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일부 언론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유가족 사진을 기계적으로 ‘모자이크’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 사용에 대한 재난보도준칙이 과도하게 적용된 경우로 참사의 진상 규명을 저해하는 자기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재단은 14일 서울 정동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10.29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본 재난보도준칙’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재난보도준칙을 세우면서 과거보다 언론인들이 보도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라면서 “이런 것이 너무 압박으로 작용해 언론인이 취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자기검열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는 점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방송뉴스에서 인격권에 대한 경각심이 많아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언론중재위원회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격권에 관한 제재가 많아져 방송사 스스로 문제될 소지가 있는 것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경향도 보인다"면서 "이제는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위축시키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보도준칙 제15조(선정적 보도 지양)는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하지 않아야 하고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제23조(과거 자료 사용자제)는 과거에 발생했던 유사한 사건 사고의 기사 사진, 영상, 음성 등을 사용한느 것은 해당 사고와 관련된 사람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고 불필요한 불안감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국내 언론이 기계적으로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첫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예로 들었다. 지난달 22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희생자 영정을 들고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철저한 책임규명을 촉구했다. 해당 기자회견을 보도한 언론 다수는 희생자 영정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김 교수는 “언론은 기자회견이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냥 모자이크 처리를 관행이나 기계적으로 했다는 생각이다. 피해자 사진 사용과 관련한 준칙이 왜 세워졌는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본다면 과도한 모자이크 처리 문제에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미국은 초상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무엇인지 명확해야지만 금지된다. 역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언론이 초상을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라며 “독일 초상권 사용의 기본 전제는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없다‘이지만 시사적인 영역에서의 사용은 예외로 두고 있다”고 전했다.

서수민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시각 매체는 어떤 게 선정적이고, 적절치 않은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참 어렵다”며 “참사 초기 모자이크한 사진을 사용해 국내 언론사들이 비난을 많이 받았지만, 오히려 외신은 모자이크를 안한 시신 사진도 많이 사용했다. 그만큼 독자의 감수성이 문화별로 다르기 때문에 준칙으로 확립되는 건 어렵다는 견해가 많이 있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한국의 경우, 소송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초상권과 관련해서 좀 더 엄격한 반면 미국은 편집인에게 권한이 굉장히 많다. 다만 편집인은 이미지를 쓸 때 원칙이 있다”면서 미국 사진기사 편집자들의 체크리스트를 소개했다. 해당 체크리스트는 ▲시각적 충격이 정당화될 사회적, 역사적 의의를 담고 있는가 ▲불편한 시각적 디테일이 사안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가 ▲피사체가 사진 취재에 동의할 상황인가 ▲사진에 휴머니티가 담겨 있는가 등을 묻고 있다.
서 교수는 2009년 아프카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 AP통신이 미군 병사의 사망 사진 사용을 결정한 사례를 거론하며 “오바마 정부는 AP통신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게재 철회를 요청했지만 내부의 격렬한 토론 끝에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서 교수는 “당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10년간 이어지는 상황이었고 미국 젊은이가 이렇게 죽어가는 모습도 역사의 일부여서 보여줘야 한다는 이유였다”며 “그 과정에서 굉장히 긴 토론이 있었다.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결과보다 언론, 정부, 유가족 간에 오랜 대화와 논의가 있었다는 점이 우리가 고민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의 본질적 사명에 대한 토론이 더 치열하게 이뤄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재난보도준칙’이 선제적으로 잘 지켜진 것 같다”면서 “다만 참사의 진상이 묻히는 부작용도 있었다. 김주열 열사의 눈에 박힌 최루탄 사진이 4.19를 촉발시켰고, 이한열 열사의 피 흘리는 사진 한 장이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는데 지금의 준칙대로라면 그런 사진은 게재조차 못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단독]보도 경쟁이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유진 경향신문 기자는 “세월호 때는 추가 사망자를 카운팅해서 단독으로 보도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그런 부분은 줄어든 것 같다”면서 “다만 책임규명 국면에서 수사 ‘단독’ 경쟁이 치열하다”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용산경찰서 정보과 계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그 분의 경우 피의자 신분이긴 했지만 언론에 굉장히 많이 노출됐다”며 “혐의점이나 수사 보도 속에서 굉장히 많이 언급됐는데, 결국 이분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참사가 없어야 하고 사망자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보도하는 것인데 수사상황에 대한 과도한 경쟁은 또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참사를 계기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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