤처’>는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주한 것이다. 9월 15일자 <‘삼포세대’ 자린고비 취업준비 이제 그만>과 8월 31일자 <‘취업 9종 세트’에 행복하게 맞서는 법>은 고용노동부 발주다. 문제의 카드뉴스는 윤은정 기자와 백종호 디자이너가 제작한 것으로 돼 있다.

한국일보는 제안서에 ‘콘텐츠 제작’에 드는 비용으로 400만원(제안금액은 200만원)을 제시했다. 또 한국일보닷컴, 포털뉴스, 한국일보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스토리·인스타그램·네이버포스트 등에 게재하는 데 500만원(제안금액 400만원)의 비용을 제안했다. 홍보대행사 수수료 10%를 포함하고, 부가세는 별도로 한 금액이다.

광고주와 대행사가 소스와 제작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면, 한국일보가 시안과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이다. 한국일보는 카드뉴스 제작에 약 2주(시안 제작·검수·컨펌→콘텐츠 제작·검수·컨펌→편집국 최종검수 및 승인)가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일보는 제안서에서 “지나치게 노골적인 표현은 매체 초종 검수 및 포털 게재가 불가할 수 있는 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제안서는 미디어오늘의 29일자 기사(▶바로가기)를 통해 최초 드러났다. 한국일보가 기업과 정부부처에서 돈을 받고 네이티브광고를 뉴스 콘텐츠로 제작하고, 광고주를 표기하지 않고 온라인 지면에 게재하고 포털사이트에 유통한 것은 온라인 독자와 포털 이용자에게 눈속임을 한 것과 같다. 그러나 한국일보는 여전히 포털사이트에서 문제의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고 있다. 한국일보는 ISO서울총회 관련 카드뉴스를 게재하고 일주일 뒤인 9월 10일 총회를 주관한 제대식 국가표준원장 인터뷰 기사도 내보냈다.

▲한국일보가 디지털뉴스부 명의로 광고주와 홍보대행사에 배포한 제안서의 일부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스폰서(광고주)를 명기하지 않고 네이티브광고를 내보낸 사실을 인정하고, 독자에게 사과했다. 한국일보는 기업과 정부부처 등으로부터 비용을 받아 제작하고 유통한 카드뉴스는 제안서에 언급한 5건이 전부이며, 올해부터는 이 같은 네이티브광고에 카드뉴스를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30일 이희정 디지털부문장을 대신해 상황을 설명한 디지털뉴스부 소속 최진주 디지털뉴스팀장은 “스폰서를 밝힌 게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맞다”며 “독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최진주 팀장은 “5건이 전부다. 광고주에서 무리한 요구를 해 우리가 거절을 한 사례도 꽤 있다. 독자들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해 올해부터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 팀장에 따르면, 한국일보는 지난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하자는 차원에서 온라인광고영업팀을 콘텐츠마케팅팀으로 바꾸고 카드뉴스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독자에게 유익하지 않다고 판단해 카드뉴스가 아닌 ‘동영상’으로 전략을 바꿨다(최 팀장은 “동영상은 지금까지 한 건이다. 스폰서를 CJ로 명시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마케팅팀장이 공석이 됐다. 이번에 드러난 제안서는 ‘카드뉴스 네이티브 광고’를 포기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시기에 기업과 대행사에 배포된 것이라는 게 한국일보 입장이다.

최진주 팀장은 다만 “독자들이 ‘한국일보 카드뉴스는 돈 받고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며 이번 일로 한국일보 기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한국일보가 제작해 유통한 카드뉴스는 3월 29일 기준 총 246건이다. 최근 들어서는 하루에 한 건 꼴로 카드뉴스를 만들고 있다. 최진주 팀장은 “저널리즘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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