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이 정권 사람들은 전 정권을 향해 대북 대중 굴욕외교를 했다고 여러 차례 비판했고 정권이 바뀐 지 거의 1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잊을 만하면 그 얘기를 한다. 북한의 선의에만 기대 핵 포기 의사를 믿고 이념편향적인 순진한 외교 전략으로 일관하다 일을 그르쳤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를 조건으로 놓고 보면 일리가 있다고 본다. 나름의 외교적 플랜B가 있었어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뼈아프다.

전 정권의 이러한 ‘실책’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선의에만 기댄 이념편향적 외교 전략이 아닌 다른 방식의 전략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똑같은 문법을 대상만 바꿔 일본에다가 적용하고 있다. 한일정상회담의 실제가 그렇고 그 이후의 대응이 그렇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한일정상회담은 근래 보기 드문 외교적 자해로 귀결되었다. 이 회담의 의미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에 사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일본에 큰 실례를 끼쳤으니 앞으로 잘하겠다고 다짐한 거나 다름이 없다. 한국은 구상권 행사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제3자변제’라는 기본 틀 조차 의미가 없어질 만한 발언을 대통령이 직접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거론했으나, 일본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그동안 고수해 온 입장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이 양보한 것은 ‘오므라이스’ 정도였다. 일본 정치의 실력자이자 집권 자민당 부총재인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지난 16일 자기 파벌 모임에서 지난해 11월 방한 당시 대화 내용을 자랑스럽게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서 맛있었던 것은 ‘오므라이스다’고 말하길래 ‘지금은 좀 더 맛있는 것이 있다고요’라고 말해줬다”고 했다는 거다. 기실 ‘오므라이스’는 정상 간 만찬 회동의 메뉴로는 적절치 않다. 일본이 회담 성과로 내준 게 없다고 하면 더욱 그렇다. ‘푸대접’을 넘어 외교 결례 논란까지 번질 성질이다. 고급 스키야키 만찬 일정이 1차로 배치된 건 그래서일 거다. 식사를 두 차례 하는 특이한 일정은 한국 대통령의 기호인 ‘오므라이스’를 배려했다는 것 외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 ‘오므라이스’ 집에서 나눈 대화가 향후 한일관계의 새로운 폭탄이 될 조짐이 보인다.

정상회담 성과가 미약하니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 보수언론은 한목소리로 우리가 좀 양보했더라도 앞으로 일본의 ‘호응 조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이득이라고 주장하는 중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YTN 등에 출연해 “비공개 협의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결정하려고 한다고 했을 때 일본이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하면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로서는 이것이 학수고대하던 해법인 것 같다(고 하더라)”, “국민들이 기대하기에 (일본이)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성의 있는 조치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상대가 깜짝 놀랄 정도로 양보했다는 걸 자랑스럽게 말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실제로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가 이어진다면 국민들도 어느 정도 양해할 수 있을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일본이 취할 ‘상응 조치’가 뭐든 한일 양국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의제들에 대해 일본이 양보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건 ‘성의 있는 조치’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 언론은 연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독도 영유권 분쟁 등에 대해서도 할 말을 당당히 다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의 출처는 일본 정부 관계자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실제 있었던 일을 언론에 흘리고 있는 것이거나 강경파들의 시선을 의식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확인을 위해선 한국 정부의 입장을 들어봐야 할텐데, 설명이 아무래도 애매하다. 언론 대응에 직접 나선 당국자들은 “정상회담 논의 의제는 아니었다”면서도 “정상 간 대화를 전부 공개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정식 논의 의제가 아니었더라도 정상 간 대화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독도 영유권 등의 언급을 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못하는 거다. 한 술 더 떠 김태효 1차장은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선 남은 기금을 우리가 미래지향적으로 쓰면 된다고 했고, 독도 문제에 대해선 “일본 당국자가 우리에게 독도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 발언의 맥락은 ‘일본 총리가 실제 민감한 문제를 거론했더라도 한일 간 현안으로 다룰 일은 아니다’는 것이어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핵심 당국자들의 이런 태도는 어디서 온 것일까?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 요구와 독도 영유권 거론 문제가 정상회담 논의 의제가 아니었는데 거론됐다면 그럴 수 있었던 자리는 친교를 목적으로 한 ‘오므라이스’ 집에서의 양자회동이다. 이 자리에서 나눈 대화는 두 사람과 통역만 알고 있다. 구체적 대화 내용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나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김태효 1차장이나 박진 외교부 장관이 아는 내용조차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 애초에 일본과 싸우고 싶지 않아서 만든 자리였다. 일본 총리가 자기네 입장을 얘기한다고 한국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없는 자리다. 그러니 당국자들도 ‘그런 얘기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이 국내 언론에 “기시다 총리가 일본 정치권에서 술이 가장 세지 않는가”라는 류의 흥미위주 발언만 흘려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 보수언론이 주장하듯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이다. 그런데 이 ‘오므라이스’ 대화와 관련한 진실공방이 보여주는 것은 앞으로 양국 간 갈등을 이루는 핵심쟁점에 대해 일본이 양보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답방해 우리 입장에서 뭔가 아전인수할 수 있을만한 언급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을 강행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역사적 진실을 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강행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도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가 가능하려면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통 크게 양보했는데도 이런 식이면 우리도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명박 정권 시기 대통령의 독도 상륙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하는 일이 될 거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가 아까워 침묵한다면 전 정권의 과오를 일본을 대상으로 더 나쁜 방식으로 반복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어떤 쪽이든 외교적으로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불가피하다. 이러한 정해진 앞날을 한 치도 내다보지 못하고 타국의 선의에만 기댄 이념편향적 외교 참사를 주도한 외교안보 참모들을 대통령은 즉각 경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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