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복권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은 혼란스런 분위기다. 법무부 사면심사위가 사면 복권 대상자들을 선정한 이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김경수 전 지사에 대한 복권에 반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태는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애초 김경수 전 지사가 복권 대상에 포함됐을 때 여의도 호사가들은 ‘야권분열책’이란 해석을 내놨다. 잠재적 대권주자인 김경수 전 지사가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되면 비명 내지는 친문의 구심점이 형성되고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경수’라는 키워드를 놓고 여의도 주변 인물들이 전 정권 말기부터 꾸준히 언급해 온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는 현실이 될 수 있을까? 김경수 전 지사가 비주류의 구심점이 된다는 건 본인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전제로 한다. 이 ‘정치적 의지’는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현실적 조건도 따져야 한다. 김경수 전 지사의 최대 기반은 조직이나 지역이 아닌 ‘친문 적통’이라는 상징성이다. 김경수 전 지사가 구심점 역할을 하려면 상징성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여야 하고, 그러려면 대권을 쥘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다수 유권자층에 김경수 전 지사는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인물로 인식돼 있다. 별다른 정치적 행보를 하고 있지 않을 때는 이 점이 부각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법원 판결까지 확정된 상태에서, 대권에 도전한다는 게 공식화 됐을 때 이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사건 이후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였다면 또 모른다. 김경수 전 지사의 기본 입장은 대법원 판결 내용도 ‘진실’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는 거였다. 재심이라도 거쳐 이 ‘진실’을 규명하지 않고 대권 도전이 가능하겠는가?

이런 점으로 볼 때 ‘김경수 역할론’은 그것을 활용하고 싶은 여의도 혹은 그 주변 인사들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이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의도 정치판에는 이런 식의 허상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늘 있다. 그런 허상이 존재할 때에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이런 허상에 넘어갈 필요가 없다.
대통령실은 ‘김경수 역할론’을 의식하고 복권을 추진한다는 점은 부인한다.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되는 대통령실의 입장은 국정원,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 사면 복권과 균형을 맞춘 것이라는 거다. 실제 이번 사면 복권 대상자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들어가 있다. 원세훈 전 원장은 윤석열 정권 초기에도 잔형이 감형돼 가석방 된 일이 있었는데, 이 당시 김경수 전 지사도 사면(잔형 집행 정지)를 받았다. 윤석열 정권은 원세훈 전 원장과 김경수 전 지사를 계속 하나의 짝으로 다뤄온 거다. 이렇게 보면 ‘김경수 역할론’보다는 원세훈 전 원장 등과의 ‘균형 맞추기’에 가까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허상이라도 그걸 다들 믿기 시작하면 실체가 되는 게 여의도 정치다. 사면권은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해석의 범위가 넓어진다. 원세훈 전 원장 등과의 형평성을 고려했더라도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야당의 반응을 예상해 보면 그렇다. 만일 더불어민주당이 김경수 전 지사 복권에 환영 입장을 낸다면 원세훈 전 원장 등 사면에 문제제기하기 껄끄러워질 것이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이 원세훈 전 원장 등이 포함된 사면복권에 반대하면 김경수 전 지사 복권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춰질 거다. ‘김경수 역할론’은 이때 불쏘시개가 된다. ‘이재명 전 대표 입지가 불안하니 김경수 복권에 반대하는 거다’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꽃놀이패’라는 평이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런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김경수 전 지사 복권에 반대한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이상해졌다.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김경수 전 지사 복권을 포기하고 원세훈 전 원장 등에 대한 사면만 실시하면, 애초 대통령실이 그렸던 ‘꽃놀이패’ 구도는 무너진다. 원세훈 전 원장에 더해 조윤선 전 장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 자기가 수사한 국정농단 사범을 사면한다는 비판을 더불어민주당은 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반대로, 한동훈 대표의 반대에도 불구 김경수 전 지사 복권을 밀어 붙이면 이는 윤-한 갈등에 다시 불이 붙는 사태로 번지게 된다. 갈등에는 이유가 있다. 이 ‘이유’에 대해 여의도 인사들이 벌써 각종 해석을 덧붙이고 있는데, ‘김경수 역할론’은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여기서 또 소재가 된다. 애초 김경수 전 지사 복권의 정치적 노림수에는 이재명 전 대표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역시 대권을 꿈꾸고 있는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견제의 성격도 있었다는 식이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이재명 전 대표가 김경수 전 지사 복권을 용산에 요청했다고 밝히면서 상황은 더 이상해지고 있다. 대통령실은 4월 영수회담을 앞두고 이재명 전 대표 쪽에서 그런 요청을 한 바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한겨레는 12일 보도에서 이를 “이 전 대표가 김 전 지사 복권을 요청한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는데도, 굳이 4월 회담을 언급하며 사안을 진실 공방으로 가져간 것”이라고 평했다. 4월 회담을 앞둔 사전 조율은 임혁백-함성득 콤비가 비선처럼 등장해 논란이 된 바 있는데, 이때 ‘차기 대선 경쟁자가 될 만한 인사는 대통령실 인선에서 배제하겠다’는 등의 제안을 용산 쪽에서 했다는 얘기가 나왔었다. 김경수 전 지사 복권 논란에선 이 얘기가 ‘차기 대선 경쟁자가 될 만한 인사는 사면 복권에서 제외하겠다’는 걸로 바뀐 상황이다.
![이재명 전 대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408/309635_214497_332.jpg)
아무튼 이런 제안에 대해 이재명 전 대표는 당시에도 지금도 ‘경쟁자는 많으면 좋다’는 취지로 거절했다고 하고 있는데, 이 정황도 야권의 분열보다는 윤-한 갈등에 불을 붙이는 촉매가 되고 있다. 보수 지지층이 친윤과 친한으로 나뉘어 있는 상황에서 결국 김경수 전 지사 복권이 ‘차기 대선 경쟁자’란 키워드와 맞닿아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한동훈 대표 지지층에서 하고 있는 거다.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카드를 검토한 전례도 있으니, 김경수 전 지사의 대권 도전 길을 열어 더불어민주당이 사법리스크 등으로 낙마한 이재명 전 대표를 대체할 주자를 마련하게 한 거 아니냐는 식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른바 친윤계도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경향신문은 12일 기사에서 “대통령이 김 전 지사 복권을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이상한 상황이 됐다”, “대통령 엿먹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는 친윤계 인사의 평을 전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의 ‘반대’ 스탠스는 지지층의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게 아니면 잘 이해하기 어렵다. 본인이 법무부 장관 시절에 김경수 전 지사에 대한 사면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그때도 반대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때 반대한 게 관철이 안 된 사안을 왜 지금 또 반대하나. 언론 보도를 보면 한동훈 대표가 대통령실에 반대 입장을 전달한 것은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하는데, 냉정하게 말해 대다수 유권자들은 김경수 전 지사 복권 여부에 큰 관심이 없다. 한동훈 대표 주변이나 강성 보수층만 관심이 클 뿐이다.
그러다보니 의도적인 ‘선 긋기’라는 평이 나온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이상 현직 대통령과 거리두기가 필수인 한동훈 대표가 ‘제3자 추천 특검’ 등 보수층의 환호를 받기 어려운 의제를 내세워 ‘제2의 유승민’이 되기보다는, 보수층의 환호를 받을 수 있는 의제로 윤석열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는 거 아니냐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는 해야 하는데 ‘배신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한동훈 대표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좋은 소재가 바로 김경수 전 지사 문제라는 해석이다.
결국 ‘김경수 역할론’은 이런 저런 여당 내 정치적 셈법의 소재로 쓰이고 있는 셈인데, 여의도 정치가 원래 그런 거니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러나 적어도 제대로 된 정치에는 어떤 본질을 건드리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김경수 역할론’과 이런 저런 차기 대권 놀음은 본질이 아니다. 이 건은 대통령의 사면권을 어떻게 행사하는 게 맞느냐가 본질이다. 한동훈 대표가 김경수 전 지사 복권에 반대하는 명분은 민주주의를 파괴했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반성도 안 한다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 거라면 원세훈 전 원장과 국정농단 사범들에 대한 사면도 반대해야 한다. 이런 사면을 추진하는 대통령의 사면권도 추후 제한하자고 해야 한다. 그런 주장이 없는 특정인에 대한 사면복권 반대는 공허한 여의도의 정치 게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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