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론연대)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 한겨레 기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라고 촉구했다. 언론보도를 위축시켜 국민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물론, 검찰 인사권을 갖게 될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이른바 '셀프 고소'는 수사·기소 공정성을 의심받게 하는 행태라는 지적이다.

언론연대는 11일 논평을 내어 "장관 후보자가 자신을 향한 검증보도에 고소장부터 내미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태"라며 "한동훈 후보자는 한겨레 기자 형사고소를 하루 빨리 철회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언론연대는 "언론에 대한 형사소송은 후속보도를 위축시켜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며 "기사에 이미 후보자 측의 반론이 포함되어 있고, 해당 언론사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바로잡은 상황에서 기어이 형사고소에 나선 것은 언론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연대는 "더군다나 한 후보자는 검찰 인사권을 가지게 되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라며 "법무부 장관이 제출한 고소장을 처리해야 할 검찰은 어떤 형태로든 압박을 받게 되고, 공정성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한겨레는 한 후보자 딸이 '엄마 찬스'를 통해 대학 입시에 필요한 봉사활동 스펙을 쌓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엄마 친구가 임원인 모 기업에서 노트북 50대를 후원받아 복지관에 기부한 정황으로 한겨레는 한 후보자 배우자 진 모 씨의 지인인 '기업 법무 담당' 임원 고 모 씨가 노트북 기증과정에서 연결고리 구실을 했다고 전했다

한 후보자는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 후보자는 한겨레가 애초 온라인 기사 소제목에 딸 이름으로 기부가 이뤄졌다고 보도했다가 삭제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한 후보자는 공정한 심사를 통해 기업 명의로 기부가 이뤄졌다며 한겨레 보도가 허위보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겨레 기자 3명과 보도 책임자를 고소했다.

한 후보자는 지난 9일 인사청문회에서 한겨레 보도를 '악의적 보도'로 규정하고 나섰다. 한 후보자는 한겨레 기자들에 대한 고소 취하 의사를 묻는 질의에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한겨레 "악의적으로, 명확하게 사실을 아는데도 공격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한겨레 5월 4일 <[단독] 한동훈 딸도 ‘부모 찬스’로 대학진학용 ‘기부 스펙’ 의혹> 갈무리

이에 대해 언론연대는 "근거가 부족한 예단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인 사실관계와 보도 취지에 비춰보아도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라며 "법률가인 한 후보자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연대는 "한 후보자 자녀의 스펙 쌓기 의혹이 온전히 씻긴 상황도 아니다"라며 "여전히 “미국 대학 입시를 위해 부모와 가족까지 동원한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한국일보 사설)는 언론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 후보자는 '자녀를 향한 검증을 불편해 하거나 반발하기보단 겸허한 자세로 충분히 설명'(중앙일보 사설)하고, '국민 눈높이에서 해명하라'(동아일보 사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지난 9일 오마이뉴스는 <[단독]'한동훈 딸 이름' 기부 안 했다? 기념사진에 담긴 동아리명>에서 한 후보자 딸이 주도했던 동아리 '피스 오브 탤런트'(Piece Of Talent, POT)가 '기부스펙 의혹' 당시 기념사진 전면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한겨레 고소 정당화하려 '언론중재법' 꺼내

언론연대는 한 후보자가 한겨레 기자 고소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주당이 추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언급한 것을 두고 '내로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고 비판했다. 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문재인)대통령도 국민을 고소한 전례가 있다"면서 "지금 민주당에서 강력한 언론개혁법을 추진하지 않나. 그 취지를 생각하면 이 정도의 기사에 대해 조치하는 것을 취지상 지지해줘야 일관성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언론연대는 "이러한 핑계는 참으로 품격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런 논리라면 윤석열 대통령은 민주당 법안을 반대하지 않았던가. 한 후보자는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아니던가"라며 "언제까지 이런 '진흙탕식 내로남불' 공방으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한 후보자가 언급한 민주당의 언론개혁법은 허위조작보도(일명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다. 해당 개정안은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정치·경제 권력의 '입막음 소송' '전략적 봉쇄소송' 우려가 제기됐다.

9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입장과 공약 등에 비춰볼 때 한 후보자의 주장 역시 '내로남불'이 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추진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공약에는 '부당한 언론 개입 노(NO)'라고 적시했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추진 과정에서 권력의 전략적 봉쇄소송을 방지하기 위해 '고위공직자·선출직 공무원·대기업 임원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는 수정안을 내놨다. 한 후보자는 이 같은 조항의 적용 대상이다.

다만 언론연대는 "한 후보자가 민주당 법안의 취지를 들어 반박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며 "민주당은 이런 씁쓸한 장면이 연출된 이유를 꼽씹어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언론연대는 "한 후보자의 언론 고소는 민주당 법안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라며 "누차 강조하듯이 우리나라는 이미 명예훼손과 관련한 강력한 법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에 앞서 과잉규제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해왔다"고 했다.

언론연대는 "'악의적' '고의적'이란 한 후보자의 주장은 또 어떤가. '고의중과실 추정'과 같이 불명확한 기준을 도입하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해 온 부분"이라며 "이번 사태를 통해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보다 명확해졌다. 언론법 개정은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다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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