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들이 이른바 ‘미래형 요금제’인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지난 7일 KT가 월 2만9900원(부가세 제외)으로 무선 음성통화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고, 데이터 이월이 가능한 요금제를 내놨다. 그리고 14일 LG유플러스는 데이터 이월은 안 되지만 3만원대 요금제에서 KT보다 천원 더 싼 요금제를 출시했다.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도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용자에게는 일단 희소식이다. 한국의 이동통신사들이 내놓은 데이터 요금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룡기업인 구글이 미국 알뜰폰 시장에 진출하면서 내놓은 요금제보다도 파격적이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데이터 사용량에 맞춰 데이터 요금제로 이동하는 것이 이득이다. 통신요금을 지금보다 월 몇 천원에서 만 원 이상을 아낄 수 있다. 정부, 국회, 시민단체도 가계통신비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사업자도 이득이다. 이동통신 3사는 가입자의 61%(SKT), 65%(KT), 77%(LGU+)를 LTE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2~3년 새 가입자당 매출(ARPU)은 몇 천원 이상 치솟았다. 2G나 3G 시절보다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조건을 이미 마련한 셈이다. 게다가 애플리케이션 결제, 모바일 쇼핑, 미디어콘텐츠 소비가 늘어날 것을 고려하면 이제 누워서 떡 먹는 단계가 됐다.

한 사업자가 특정 요금제를 출시하면 며칠 뒤 경쟁사가 유사한 요금제로 따라가는 모습은 수차례 있었다. 그런데 데이터 중심 요금제와 관련한 사업자들의 반응은 이러한 과거 사례와는 다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타격을 입을 것 같다”며 정부와 이용자의 압박을 받은 이동통신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출시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도 “요금경쟁은 절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요금경쟁이 아닌 이유는 각 통신사의 데이터 중심 요금제가 ‘판박이’에 가까운 내용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 저가요금제에 음성통화와 문자를 무제한으로 푼 것은 매출에 부정적이지만, 데이터 이용량이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해 2·3G 가입자를 LTE로 옮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한겨레 12일자 기사 <음성통화·문자메시지 무제한 제공하고도…KT가 웃는 까닭>에 등장한 KT 관계자 말의 핵심도 여기 있다.

“(이번 요금제가) 가입자당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올해는 약간의 타격을 받겠지만, 내년부터는 해마다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경쟁업체의 우량 가입자 유치 및 음성통화를 소량 이용해 요금을 적게 내는 기존 가입자들을 데이터 선택 요금제로 전환시키는 마케팅이 얼마나 성과를 내느냐가 변수이긴 하지만, 가입자당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분명하다.”

현재 이동통신사 가입자당 평균 매출은 3만원 중후반대다. 데이터 사용량이 적은 2G나 3G 저가요금제 가입자가 3만원 후반대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만 갈아타더라도 이동통신사의 ARPU는 상승한다. 이렇게 따져보면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인한 ‘요금인하’ 효과는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이동통신사들은 LTE 전국망을 구축하는 데 쓴 ‘설비투자’ 자본을 이미 회수했고, 단말기유통법 시행 뒤 마케팅비를 줄이는 추세다.

데이터 중심 요금제는 ‘공룡이 베푼 작은 호의’에 불과하다. 갑자기 베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동통신사는 네트워크는 물론 모바일방송플랫폼을 사실상 독과점하고 있다. 콘텐츠 영역에도 진입했다. 이통사는 배(통신요금)보다 배꼽(부가콘텐츠요금)이 더 큰 환경을 구축했다. ‘미래형 요금제’는 매출 극대화를 위한 ‘현재형 요금제’인 셈이다. 독과점 3사는 여전히 경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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