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유가족을 향한 끊임없는 모욕과 조롱으로 인해 참사를 두 번 겪고 있다. 그 심각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정치권과 언론에게 이제는 국민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고 이주영 씨 아버지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부대표의 발언이다.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100일, 2차 가해자는 누구인가> 토론회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이뤄지는 '2차 가해'에 대한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

토론회에 앞서 이정민 부대표는 이태원 참사 2차 가해에 대한 심각성을 결정적으로 느낀 계기는 고 이재현 군이라고 밝혔다. 이 부대표는 “혐오 댓글, 조롱과 모욕은 16살 밖에 안 된 학생이 감내하기 너무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겨우 살아남은 것이 감사한 일인데, 2차 가해는 이 아이의 등을 다시 낭떠러지로 밀었다”고 비판했다.
이태원 참사 159번째 희생자인 고 이재현 군은 참사 현장에서 간신히 빠져나왔지만, 참사 43일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군은 ‘자신만 살았다는 죄책감’, ‘희생자를 모욕하는 댓글’로 힘들어했다.
이 부대표는 “언론은 ‘언론의 자유’라는 방어막으로 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과 글이 타인에게 향하면 엄청난 가해가 될 수 있고, 목숨까지 잃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비단 이태원 참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2차 가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발제를 맡은 김수정 시민대책회의 미디어감시위원회 팀장은 이태원 참사 '2차 가해' 보도 유형 사례를 발표하며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2차 가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태원 참사 보도의 문제점으로 ▲출처가 불명확한 참사 사진과 영상 사용 ▲불확실하거나 단편적 정보 제공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장면 반복 ▲부적절하고 몰지각한 행위를 선정적으로 보도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보도 ▲막말에 대한 무비판 ▲확인되지 않은 루머나 허위조작 정보 이용 ▲유가족과 연대하는 집단을 왜곡하고 유가족다움 강조 ▲유족 입장을 보도하지 않거나 흐리게 보도하는 행위 ▲혐오 댓글 방관 등을 꼽았다.
김 팀장은 “특히 막말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한 보도는 2차 가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김 팀장은 ▲국민의힘 소속 김미나 경남 창원 시의원의 SNS 게시물 보도 ▲‘마약, 독극물 사망 의혹’을 제기한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 발언 보도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발언 보도 등을 언급했다.
김 팀장은 “하나의 사건 보도로서 관성적으로 전해졌던 재난 보도에 대한 개선 노력이 이어져 왔다”면서 “이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를 예방하고 사회적 위로와 공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것에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홍주환 뉴스타파 기자는 “제도 문제를 떠나 대통령이 먼저 메시지를 내야 한다”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언급했다. 지난달 교통 단속 중인 경찰이 흑인 운전자 타이어 니컬스를 구타해 숨지게 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어 “구타가 담긴 끔찍한 영상을 보고 격분했으며, 깊은 고통을 느꼈다”며 “검은색이나 갈색 피부를 가진 미국인들이 매일같이 겪는 공포와 고통, 상처와 피로감을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홍 기자는 “이 말은 ‘흑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극우 백인들의 생각은 절대 미국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선언”이라며 “단순히 댓글창을 닫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2차 가해를 하는 이들의 생각은 절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계속 상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기자는 “그렇기에 정부와 여당은 ‘이들은 놀러 가서 죽은 것이 아니다’, ‘정부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자이기 때문에 2차 가해는 옳지 않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야 한다”고 말했다.

서수민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자극적 화면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을 기계적으로 해석해서 다 모자이크 처리하는 보도 양태도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그런데 언론은 치유도 하지만 불편한 것을 보여주는 것도 역할”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1950년대 에멋 틸 린치 사건을 언급하며 “희생자들에 대한 예의와 별도로 우리 사회의 프라이버시나 초상권과 공익의 충돌 지점에 대해서도 숙의를 거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에멋 틸 린치 사건은 14살 흑인 소년 에멋 틸이 미국 백인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한 것을 말한다.
에멋 틸의 어머니는 참혹한 현장 사진이 언론에 의해 공론화되는 것을 원했으나 주류 언론은 독자들에게 트라우마를 줄 수 있다며 거절했다. 한 흑인 매체가 해당 사진을 보도하자 공론화됐고, 해당 사건은 미국 인권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유진 경향신문 기자는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관행에 기댄 속보 경쟁과 무비판적인 ‘따옴표 보도’가 주를 이었다”며 “특히 포털 댓글 창은 혐오와 조롱의 놀이터가 됐다. 댓글을 통한 2차 가해를 방지할 의무도 기자와 언론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는 “포털은 언론에 댓글 폐쇄 권한을 넘겼고, 할 수 있는 역할을 다 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문제지만 언론도 포털 탓만 해서는 안 된다”며 “혐오댓글 삭제, 댓글창 차단, 경고문구 삽입 등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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