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4월, 꽃 피는 봄이다. 담장을 넘어 길게 늘어진 노란 개나리, 담장 너머의 흰 목련, 길을 따라 물든 연분홍 벚꽃 그리고 진달래, 조팝나무꽃이 줄지어 길에 피었다. 세상이 이토록 알록달록 아름다울 수 없다. 어디 한군데 빠짐없이 속속들이 봄, 봄이다.

와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이번 봄은 유달리 형형색색이다. 어느 길이고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동네 입구부터 늘어선 벚꽃은 이미 만개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무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빛 조각을 얇게 베어 나뭇가지에 붙여놓은 것처럼, 햇빛을 머금은 꽃잎은 바람이 불 때마다 고운 빛을 뿌리며 반짝인다. 햇살에 반짝이는 꽃이 예쁘긴 한데 마음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걱정으로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개나리와 목련, 벚꽃과 조팝나무꽃이 함께 피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이른 봄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은 보았지만 온갖 봄꽃이 한꺼번에 펴버리는 건 처음 보았다.

3월 28일 서울 여의도와 남산에 핀 봄꽃.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 수선화, 홍매화, 앵도나무, 조팝나무, 산수유. (서울=연합뉴스)
3월 28일 서울 여의도와 남산에 핀 봄꽃.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 수선화, 홍매화, 앵도나무, 조팝나무, 산수유. (서울=연합뉴스)

봄꽃이 피는 데도 순서가 있고, 시간이 있다. 개나리가 피고 지면,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벚꽃이 피고 흩날리고 나면 장미가 핀다. 라일락 향기가 짙어지면 여름이 오고 짙어진다. 그런데 2023년 봄은 모든 봄꽃이 한꺼번에 피고 한꺼번에 저버린다.

2023년 3월의 날씨는 이상했다. 기온이 영하로 추운 날씨가 계속 이어졌다. 겨울 패딩을 벗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춥기도 했지만 일교차도 컸다. 기상청에서는 일교차가 10도 이상 나니 감기에 유의하라는 메시지가 빠지지 않고 나왔다. 패딩 속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다녀야했다. 겨울이 길어지려나 생각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초여름 날씨로 건너뛰었다. 얇은 패딩을 입고 길을 나서는데 더웠다. 휴대전화기로 기온은 확인하니 26도, 초여름 날씨였다. 세상에 봄도 없이 여름으로 직행이라니, 생각하며 주위를 살폈더니 반소매를 입은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분명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날씨였다.

갑자기 찾아온 초여름 날씨에 길에 나선 사람들의 옷차림도 제각각이었다. 얇은 패딩을 입고 나온 사람, 봄 잠바를 입고 나온 사람, 바람막이를 입고 나온 사람, 반바지에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사람. 26도의 기온을 사람들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듯싶었다. 봄인데 반소매를, 덥지만 아직 3월이니까, 더우니까 반소매를 입어야 하나 헛갈리는 날이었다.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20도 이상으로 오른 3월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반팔을 입은 시민이 유모차를 끌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20도 이상으로 오른 3월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반팔을 입은 시민이 유모차를 끌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다음 날도 기온도 26도였다. 26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은 봄꽃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꽃망울로 머물러 있던 봄꽃도 다음 날 만개해 버렸다. 순서도 없이 모두 함께. 봄을 기다리던 꽃들은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갈팡질팡 허둥거리며 피어버렸다. 모두 시기보다 일찍 피어버리고 지기 시작했다. 초여름 날씨는 며칠 반짝 지속되다 다시 추워졌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였다. 감기에 조심하라는 기상청의 당부가 무색할 정도로 감기 환자가 늘었다.

길마다 만개한 봄꽃을 보며 속삭이듯 말한다.

너희도 감기 조심해. 햇살이 좋다고 무턱대고 펴버리면 안 돼.

만개한 지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벚꽃이 지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보며 노인네처럼 걱정만 는다. ‘봄꽃이 한꺼번에 피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야. 게다가 모두 시기가 이르잖아. 걱정이네.’ 꽃은 너무 예쁜데 날씨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봄이 주는 축복을 잃게 될까 무섭다. 봄은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축복이라고 했다. 봄이 되면 화분을 사고 꽃을 가꾸던 선생님이 말했다. 짧아졌지만 봄이 있어 다행이라고. 이렇게 예쁜 꽃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봄뿐인데. 봄은 축복이라고, 우린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은 태국인 관광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기상청은 금요일인 7일부터 일요일인 9일까지 내륙을 중심으로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서울=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은 태국인 관광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기상청은 금요일인 7일부터 일요일인 9일까지 내륙을 중심으로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서울=연합뉴스)

나는 봄이 사라질까 걱정이다. 개나리도, 목련도, 벚꽃도 볼 수 없게 될까 봐 걱정이다. 어쩜 봄꽃을 보지 못하게 만든 주범이 내가 아닐까 걱정이다. 환경을, 기후를 걱정하면서 걷기 싫어하고, 계절마다 옷을 사고, 물 낭비도 많다. 환경을 걱정하고 기후 변화를 걱정하지만, 사실 환경과 기후 변화에 관해 ‘어떻게’ 걱정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는 사용하고 있지만, 더 많은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며 기후 변화에 영향을 주는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주말에 분리수거를 하며 플라스틱과 종이가 전 주에 비해 덜 나오면 마음이 놓이고, 많이 나오면 반성하며 생활을 되돌아본다. 수북하게 쌓인 택배 상자를 보며 부끄러워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하는 마음도 든다. 오늘도 ‘어쩔 수 없어’, 하는 마음으로 분리수거를 하러 간다.

바람이 분다. 쓰레기 위로 벚꽃이 후두둑 떨어진다. 4월 초인데 벌써 꽃이 진 곳이 많다. 햇살은 한창인데 꽃이 진다. 꽃이 진 자리를 바라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년에도, 오 년 후 내년에도, 십 년 후 내년에도, 이십 년 후 내년에도 벚꽃을 보고 싶다. 봄 햇살을 머금은 벚꽃이 피고, 또 지는 것을 보고 싶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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