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아무리 ‘알뜰폰’을 띄운다고 해도 결국 알뜰폰 이용자가 내는 요금은 이동통신사에 흘러 들어간다. 이통사는 이용자를 LTE로 갈아 태우고, 소비행태를 ‘데이터’로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속도 등 서비스 경쟁도 있었지만 핵심은 보조금 ‘살포’였다. 덕분(?)에 방송산업까지 망가졌는데 이동통신사가 서비스하는 IPTV는 이동통신서비스의 ‘공짜’ 부가상품이 된지 오래다. 이용자들은 결합상품의 유혹을 끊을 수가 없게 됐다.

통신시장은 사업자들이 완전 장악했고, 통신비는 ‘인하’할 수 없는 성역처럼 여겨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수년 동안 문제제기해도, 정부가 압박해도 이동통신시장은 사업자들이 쥐고 흔드는 판이 됐다. 핵심은 ‘원가 공개’이지만 정부와 사업자는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설비투자 비용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요금은 내려가야 정상이지만 오히려 사업자들은 멤버십 혜택 강화, 요금제 신설 같은 생색내기 정책을 ‘요금 인하’로 포장하며 연일 보도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단말기유통법’이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삼성이 미래창조과학부와 국회를 ‘마사지’해 만든 법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울며 겨자 먹는 모양새로 단통법을 수용했지만 이 법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단말기유통법은 “이용자를 차별하지 말자”는 착한(?)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보조금 축소는 결국 단말기 구매에 대한 부담을 늘렸다. 아이폰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한 ‘대란’이 한 번 있었고, 제조사의 ‘재고 처리’ 대란이 있었지만 절대적인 마케팅 비용이 줄어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벌써 백일이 지났다. 증권가에서는 단통법 때문에 이동통신사의 수익성이 오히려 좋아졌다고 평가하며 ‘매수’를 권하고 있다. 단통법으로 이통사와 제조사가 법 시행 이전보다 더 높은 가격과 요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이 주식을 사라고 권하는 이유다. 이용자 입장에서 이는 “단말기 거품과 통신비 폭리라는 ‘절대적인’ 차별은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다고 볼 수 있다.

▲ (이미지=참여연대)

정부는 중저가 요금제 가입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를 ‘합리적 소비’의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과도한 통신비를 견딜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합리적이다. 3G 때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했던 이용자들은 4G LTE로 넘어오면서 무제한 요금제가 아닌 같은 수준의 4~6만 원대 요금제에 가입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무료’로 풀린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대신 대부분 데이터로 ‘통신’한다. 데이터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평균 16개월마다 스마트폰을 교체하는 이용자들은 어찌됐든 ‘고가’ 요금제에 이동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속도 제한 있는 무제한 LTE 요금제’는 ‘요금 추가 있는 무제한 요금제’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 종량제를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다시 솔솔 흘러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지금 시장이 사업자들의 시나리오대로 흐르고 있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런 까닭에 ‘단통법’에 대한 비판 여론이 살아있는 지금, 통신요금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참여연대는 단말기유통법 100일을 맞아 발간한 <이동통신요금 대폭 인하 및 단말기가격 거품 제거 방안> 보고서에서 제조사-이통사의 보조금을 분리공시하는 제도를 단통법에 도입해 출고가를 실질적으로 내리고, 요금인가제에 ‘심의’를 도입해 원가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이며, 장기적으로 이통3사의 독과점을 깰 장치로 ‘제4이동통신 출범’을 제안했다.

원가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를 넓혀나가는 게 중요하다. 2013년 9월 감사원은 이통3사가 법인세 비용 2조1500억 원과 투자에 따른 적정 이윤 2조5700억 원을 ‘총괄원가’에 과다하게 반영했고, 사업자들이 스스로 정한 마케팅비 가이드라인을 어기고 18조600억 원을 과다 지출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렇게 부풀려진 원가는 연간 7조6천억 원, 1인당 연평균 15만 원을 부담한 셈”이다. 결국 ‘원가’에 접근해야만 통신요금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

▲ 이통3사의 무선부문 ARPU(가입자당 매출) 추이 자료. 참여연대가 각사 자료를 종합, 재구성.

참여연대가 SK텔레콤에만 적용하는 요금인가제를 대폭 강화, 이통사가 출시하는 ‘판박이’ 요금제를 심의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사전에 요금을 규제할 수 있다. 그 동안 요금인가제는 이통사의 단합을 유지했다. 2005년 이후 SK텔레콤이 신청한 353건을 정부는 모두 ‘인가’했다. 인가제를 대폭 강화해 사회적 ‘심의’를 한다면 요금 인하 여력을 판단할 근거가 공개될뿐더러 실제 이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단통법에서는 좌절됐지만 삼성전자 등 제조사의 ‘보조금’을 공개하면 출고가가 내려갈 수 있다. 한국의 단말기 유통구조는 삼성과 LG 같은 제조2사와 이통3사의 담합만 있다면 얼마든지 부풀려질 수 있는 구조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0년 사이 삼성전자는 이통사와 짬짜미해 전체 출고가의 26%에 달하는 보조금을 출고가에 미리 반영했다. 이런 까닭에 보조금 분리공시제를 도입해 제조사와 이통사의 ‘유착’ 가능성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

참여연대는 장기적으로는 이통3사의 알뜰폰(MVNO) 지배력을 낮추고, 제4이동통신을 만들어 경쟁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알뜰폰사업자는 이통3사에 망을 빌리고 이용대가를 주는데, 이 방식을 현행 ‘리테일 마이너스’(소매가에서 인하)에서 ‘코스트 플러스’(원가에서 이익 추가)로 바꾸고 이통3사 계열사의 알뜰폰 진출을 규제해 알뜰폰이 이통사의 경쟁자로 만드는 방안도 필요하다.

통신비는 이미 부담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저가요금제 ‘자린고비’에는 한계가 있다. 데이터를 통해 통신이 이루어지고 있고, 스마트폰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용량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데이터 사용량은 늘어날 것이고, 사업자들은 늘어난 양만큼 요금도 올라가야 한다고 주장할 게 빤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 사업자들이 챙기는 ‘폭리’가 어느 정도고 도대체 어느 정도가 적정한 요금인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이제 제조사도 이통사도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할 수 있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이 시대에 대한 가장 유력한 전망은 ‘요금 폭탄’이다. 지금 사업자들의 담합과 유착, 그리고 일방적인 요금 결정 구조를 만들지 않는다면 다음 16개월 뒤 스마트폰을 바꿀 때 이용자는 지금보다 더 ‘호갱님’이 된다. 스마트워치를 사고, 집에 스마트 냉장고를 들이면 통신요금은 올라간다. 사업자들이 “더 쓰면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럼 데이터 1G 원가는 얼마인데?”라는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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