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3.1절 기념사의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3.1운동은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는 한미일 삼각협력으로 완성된다. 따라서 3.1운동 정신은 한미일 삼각협력이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논리 전개에 동의할 수 있을까? 어느 언론은 “기괴한 결론”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3.1운동을 자유민주주의 구현의 일환으로 본 것은 한일관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성격을 평가하는 외양을 갖추려 한 걸로 보인다. 그러한 논리의 시작이 이상한 결론으로 치닫게 된 과정은 어떤 것인가? 그런 면에서 대통령 기념사의 시도는 원본이 따로 있는 열화복제 같다.

3.1운동의 세계시민적 보편성을 평가하는 논리로 접근하면 ‘원본’은 이런 형식이었어야 했다. “3.1운동은 자유와 평화를 요구한 것이었다. 오늘날 자유와 평화는 가해자의 반성과 피해자의 용서, 이것이 가능한 평화체제의 달성에 의하여 구현된다. 따라서 3.1운동의 현재적 정신은 반전평화와 상호 호혜적인 군축 체제로의 합의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관점에서는 세계시민들에게 평화를 요구할 의사가 없고(윤석열 대통령 생각에 오직 가능한 것은 ‘힘에 의한 평화’이다) 무엇보다도 ‘가해자의 반성’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기괴한 결론”은 이렇게 완성됐으리라.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올해 94세인 강제 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굴욕외교 OUT'을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에서 올해 94세인 강제 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굴욕외교 OUT'을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에 일방적으로 굴복하다시피 한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해법은 “기괴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이유를 보여준다. 3.1절 기념사가 공개된 직후 대다수 언론은 정부 해법의 발표가 목전에 다가왔음을 예고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해법’은 애초 예상한 것보다도 후퇴한 수준이다. 정부의 ‘제3자 변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의 수혜자인 한국 기업의 참여만으로 이뤄진다. 최소한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한국의 전경련과 일본의 게이단렌은 가칭 미래청년기금을 함께 조성하기로 했는데, 이 기금의 주된 용처는 유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 등과 같은 것으로 강제동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 수준 역시 예상대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언급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는 선언 수준에서 이뤄질 걸로 보인다. 여기서 ‘사죄’란 일본어로는 ‘오와비(おわび)’이다. 우리말로 따졌을 때 ‘책임지겠다’는 의미는 없는 걸로 해석된다. 더군다나 이 표현의 ‘원본’은 강제동원 판결이 나오기 20여년 전인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이고 일본 정부는 이 표현을 여러 기회를 통해 ‘계승’해 온 것이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일본 총리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의사 표명 역시 강제동원 문제와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이 문제는 강제동원 배상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되었다는 일본의 입장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한국 대법원 판결의 차이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 해법은 일본의 입장이 거의 전부 받아들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해법대로라면 일본은 1965년 청구권 협정 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정부의 해법은 대법원 판결 취지와 상충한다.

어찌되었건 강제동원 배상 판결 문제의 해법이 마련되었다고 할 때 먼저 일본이 풀어야 할 문제는 수출규제 원상복구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론 수출규제와 강제동원 배상 판결은 아무 관계도 없다고 해왔다. 하지만 최근 아베 신조 전 총리 사후 출판된 회고록을 보면 수출규제는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가 맞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굴욕적으로 해결책을 마련한 이상 일본 정부도 최소한 이것은 철회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런데 보도에 의하면 이것도 그냥 해주는 분위기는 아니다. 지소미아 정상화와 패키지로 묶여있고, 무엇보다도 한국 정부의 WTO 제소 취하가 전제다. 한국 정부의 WTO 제소는 정치적 문제를 이유로 경제 보복을 한 행위는 정당하지 않다는 논리로 이뤄졌다. 이걸 취하하고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은 결국 일본의 무역보복을 정당화하는 걸 넘어서 오히려 ‘성공’했다는 선례를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외교안보 일정의 시급함을 명분삼고 있다. 5월에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정상회의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해 성과를 내야 예정대로 한미일 삼각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고, 그래야 아마도 북한의 도발이 거세질 걸로 예상되는 올해 여름을 넘길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또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압박하는 미국의 양해를 얻어내는 데에도 좋은 재료가 되리라 보는 듯 하다. 따라서 정부의 해법 발표, 한일 양국의 셔틀외교 복원이 4월 대통령의 방미 일정 전에 이뤄져야 한다는 거다. 이런 구도라면 결국 ‘국익’을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 개인의 권리는 희생되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애초에 그 ‘국익’이란 반드시 강제동원 피해를 밟고 올라서는 방식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거였을까?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일정만 일단 지연시키고 나머지 문제는 장기적으로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방식으로 풀 수는 없는 문제였을까? 이런 청사진을 가지고 피해자들을 대통령이 직접 설득하는 방식은 불가능했던 걸까? 시도조차 안 했으니 평가를 하기 어렵다. 다만 거기까지만 했어도 외교안보적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를 평가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에 굳이 어깃장을 놓지 못했을 거라는 가정은 충분히 해볼 수 있다.

오죽하면 한일관계를 담당하는 고위관계자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는 보도까지 나오겠는가. 대통령실 참모 일부와 전문가들이 뜯어 말리는 분위기였는데도 대통령이 외교부 장관을 불러 빠른 협상 타결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의 기금 참여는 사실상 포기해도 좋다고 했다고도 한다. 한국 정부가 이런 태도이니 일본이 뭘 양보할 리도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이 이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심정으로 풀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건 아마도 ‘전 정권이 하지 못한 일을 우리는 해결했다’고 하는 정치적 트로피를 쥐고 싶은 욕망일지 모르겠다. 전 정권은 일본의 수출규제 보복조치에 대해 다소 과한 ‘반일 드라이브’를 걸었고 지금은 야당이 된 당시 여당은 보수정치를 친일과 하나로 묶어 “총선은 한일전”과 같은 구호를 남발하며 민족주의적 반일 코드를 활용하려 한 사실이 있다. 그 점은 비판의 대상이다.

그런데 강제동원 문제가 여기까지 온 게 온전히 전 정권의 탓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 강제동원 배상 판결 이후 문재인 정권도 ‘2+2’라느니 하는 지금의 ‘제3자변제’와 유사한 이런 저런 논의를 진행했다. 당시의 카운터파트인 아베 신조 정권이 꿈쩍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게 왜 이런 판결을 내놓았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논란의 판결은 2012년 대법원이 원고 패소였던 판결을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 시초이다. 대법원은 이 결론을 5년간 묵혀뒀다가 2018년에야 확정했다. 삼권분립의 원리로 봐도 그렇지만 시기로 봐도 ‘전 정권 탓’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는 거다.

오히려 묵혀둔 5년에 해당하는 박근혜 정권은 당시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과 외교부 장관 라인의 협의를 통해 이 ‘문제의 판결’을 어떻게든 뒤집기 위해 이런 저런 부절적한 노력을 한 바 있다. 이는 ‘사법농단’으로 묶인 일련의 사건들 중 하나로, 지난 정권 검찰의 주요한 수사 대상이었다. 이 사법농단 수사를 도맡은 부서가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지검장이던 서울중앙지검의 수사팀이었고, 그 수사를 지휘한 게 당시 ‘화양연화’의 시절을 보내던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였다.

이런 관계로 보면 한국 정부의 ‘해법’은 일본에 대한 뒤늦은 ‘무혐의’ 선언 같아 보이기도 한다. 덮어줄 때는 확실히 덮어주는 게 특수부 검사들의 미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적으로 더렵혀진 유행어가 되어버린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도, 이 ‘무혐의’ 선언은 유효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졸속 무혐의 처분에 대한 재수사는 사실상 예정돼 있고, 그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부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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