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노하연 기자] 2022년 이태원 참사,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 2024년 화성 공장화재 사고 중 이태원 참사를 다룬 보도가 트라우마 유발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수치로 환산하면 이태원 참사 보도 중 12.4%, 오송 사고 보도의 5.4%, 화성 사고 보도의 6.6%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재난 보도가 피해자 회복이나 유족 관리가 아닌 책임소재, 규명 프레임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센터장 권영숙)는 27일 트라우마 예방관점 재난보도 현황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용역을 수행한 고려대 산학협력단 박아란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5개 신문사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겨레·경향신문와 3개 방송사 KBS·MBC·SBS의 재난보도 1087건을 분석했다.

트라우마 예방관점 재난보도 현황 조사, 트라우마 신문보도 유형 (사진=보건복지부)
트라우마 예방관점 재난보도 현황 조사, 트라우마 신문보도 유형 (사진=보건복지부)

분석 결과, 재난 회상, 죄책감 등 트라우마 반응을 유발하는 인터뷰 유형이 가장 많이 포함된 경우는 이태원 참사 보도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피해자의 당시 경험이나 목격자의 사고 현장 진술을 지나치게 상세히 담거나, 목숨을 잃은 피해자를 구조하지 못한 죄책감을 회상하며 힘들게 발언한 내용을 포함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한국기자협회의 <재난보도준칙> 제20조는 피해자 인터뷰가 자칫 피해자의 심리적·육체적 안정을 해칠 수 있으니 질문의 내용과 방법 등에서 각별히 유의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트라우마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인터뷰 유형은 신문 보도에서 많이 나타났다. 이태원 참사로 한정하면 24.7%에 달했다. ▲재난 당사자 개인정보 사생활 노출(13.6%) ▲재난 당사자나 가족의 오열, 극도의 흥분상태 여과 없이 보도(14.3%) ▲공포심,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자극적 수식어 사용(11.5%) 등이 뒤를 이었다.

방송 뉴스에서 가장 문제가 된 보도 유형은 ‘자극적 장면 게재·반복’으로 16.1%를 차지했다. 이어 ▲공포심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자극적 수식어(3.6%) ▲재난 당사자나 가족의 오열, 극도의 흥분상태 여과 없이 보도(3.1%) 등으로 조사됐다. 

‘자극적 장면 게재·반복’ 유형은 화성 공장화재 사고 보도에서 월등했다. 연구진은 “화재 사고라는 특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며 “연기와 폭음을 담은 화재 당시 장면이 제보 영상으로 각 방송사에 입수돼 사고 첫날부터 반복적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트라우마 예방관점 재난보도 현황 조사, 트라우마 방송뉴스 유형 (사진=보건복지부)
트라우마 예방관점 재난보도 현황 조사, 트라우마 방송뉴스 유형 (사진=보건복지부)

내용적 프레임을 분석한 결과, 신문·방송 뉴스 모두 ‘책임소재·규명’ 프레임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신문 뉴스의 경우 ‘책임소재·규명’ 프레임이 40.4%(203건)로 가장 많이 활용됐으며 ▲대응 비판 15.3%(77건) ▲사건 공시 11.0%(55건) ▲유족 관점 7.8%(39건) 등의 순을 나타냈다. 방송 뉴스도 ‘책임소재·규명’ 프레임이 41.7%(244건)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어 ▲대응 비판 13.0%(76건) ▲공감·연대 12.3%(72건) ▲사건 공시 11.5%(67건) 등으로 집계됐다. 

연구진은 “신문과 방송 보도에서 책임소재, 규명 프레임이 피해자 회복 프레임 또는 유족 관점 프레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며 “재난 당사자와 유족들이 재난 이후 어떻게 일상으로 복귀하고 사회가 재난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보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현장 기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초점집단면접(FGI)에 따르면 참사를 취재했던 기자들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종합편성채널 기자는 “이태원 참사는 직접 현장 취재를 하지 않고 사내에서 취재 보조를 한 것만으로도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었다”며 “계속 들어오는 제보 사진과 영상을 확인하면서 방송에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가능한 것은 블러를 치는 작업을 했는데 ‘생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2주기인 지난 10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인근 사고 현장에서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2주기인 지난 10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인근 사고 현장에서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연구진은 “재난 취재 후 기자들이 겪는 심리적 외상을 예방하고 관리하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취재 직후와 중장기적인 단계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기자들이 스스로 트라우마를 점검할 수 있도록 해야 기자들의 책임감 있는 보도가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를 위해 ▲재난보도 분석틀을 활용한 내용분석 ▲현장기자 대상 초점집단면접(FGI: Focus Group Interview) ▲언론학자 심층 인터뷰가 진행됐다. 연구결과는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 개정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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