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23일차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케이블SO) 씨앤앰은 지난 16~17일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이 씨앤앰 경영진의 대 정부 로비 문건을 폭로한 직후 하도급업체 직장폐쇄와 간접고용노동자 처우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다 돌연 입장을 번복했고 노조에 “하청업체 비정규직에게 해줄 것이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추가 폭로 가능성에 떨었을 씨앤앰이 왜 생각을 바꾼 걸까.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맥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펀드 개입뿐이다. 이들은 지난 2007년 2조 원 가량을 들여 씨앤앰을 사들였는데 자기자본은 3500억 원뿐이었다. 그런데 IPTV 출범으로 케이블, 특히 씨앤앰은 경쟁에서 밀렸고 결국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투자자금을 회수하려는 대주주 입장에서 ‘임금 20% 삭감’을 못 받겠다는 하도급업체와 노동조합은 없어지는 편이 좋다.

▲ 30일 노숙농성장에서는 약식 결의대회가 열렸다. (사진=미디어스)

씨앤앰 경영진에게 하도급업체 문제는 ‘리스크’이지만 매각을 추진 중인 대주주 입장은 다를 수 있다는 게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케이블 업계의 지배적 분석이다. 이제 정말 장기전이 됐다. 원-하청 위수탁기간이 끝나면서 계약만료 해고자도 추가로 발생하고 있지만 씨앤앰은 묵묵부답이다. 노동자들은 적금을 깨고 천만 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목돈을 마련했다. 노동조합은 채권을 발행했다.

30일 MBK파트너스가 입주한 서울파이낸스센터 뒤편 노숙농성장에서 만난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 김영수 지부장은 “원청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은 정황 상 대주주의 입김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매각을 추진하는 대주주 입장에서는 하도급업체 문제는 리스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입장을 번복한 원청이 임금 20% 삭감 등 이전과 같은 안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지난 6월 말 계약만료로 대규모 해고 사태가 발생했고, 7월8일 노숙농성에 돌입한 탓에 노동조합의 요구는 단순하다. 노조 요구는 크게 3가지인데 고용안정(업체변경시 고용승계), 최소한의 임금인상, 케이블가입자 권리 보장이다. 특히 마지막은 고가 상품의 공격적 영업을 줄여 가입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고, 분할매각 등으로 업체와 서비스가 바뀔 수 있는 지역 가입자들을 위한 공적 요구다.

씨앤앰은 최근 서울 중랑구에서 ‘착한콘서트’를 주최할 정도로 사회공헌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하도급업체에 대해서는 “해줄 게 없다”는 입장이다. 김영수 지부장은 “과도하지 않은 기본적인 요구를 하는데도 논의할 생각조차 없이 오히려 노동조합이 수용할 수 없는 것만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폐쇄로) 막다른 곳에 노동조합을 몰아넣고, 장기전을 하자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 30일 서울파이낸스센터 뒤편에 있는 씨앤앰 노숙농성장에 걸려 있는 피켓. (사진=미디어스)

김영수 지부장은 “노숙농성이 길어지고, 거리에서 먹고자니까 아무래도 조합원들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희망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21일 새벽 6시 반께 권아무개(48) 조합원은 호흡곤란 증세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다. 김 지부장은 “사정상 혼자 살고 있는 조합원이고 열심히 농성에 참여했는데 그날 갑자기 심장이 뛰지 않았다. 동료들이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권씨의 심장은 5분 정도 멈췄다가 현장에 도착한 의료진이 전기충격을 가하자 다시 뛰었다고 한다. 김영수 지부장은 “왼손이 잘 움직이지 않고 오른손은 손가락만 움직일 정도”라며 “상태가 많이 호전돼 이제 사람을 알아보기는 하지만 아직 움직이지를 못하고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전했다. 권씨가 나흘 전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한 말은 “조합원들은 어떻게 됐느냐”였다고 한다.

김영수 지부장은 “싸움이 길어지면서 여성 조합원과 40대 이상 조합원들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조합원들이 스스로 가용한 선에서 목돈을 마련하고, 대출을 받고, 마이너스통장을 만들며 장기전을 준비할 정도”라며 “어떻게든 끝까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가입해지 운동을 벌이고 있고, 희망연대노동조합은 최저생계비를 지원할 목적으로 채권을 발행했다.

씨앤앰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모범사업장’으로 지난해 이미 최근 타결된 삼성전자서비스 하도급업체 노사 단체협약 수준 이상을 합의, 이행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돌변했다. 고용승계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지금 씨앤앰은 노동조합을 지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주주가 진 빚이 간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 600여 명에게 넘어갔다. 김영수 지부장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희망연대노동조합은 최근 노동자들의 최저생계 보장을 위해 채권을 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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