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4살배기였던 아이들이 8살, 10살이 됐다. 엄마의 죽음과 아빠의 해고를 정확하게 설명해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권지영 ‘와락’ 대표의 이 말은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뜻한다. 쌍용차 정리해고가 지난 8일자로 만 6년이 됐다. 그 동안 28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앞서 국회 차원에서 청문회와 국정감사가 있었다. 쌍용차가 정리해고를 위해 회계를 조작한 것도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이창근 김정욱씨는 평택공장 안에 있는 굴뚝에 올랐고,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여론이 집중됐다. 그 결과, 쌍용차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회장이 움직였고 쌍용차는 무려 65개월 만에 ‘교섭’을 시작했다. 쌍용차와 기업노조, 그리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지부장 김득중)는 지난 5개월 동안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 희생자 명예회복 및 지원, 회사 정상화 등 4대 의제를 두고 대화를 이어왔지만 해고자 복직과 손배가압류 문제에서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다만 이 달 들어 노노사 대표가 두 차례 회동을 한 데 이어 15차 교섭 이후 본교섭으로 전환하는 터라 노노사 대표들이 합의를 이뤄낼지 주목된다.

김득중 지부장은 “노노사가 2인씩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실태조사를 마쳤다”며 “회사는 학자금·의료비 지원, 취업 알선을 이야기하고 있고 노동조합은 공익재단을 설립해 희생자 가족에 대한 지원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회사 정상화에 대해서는 ‘정보제공료’ 지급대상을 해고자로 넓혀 나가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김득중 지부장은 “오는 금요일 열릴 본교섭에서 187명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확인할 생각”이라며 “교섭은 교섭대로 진행하고, 지지부진한 교섭에만 목매지 말자는 게 조합원들 의견”이라고 말했다.

본교섭이 지지부진할 경우 국회가 다시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은 29일 미디어스와 만나 “(교섭이) 끝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오랜만에 시작한 교섭인 만큼 결과를 두고봐야겠지만 금속노조와 기업노조를 만났고 필요한 일을 하고 개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인영 의원은 “쌍용차는 ‘정치권이 개입하면 문제를 더 키운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회는 쌍용차를 타격하고 비난할 생각이 없다. 이들을 만나 해결책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지부는 교섭에 집중하되 쌍용차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등과 함께 교섭 타결을 촉구하는 행동 또한 이어나갈 계획이다. 29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6년이 남긴 상흔> 토론회는 정리해고 이후 6년을 복기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학계 전문가와 토론자들은 쌍용차는 즉각적인 복직이 가능한 상황이고,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쌍용차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의 바로미터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복기해보자. 쌍용차 사태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가 널리 퍼질 정도로 노동자들에게 ‘충격’이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에 따르면,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당시 옥쇄파업에 참여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을 겪은 노동자의 비율은 50% 이상으로 2000년대 초반 쿠웨이트 전쟁에 참여한 미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48%)보다 높았다. 김승섭 교수는 “쿠웨이트 사례의 경우, 전쟁은 끝이 났지만 쌍용차는 달랐다. 낙인과 차별,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과 복직되지 않은 ‘해고의 상흔’ 때문에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년이 지났지만 ‘상흔’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김승섭 교수 분석이다. 김승섭 교수 연구팀이 올해 5월 해고자 142명, 복직자 17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해고자 중 지난 1년 동안 ‘우울 및 불안장애’ 및 ‘불면증 및 수면장애’를 겪은 비율은 각각 75.2%, 72.2%나 됐다. 복지자의 경우에도 이 비율은 30.1%, 49.0%나 됐다. 이는 2011년 실시된 완성차공장 노동자의 실태조사 결과 이 비율이 1.6%, 2.0%인 점과 비교하면 쌍용차 노동자의 상태는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김승섭 교수는 “6년간의 실업은 해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낙인과 차별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해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는 노동자가 90.0%나 됐고, ‘해고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는 의견도 74.8%나 됐다. 열 중 일곱 이상이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까닭에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져 지내고 있다’는 노동자가 54.9%나 됐다. 구직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한 노동자가 87.4%가 됐다.

경제적 상황도 열악하다. 연소득 변화 비율을 보면, 2000만원 미만은 비율은 2008년 5.4%에서 정리해고 첫해인 2009년 94.9%로 크게 높아졌다. 이후 조금씩 줄었으나, 2013년과 2014년 이 비율은 69.4%와 69% 수준으로 여전히 높다. 2015년 해고자 직업 조사결과 무직 26.9%, 아웃소싱 17.6%, 일용직 13.9%, 자영업 7.4%, 택시·버스기사 2.8%로 나타났는데 이는 해고자들이 다수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 동안 쌍용차 정리해고자와 가족 28명이 숨졌다. 대부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다. 김승섭 교수는 “경제위기와 실업률은 자살률을 증가시킨다”며 “그러나 스웨덴과 핀란드처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펴는 나라는 실업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두텁기 때문에 실업률과 자살률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승섭 교수는 “(한국과 쌍용차에서) 해고당하는 노동자들이 절박하게 싸워야만 했고, 해고 이후 많은 사람이 아프고 죽어야만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다”며 “해고로 인한 책임을 개인이 아닌 사회와 국가에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진=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

정흥준 고려대 경영대학 BK연구교수는 2009년 정리해고는 정당하지 않았고 현재 쌍용차에는 백여명의 해고자를 복직시킬 여력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정흥준 교수는 “상하이차의 쌍용차 정리해고는 비용편익을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정흥준 교수 분석에 따르면, 2009년 980명 정리해고를 통해 쌍용차가 얻은 편익은 6년 간 1764억원(기본급 3천만원)~2940억원(기본급 5천만원)인 반면 사회적 손실은 파업손실 1천억, 협력업체 손실 3903억원 등 총 4931억원이다.

노동생산성과 공장가동률 등을 고려해도 역시 해고자 복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정흥준 교수 분석이다. 그는 “쌍용차의 노동생산성은 2005년 상하이차 인수 이후 급감했고, 정리해고 및 파업으로 인해 파국을 맞이했으나 2011년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한 이후 노동생산성이 현대자동차에 근접한 상황”이라며 “경영이 정상화되고 있고 공장가동률(평택공장 가동률 2011년 85%→2013년 107%)도 과거 수준을 회복해 고용여력이 생긴 만큼 해고자를 복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동안 해고자와 가족들의 삶은 무너졌다. 권지영 ‘와락’ 대표는 “해고 6년 해고자 가족들은 끝이 어디일지 모를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고 있다”며 “해고 이전의 삶이 전혀 문제가 없는 백점짜리 인생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배제되면 다시 진입할 수 없는 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를 잃고 불안정하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해고자들이 지금과 같은 생활을 계속한다면 세상과 사회에 대한 원망과 증오만이 가득한 채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더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체의 연락을 거부하는 유가족들도 있다”고 전했다.

결국 쌍용차 문제는 정리해고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고 이후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안전망의 문제와 직결된다. 김득중 지부장은 “쌍용차 문제는 쌍용차만의 것은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들 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 쌍용차의 문제는 해고자가 일상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시작이어야 한다”며 “문제해결을 위해 다시 한 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힘을 보태주길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정리해고는 노동자의 ‘불신’을 키워 장기적으로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1998년 IMF 금융위기 당시 현대자동차가 1년짜리 무급휴직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 정리해고 유경험자가 경영진과 동료를 신뢰하는 수준은 정리해고 무경험자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두고 정흥준 교수는 “현대차 사용자들이 고용안정 협약서를 쓰고 정리해고는 없다고 설득하더라도 효과가 없다”며 “생존자들은 ‘경영진이 언제든 우리를 자를 것이다. 그러니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정리해고를 신고한 300인 이상 사업장은 14곳이고, 2014년의 경우 3곳으로 과거에 비해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정리해고는 이름을 바꿔 계속되고 있다.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네트워크 활동가가 고용보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3년 고용보험 상실자 14.7%인 83만명이 ‘기타 회사 사정’으로 퇴직했다. 2012년 이 비율은 13.9%였는데 1%P 가량 늘었다. 오진호 활동가는 “기업들이 요건이 엄격하고 신고 의무가 있는 정리해고 대신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등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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