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채 상병 사건’ 수사무마 의혹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결국 취재진을 피해 호주로 출국했다. 동아일보는 “상식 밖의 일”이라며 “호주 대사 임명부터, 약식조사, 출국금지 해제, 전격 출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주호주 대사로 임명된 지 6일, 출국금지가 해제된 지 이틀 만에 이 전 장관은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10일 저녁 7시 45분 쯤 호주 브리즈번 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다.
이날 오후 7시 10분쯤 MBC 취재진은 이 전 장관이 대한항공 항공기 탑승구에 들어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이 전 장관은 ‘어떻게 취재진 다 있는데 오신 건가’라는 MBC 질문에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지금 조사받고 있는 중에 나가는 거잖나’라는 질문에 “그건 다 얘기된 거고”라고 말했다.
다수의 매체가 이날 오후 내내 공항 출국장에서 기다렸으나 이 전 장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MBC는 “보통 출발시간 한두 시간 전쯤 탑승구가 있는 보안구역에 들어가는데, 이 전 장관은 훨씬 앞서 취재진이 도착하기 전, 이미 보안구역에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야당은 이날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이종섭 출국'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일보는 11일 사설 <이종섭 ‘대사 임명-약식 조사-출금 해제-전격 출국’ 미스터리>에서 “속전속결로 출국이 이뤄지기까지의 과정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며 “이 전 장관이 채 상병 사고 의혹과 관련한 핵심 인물로 오래전부터 지목돼온 상황에서 이 전 장관을 대사에 앉힌 것부터 상식 밖의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공수처의 조사를 받은 지 하루 만에 출국금지를 풀어준 법무부의 결정도 전례가 극히 드문 사례”라면서 “출국금지 당사자가 낸 이의신청은 대부분 기각되고 가족의 경조사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법무부는 ‘최근 출석 조사가 이뤄졌고, 본인이 수사 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한다’는 이유로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는데, 다른 피의자들도 이런 기준에 따라 출국금지를 풀어줄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수해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은 사고 수사에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은 투명한 수사를 통해서 결론을 내야 할 일”이라며 “이 전 장관이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지도 의문인 데다, 그런 수사를 통해 내놓은 결과를 국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겠는가. 호주 대사 임명부터, 약식조사, 출국금지 해제, 전격 출국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오히려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같은 날 사설 <기어이 이종섭 해외 빼돌린 윤석열 정부, 제 발 저리나>에서 “이렇게 무리수를 계속 두니, 의혹을 스스로 점점 키우는 격”이라며 “법무부는 호주 대사 임명 이후 이 전 장관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그의 출금을 해제했는데, 이런 방식의 출금 해제는 전례가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2016년 출국금지 이의신청 건수는 236건이었는데 이 중 229건이 기각돼, 기각률이 97%에 이르렀다”며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엔 가족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인도적 사유가 아니면 출금이 해제되지 않는다. 법무부가 공수처의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출금을 해제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공수처는 출금 해제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법무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만약 검찰이 반대한 사안이었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실과 법무부는 채 상병 죽음의 원인과 책임 규명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사설 <이종섭 호주대사 출국 강행, 이 난맥의 총체 밝혀야>에서 “‘수사 방해’ ‘범죄인 도피’라는 들끓는 여론에도 아랑곳없이 이 대사를 기어이 내보낸 것”이라며 “의혹투성이 대사 피의자를 이렇게 서둘러 내보내려는 배경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실까지 거론되는 ‘수사 외압’ 의혹도 중차대하지만, 그 후 정부의 은폐·축소 행태는 그 자체로 총체적 국정난맥이라고 할 만하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이 대사의 출금이 알려진 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부적절한 인사’라는 지적이 이어졌다”며 “범죄 혐의를 받는 대사가 이렇게 야반도주하듯 부임하는 것 자체가 국격 추락이요, 외교적 망신이다. 윤석열 정부 국정의 불통·밀실·무능·무책임이 이 건 하나에 집약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이 대사 임명·출국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사건으로 비화했다”며 “지척거리는 공수처가 진실을 내놓지 못하면 특검을 통해서라도 밝혀야 할 국민적 의혹이 됐는데, 젊은 해병대원의 억울한 죽음을 권력형 사건으로 키우는 것은 윤 대통령이다. 진실 규명을 덮으려고 할수록 의혹·파장이 커진다는 걸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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