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시행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이 6개월이 됐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3년부터 “보조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법률로 강제하면 이용자에 따라 보조금을 차별하던 것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단말기유통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단말기유통법은 반쪽짜리다. 정부가 법안 설계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반대의견을 수용해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을 제각각 공개하는 ‘분리공시제’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그 동안 보조금을 ‘시장과열’ 지표로 삼아 왔다. 그런데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반대 경우가 빈번하다. 주말마다 터졌던 보조금 폭탄은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현장의 대리점주들은 무더기 폐업 중인 반면 이동통신 3사의 직영점은 늘고 있다. 출시 15개월이 지난 ‘재고’ 스마트폰 위주로 덤핑 할인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최신 스마트폰의 출고가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런 까닭에 단말기유통법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삼성전자와 독과점 이동통신 3사의 시장지배력을 높여줬다”는 것이다.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사업자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얘기다.

정부가 사업자들에 힘을 실어준 탓에 통신비 인하는 ‘운’에 따라 달라지게 됐다. 정부는 지난 8일 15개월 이하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 상한선을 30만원에서 33만원으로 올렸다. 사업자들에게 “돈을 좀 더 풀라”는 주문이었지만 이는 사업자의 유연성을 높여준 결과가 됐다. 삼성전자가 10일 출시한 갤럭시6 32G 모델의 보조금 변화를 보자. 9만원이었던 보조금은 갑자기 17일 30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단 하루 사이에 20만원 이상의 이용자 차별이 일어났지만 이 차별은 ‘합법’이다. 이동통신사들은 갤럭시6 보조금을 9만원으로 공시하면서도 유통점에 50만원의 인센티브를 주면서 ‘불법’을 유도했지만 이는 불법의 주체를 현장으로 돌리며 빠져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는 단말기유통법으로 이용자 차별이 사라졌다고 강변한다. 류제명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단말기유통법 시행 6개월 평가> 토론회에서 “단말기유통법의 목표는 소비자후생에 있다. (시민들이) 최고의 품질과 혁신적 서비스를 저렴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책 목표”라며 다양한 숫자를 언급했다. 번호이동 건수가 법 시행 이전 이상으로 회복된 것은 물론, 6만원대 이상 고가요금제 비중은 33.9%(2014년 7~9월)에서 10.0%(2015년 3월)로 줄어 평균 가입요금이 4만5천원대에서 3만7천원대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가입시 부가서비스 가입 비중도 37.6%(2014년 1~9월)에서 16.6%(2015년 3월)로 감소했다고도 했다.

▲ 정부의 통신정책 방향은 소비자 후생이다! (이미지=미래창조과학부)

미래부의 이런 해석은 ‘아전인수’다. 오히려 높은 출고가와 고가의 LTE요금제 탓에 이용자 스스로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를 한 효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동통신 3사의 ‘가입자당 매출’(ARPU)은 급격하게 상승 중이다. 이동통신사들은 가입자의 절반 이상을 LTE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고 데이터 중심 이용행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단말기유통법 시행 뒤 저가요금제 가입자는 결국 고가요금제로 갈아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단말기유통법은 ‘불법의 합법화’ 정도의 의미밖엔 안 된다.

독과점 3사는 ‘직접지배’를 확대하고 있다. 배상용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부회장은 “단통법 이후 (2~3개월 동안) 20~30%의 유통점이 폐업했고, 현재 전체 유통점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에 매장을 내놓은 상황”이라며 “정리하고 싶어도 투자비용과 권리금 때문에 하루하루 연명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상용 부회장은 “유통인들은 괴사 상태인 반면 이동통신사는 지난해부터 자회사 직접유통망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최신 스마트폰 공급량 등에서) 기존 유통망을 차별하면서 직영점을 늘리고 중”이라고 말했다.

시장지배력이 커진 만큼 이동통신사는 실적목표를 달성하기 쉬워졌다. 배상용 부회장은 “SK텔레콤은 1사분기 영업이익 5천억원을 맞추기 위해 대리점에 장려금을 연기했고 KT와 LG유플러스도 연간순익 목표를 정해놓고 비용을 조정하고 있다. 이게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신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이동통신사가 조금 양보한다면 소비자 유통점 제조사가 모두 수혜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이동통신사는 LTE와 결합상품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완성했고 단말기유통법으로 시장지배력을 높였다. 이 결과로 늘어날 영업이익은 금융자본에 대한 ‘배당금’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이동통신사들은 전체 매출의 10% 정도만을 설비에 투자하는데 이미 전국 구축을 끝낸 3G, LTE의 경우 요금인하 여력이 충분하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이통사들에게는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됐다”며 “이제 기본요금을 폐지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대부분이 스마트폰 정액요금제에 가입했는데 기본요금을 폐지해 2~3만원대 요금제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진걸 처장 말대로 “이용자들은 이동통신 3사 말고 도망갈 데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와 사업자들의 협조가 있다면 요금인하는 가능하다.

▲ 17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토론회 모습. (사진=미디어스)

그러나 가입비 폐지에만 20년이 걸린 만큼 사업자들이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요금 인하는 곧장 주주의 반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압박하는데도 사업자들이 데이터 이월, 선물 같은 ‘아나바다’ 캠페인을 확산하는 데 열중하는 것도 이런 구조 탓이다.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정책국장은 “(이동통신사가 요금을 내린 것은) 껌값 천원뿐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주홍 국장 말대로 “폰을 안 바꾸는 사람이 손해를 보던 ‘폰테크’와 ‘호갱님’이 즐비하던 시장”은 이제 “이동통신사의 자회사가 알뜰폰마저 망가뜨린 상황”으로 더 나빠졌다.

결국 해법은 ‘요금 규제’뿐이다. 정부가 SK텔레콤에 적용하는 요금인가제를 확대·강화하고, 정기적으로 사업자들의 ‘폭리’와 ‘담합’ 수준을 조사해 공개한다면 요금은 내려갈 수 있다. 사업자들은 이동통신서비스가 ‘지상파 방송’보다 더 공공적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 강화를 수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밖에도 단말기유통법에 ‘분리공시제’를 추가해 제조사의 보조금을 공개하는 것도 출고가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사업자에 포획돼 시민사회가 제안한 정책을 실행하지 않는 데 있다. 단말기유통법 홍보만 하는 정부가 변하지 않는 이상 요금 인하는 요원하다. 이용자는 여전히 삼성과 이동통신사, 그리고 단말기유통법의 ‘마루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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