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2~3년 약정을 걸고 5~6만 원대 요금제에만 가입하면 ‘거의 공짜’로 아이폰5S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같은 요금제에 월 2~3만 원에 단말기 할부금을 내야 한다. 지난해 10월 단말기유통법 시행 이후 소비자는 ‘봉’이 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LTE 전환을 끝낸 이동통신사들은 음으로 양으로 보조금을 얼렸고, 대다수 대리점은 ‘전략폰’과 ‘재고폰’을 처리하는 신세가 됐다. 거리에는 ‘단통법과의 전쟁’ 유인물이 나부끼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와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는 그 동안 과열됐던 번호이동이 줄어들고, 저가 요금제에 가입하는 이용자가 늘었다는 점을 숫자로 제시하며 5개월째 법의 정당성을 ‘홍보’ 중이다. 단통법 이후 소비자 차별이 줄어든 것은 물론 합리적 소비가 늘었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일견 이해할 만한 대목은 있다.

그러나 핵심은 ‘합리적 소비’가 아니다. 이동통신사의 가입자당 매출(ARPU)는 최근 2년 새 급상승했고, 남아 있는 2G와 3G 가입자가 LTE 저가요금제에 가입한다고 하더라도 ARPU는 상승한다. 이통사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독과점 3사의 시장지배력은 더 확대됐다. 반면 사업자들이 데이터 장사를 시작했던 3G와 마찬가지로, LTE에 대한 설비투자는 줄어들고 있지만 이용자들은 매월 똑같은 요금을 납부해야 한다. 사업자들은 매출의 조건을 확보했다. 애초 ‘삼성 없는 단통법’에 불만을 쏟아내던 이동통신사가 단통법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신요금 인하 없는 ‘단통법’은 백약이 무효다. 참여연대가 단통법 100일 리포트에서 지적했다시피 원가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등 제조회사는 마케팅비를 미리 반영해 출고가를 결정하고, 이동통신사들은 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또 다른 비용을 원가에 얹어 정부에 신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원가에 대한 ‘장난질’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단통법으로 통신요금을 인하할 수는 없는 셈이다.

현실에서 단통법의 쓸모가 사라진 이유는 또 있다. ‘결합상품’ 때문이다. 휴대폰만 팔던 대리점들이 제살 깎아먹는 ‘대란’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이동통신사들은 결합상품으로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게 ‘유선부문 1위 사업자’ KT의 실적이다. KT의 2014년 연간 실적 자료를 보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전년 대비 6.2만 증가하였으나, 결합혜택 확대로 매출은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는 대목이 있다. 인터넷 결합률은 지난해 말 기준 무려 74.2%나 된다.

이동통신과 인터넷, IPTV를 결합해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데 왜 문제를 삼냐고? 철저히 사업자 시각에서 보자. 지난해부터 뜨거워진 결합상품 판촉이 노리는 것은 ‘이동통신 가입자’다. IPTV와 인터넷은 사실상 공짜다. IPTV와 인터넷 가입자에게 제값을 받는다 하더라도 스마트폰을 한 대 더 개통하고 매월 받는 요금이 더 쏠쏠하다. 여담으로 현재 시장에서 가장 큰 이용자 차별은 제값 내고 IPTV와 인터넷을 쓰는 가입자와 공짜로 쓰는 가입자 사이에 있다.

KT의 한 직영점은 재고스마트폰에 대해 최대 70만 원을 지원하고, 결합상품으로는 2만 원대 인터넷과 만원 대 IPTV를 공짜로 제공한다. 다른 사업자도 마찬가지인데, SK텔레콤은 가족 중 2명만 자사 가입자라면 인터넷이용요금을 매기지 않는다. 이동통신사들은 결합상품을 통해 방송과 인터넷을 이동통신의 보조금으로 만들었고, 그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카드회사와의 공동 마케팅까지 대폭 강화했다. 단통법은 법 시행 직후부터 이미 무력화됐다.

시민단체들은 결합상품에 불법 보조금이 투입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품을 공짜로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규제 필요성이 생긴다. 공짜가 유지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물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있고, 사업자들은 경쟁적으로 기가인터넷을 구축하면서 가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결국 인터넷종량제 논의를 부채질할 것이고, 사업자들은 업계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며 IPTV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온가족이 특정통신사의 LTE 요금제로 갈아타면서 당장 2년 동안은 인터넷과 IPTV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집에 들어온 유선인터넷은 인터넷종량제 논의를 시작하는 조건이 된다. 결합상품은 이용자의 코드커팅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이동통신사가 이동통신요금을 내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결합상품의 기회비용을 아슬아슬하게 설계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는 단말기유통법 이후 보조금 기근에 시달리면서 공짜 결합상품으로 발을 돌리고 있다. 이동통신은 끊기 어려운 고가의 생활필수품이 됐고, 여기에 부가상품처럼 딸려온 방송과 인터넷은 이동통신사의 추가적인 요금 인상의 발판이 되고 있다. ‘공짜’, ‘단돈 천 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용자들이 할 일은 정부에 공공와이파이를 늘려 달라 요구하고, 필요없는 결합상품에 가입하지 않고 오히려 과감하게 코드커팅을 하는 것이다. 결합상품은 언젠가 이용자의 발목을 잡는다.

물론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지금 미래부와 방통위는 이동통신사에 된통 당하고 있거나, 이들의 꼼수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다. 단통법은 이미 시대에 뒤쳐진 백약이 무효한 규제가 되고 있으나 ‘단통법’(단언컨대 통신사를 위한 법)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한가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아직도 언론에 단통법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런 사이 가입자들은 결합상품에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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