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면접 때를 떠올려 봅니다. ‘침묵하지 않음을 기자로서 특권이자 의무로 알겠다’. 문구는 각기 달랐지만 왜 이 길을 택했느냐는 질문에 저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 말이 합격을 위한 허언만은 아니었음을 보이고자 이렇게 글을 씁니다. 박노황 사장님, 인사 전횡을 중단하십시오”
- 34기 기자들

지난 15일 단행된 연합뉴스 사원 인사에 대한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2012년 공정보도 파업을 이끌었던 공병설 전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2010년 노조 공정보도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이주영 기자 등 노조 전인 간부들을 대거 지역으로 보낸 인사에 연합뉴스 기자들은 기수별 성명을 잇따라 내어 반발하고 있다.

▲ 지난 15일 사원 인사를 단행한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사진=연합뉴스)

시작은 28기 기자들이었다. 28기 기자들은 18일 오전 성명을 내어 “더 나은 콘텐츠의 제작보다는 구원을 풀기 위한 징계성 인사가 눈에 띈다. 곳곳에 징계의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적재적소라는 인사의 대원칙이 흐려졌다”며 “공병설 선배는 3년이나 지난 파업을 이유로, 이미 징계를 받았는데도, 사실상 이중 처벌을 받았다. 인사와 징계가 뒤섞이는 바람에 인사의 원칙도, 징계의 원칙도 무너진 셈이다. 인사가 만사일진대, 이보다 더 큰 위기가 있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28기 기자들은 “인사권 침해는 용납할 수 없다고, 인사에 토를 달지 말라고 한다. 인사권을 침해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인 만큼, 소통으로 지혜를 모아 신중하게 하자는 것”이라며 “본사 직원을 지방으로 보내면서 단 한 번도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숙려의 경영을 기대할 수 있겠나. 인사권을 침해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인사권을 남용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34기 기자들은 “어린 저희가 보기에도 경영진은 출범 이후 ‘위기의 회사’를 더욱 위기로 모는 정책만 벌여왔다. 연합뉴스가 국가기간통신사로서 지닌 경쟁력의 근간인 지역취재본부를 마치 ‘유배’처럼 여긴 경영진의 발언을 접했을 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때의 아연함이 무람하게도, 유배는 현실이 됐다. 많은 선배가 본인의 바람이나 회사의 발전과는 무관하게 지역취재본부로 발령됐다. 다른 기업에서 벌어졌다면 어느 기자라도 기사로 비난했을 일이 국가기간통신사에서 벌어졌다. 이번 인사는 망사(亡事)”라고 혹평했다.

34기 기자들은 “회사 정문 앞에 단 10분이라도 서 계시면 알 수 있다. 그곳에서 웃는 표정인 이는 ‘안녕하십니까 연합뉴스입니다’ 동상밖에 없다. 사원을 존중하지 않는 경영진의 행태가 계속되는 한, 자부심과 포부를 되찾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저희의 생각이 틀릴 수 있지만 회사가 위기인 상황에서 틀릴까 두려워 침묵했기보다 미숙한 목소리나마 냈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겠다. 사장께서 어린 사원들의 마음을 통촉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32기 기자들은 “유례없이 긴 파업을 겪고도 다시 현장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조직에 대한 ‘신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업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 노사가 도입하기로 합의한 편집총국장제가 무력화된 데 이어 지난 15일 인사를 보면서 그 신의가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32기 기자들은 “가처분신청을 취하하면 ‘보복인사’를 보류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박노황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태도에 저희는 어느 때보다 참담한 심정”이라며 “감정적 인사는 사원 역시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언제라도 원칙 없는 보복 인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일할 의욕과 신의를 잃은 사원들이 얼마나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박노황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인사 전횡 중단과 노사 합의사항 준수를 절박한 마음으로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 모든 ‘칼춤’이 어느 높은 곳에 보이기 위한 쇼였나”

30기 기자들은 “회사의 진짜 위기는 미디어 환경이나 외부의 시선 변화 때문에 생기는 그 무언가가 아니라, 경영진 인사권의 침해나 노조의 파업에서 비롯된 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의 분열 그 자체가 아닐까요? 모두가 뭉쳐야 할 시기에 일부러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인사, 그것이 바로 위기의 씨앗이자 열매가 아닐까요?”라며 “그렇다면 지금의 위기를 만든 것은 경영진”이라고 지적했다.

30기 기자들은 “경영진이 회사 안이 아니라 회사 밖 어딘가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들린다. 실제 오늘(18일) 편집회의에서는 이번 인사와 관련해 ‘내·외부적 상황을 반영해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음을 이해해 달라’는 설명도 나왔다고 한다”며 “이 모든 ‘칼춤’이 사실 어느 높은 곳에 보이기 위한 쇼였나”라고 되물었다. 이어, “외부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연합뉴스를, 연합뉴스의 경쟁력을, 연합뉴스의 임직원을 먼저 생각해주십시오. 징계성 인사를 철회하고 분열 조장을 멈춰 주십시오”라고 촉구했다.

▲ 지난 2012년 3월 18일 열린 <연합뉴스 파업 콘서트>에서 공병설 당시 노조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공병설 전 위원장은 18일자 인사에서 제천 주재 발령이 났다. (사진=미디어스)
29기 기자들은 “편집회의 자료 유출자 ‘색출 작업’부터 이제는 인사 전횡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경영진은 인사는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인사라면 그에 응당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마땅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야말로 이번 인사가 원칙 없이 이뤄졌다는 걸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29기 기자들은 “경영진은 지금 회사의 많은 동료 선후배들이 올리는 성명서나 호소문을 인사권에 대한 침해로 곡해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경영진만큼이나 회사를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들에서 우러난 절규로 들어주시길 바란다”며 “인사발령 등을 포함한 최근 사측의 결정이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다면 사원들의 글을 굳이 사내게시판에서 사원 광장으로 옮기라고 강요하지 말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당초 각 기수별 성명은 연합뉴스 내부 게시판 중 가장 노출도가 높은 사내게시판에 올라와 있었으나, 사측은 글이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다며 사원 광장으로 옮기라고 권유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 글을 삭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3기 기자들은 “국망의 위기는 언제나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내부의 불신과 분열에서 시작된다. 지금 연합뉴스가 직면한 위기 역시 전재계약 해지나 정부 구독료 삭감이 아니다”라며 “자신과 다른 생각에 보복성 인사로 응하는 경영진의 행보와 이에 침묵하는 우리 모두가 회사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내부의 곪아 들어가는 상처를 외면하면서 과연 우리에게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써내려 갈 자격이 있는지도 돌아보게 된다”고 고백했다.

33기 기자들은 “연합뉴스가 고객사 없는 뉴스 통신사가 되는 것보다 기자 없는 언론사가 되는 것이 더 두렵다. 박노황 사장과 경영진에게 인사 전횡을 중단하고 후배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진정성 있는 대화로 회사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주기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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