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이해한다. 원안대로 단독개최 하고픈 평창 시민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몰려야 땅값이 더 오르고, 지방정부와 기업의 투자도 더 받을 수 있을 터다. 리(里) 단위의 작은 시골마을에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이곳에 드나든다면 지역경제에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창이 무려 세 번이나 도전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지역주민들도 ‘한몫 단단히 챙기는 사람들은 따로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메가 이벤트 개최에 반대할 지역주민들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세계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생각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다르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2013년 선거에 출마하면서부터 복수의 도시가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방안이 언급되기 시작했고, 그해 12월 IOC는 IOC 개혁과 올림픽 관련 정책을 바꿀 목적으로 이른바 ‘Agenda 2020’을 만들기 시작했다. IOC가 2014년 2월 14개의 실무협의단(working group)을 구성, 논의를 본격화한 아젠다2020은 일 년 가까운 논의를 거쳐 그해 11월 공개됐고, 한 달 뒤인 12월 만장일치로 총회를 통과했다.

내용은 분명하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아젠다2020은 “올림픽운동의 미래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올림픽 관련 20개, IOC 관련 20개 등 총 40개 아젠다”로 구성돼 있다. 핵심은 ‘분산개최’인데 기존 ‘1국가 1도시’ 개최 원칙 대신 ‘복수 도시 또는 복수 국가’ 개최가 가능하도록 했다. 녹색연합은 “(IOC가) 지리적 특이성, 지속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최도시를 벗어나 복수 도시에서 개최가 가능하도록 했다”며 “또 예외적인 경우 개최국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도 경기 종목 전체 또는 세부종목의 개최를 허용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녹색연합은 “이유는 간단하다”며 “1국가 1도시 만을 기본으로 개최하는 올림픽이 개최국과 개최도시에 재정악화, 환경훼손 등 막대한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녹색연합은 “이 상태로는 올림픽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IOC의 자구책인 셈”이라며 “실제로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신청 과정에서 독일 뮌헨과 스위스 생모리츠/다보스가 주민 반대로 유치를 포기했고, 노르웨이 오슬로도 유치 신청을 철회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근 한국에서 분산개최 여론이 높아지는 이유도 아젠다2020의 문제의식과 같다. 그 동안 메가 이벤트를 유치한 국가와 도시들은 경제효과를 부풀렸고, 실제 효과는 개최 직전 건설업 위주의 반짝 ‘붐’일 뿐이고, 오히려 개최 이후 대규모 인프라를 재활용하거나 관리하는 비용이 오히려 독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가 바로 지난해 치러진 인천아시안게임이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인천 조직위원회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인천은 올해부터 15년 동안 해마다 600억~1500억 원을 갚아야 한다. 경기장 건설을 위해 엄청난 빚을 냈기 때문이다.

▲ 2018년 강원도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로고.

하지만 정부는 아젠다2020을 적용해 분산개최를 하면 빚을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평창이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지난 2011년 7월이고 아젠다2020은 2년 뒤에야 구체화했기 때문에 이를 적용할 시간이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공정률이 낮은 경기장만 재배치하더라도 수천억 원의 혈세를 아낄 수 있다는 분석 결과는 최근의 것이다. 평창의 경우, 대회가 3년이나 남은 상황이기 때문에 충분히 계획을 수정할 수 있다. 한겨레가 최근 건축설계업체 두 곳과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를 보면, 아이스하키 피겨 쇼트트랙 활강 등 4종목만 분산개최를 하더라도 372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 해당 경기장은 3월 현재 공정률이 10% 이하이기 때문에 매몰비용과 함께 서울, 무주 등에 있는 기존 경기장 증·개축 비용을 모두 고려해도 분산개최가 이득이라는 이야기다.

IOC의 아젠다2020, 인천아시안게임의 교훈, 분산개최에 대한 여론에도 정부와 평창 조직위는 원안을 고집하고 있다. 특히 평창 조직위는 그 동안 아젠다2020의 논의 과정을 파악하고도 되레 IOC 핑계를 대며 단독개최를 고수해왔다. ‘평창동계올림픽분산개최를촉구하는시민모임(상임대표 고광헌)’에 따르면, 지난 19일 로버트 록스버그 IOC 대변인은 시민모임과 면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IOC 바흐 위원장은 2013년 7월 선거에 출마하면서부터 아젠다2020의 윤곽을 제시했으며, IOC는 2014년 내내 이 계획을 공개적으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진룡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IOC의 분산개최 논의가 공론화 된 지난해 4월 “분산 개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IOC가 아젠다2020의 세부내용을 논의하던 그해 6월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IOC 권고기준을 따르다 보니 공사비가 많이 증액됐다”며 재차 IOC 핑계를 댔다. 그해 9월 IOC가 분과위원회 별로 분산개최안을 논의하고 있을 때 강원도는 가리왕산 벌목공사를 시작했다. 아젠다2020을 주도한 바흐 IOC 위원장은 비슷한 시기 방한, 조양호 조직위원장 및 청와대를 만나기도 했다.

IOC 내에서도 개·폐막식장을 재배치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정부도 이를 확인했지만 최문순 도지사와 염동렬 새누리당 의원(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등은 잇따라 ‘원안 강행’ 발언을 쏟아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분산개최를 위해서는) IOC를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외국은 달랐다. 2020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일본 도쿄, 202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카자흐스탄 알마티는 IOC의 아젠다2020 논의과정에 맞춰 분산개최와 경기장 재배치를 고민했고 지난해부터 올해 초 계획을 확정했다. IOC 또한 이 결정을 환영한 사실을 고려하면 IOC 핑계를 대온 정부와 평창 조직위는 뭔가를 속였거나 아니면 속았다. 그리고 ‘정부와 평창 조직위가 단독개최를 강행을 원한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로버트 록스버그 IOC 대변인을 만나고 온 배보람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23일 <미디어스>와 만난 자리에서 “IOC 대변인에게 분산개최에 대한 입장과 함께 한국이 아젠다2020을 인지한 시점을 물었더니, 대변인은 ‘분산개최는 개최국에서 결정할 문제’로, 아젠다2020에 대해서는 ‘2014년 2월 모나코에서 열린 총회에서 공식화했으나 그 흐름은 이전부터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배보람 팀장은 “정부와 평창 조직위는 이 흐름을 인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렇지 않았다면 정부가 무능한 것이고, 인지했더라도 분산개최를 거부해온 것이라면 국민을 기만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평창 조직위와 정부가 아젠다2020 논의를 인지한 상황에서도 단독개최를 고수하고, 새정치민주연합 또한 분산개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 이유는 간명해 보인다. 정치적 계산, 바로 ‘표’ 때문으로 보인다. 평창 조직위는 5월 중 IOC에 경기장 사후활용방안을 제출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 부수겠다’고 하는 입장이다. 특히 개·폐막식 장소인 횡계리는 거주민이 4천명 뿐인데, 평창 조직위는 이곳에 6시간짜리 행사를 위해 1300억 원을 들여 행사를 진행하고 행사 이후 일부는 허물고 일부는 종합쇼핑몰을 입주시킬 계획이다.

이를 두고 정용철 서강대 교수는 “4천명을 설득 못하는 국가가 올림픽을 치를 수 있느냐”며 “이 장면은 정부와 국회가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 또한 “컨트롤타워와 리더십이 없고, 주민들과 지역정치인의 목소리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광헌 시민모임 대표는 “정부와 조직위가 나서, 아젠다2020을 적용하려 마음먹기만 했다면 불필요한 논쟁과 예산 낭비 없이 올림픽 진행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철 교수는 “면담을 통해, IOC는 분산개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이 아젠다2020임을 밝혔다”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리면 분산개최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들어 2~3%씩 공정률을 올리고 있는데, 공사가 진척되면 매몰비용이 많아져 분산개최를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우려했다. 최동호 평론가는 “IOC도 스포츠협회들도 선수들도 분산개최를 원하고 있는 만큼 평창 조직위가 시민모임의 정책제안에 하루 빨리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 입장은 완고하다. 정부는 지난 13일 이완구 국무총리 주재로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지원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더 이상 평창동계올림픽의 분산개최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 아직 할 수 있을 때인지도 모른다. 하루 빨리 정부와 조직위, 국회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강원지역 지자체의 재정적자는 점점 더 심각해진다. 강원지역은 이미 알펜시아 리조트로 1조 원의 적자를 떠안고 있다. 단독개최를 강행하면 인천의 실패를 더 크게 반복하는 꼴이 된다.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지자체들은 이미 수백억 원의 지방채를 발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지역 건설사와 재벌 대기업에게 흘러들어갈 돈이다. 재정적자가 커질 것은 빤하다. 적자를 메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평창을 위해 온 국민이 세금을 더 내거나, 강원도가 재정적자를 이유로 공공인프라를 민영화하는 것이다. 김진선 전 조직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분산개최를 하면) 군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단독개최 이후 복지 축소와 민영화에 가만히 있지 않을 시민들이 더 많다. 정부와 평창 조직위는 이제라도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다음은 평창올림픽분산개최시민모임 24일자 보도자료 전문

시민모임 IOC 면담 결과, 분산개최 가능성 여전히 열려 있어

- 한국 정부, IOC 아젠다 2020 논의 과정 파악하고도 국내에서는 IOC 핑계
- 2022년 알마티 동계올림픽, 2020 도쿄 올림픽 분산개최 추진하는 동안 평창만 불가
- 시민모임 서한으로 IOC 면담 성사, 한국정부·평창조직위 시민사회와 소통의 노력 없어

지난 19일, 평창동계올림픽분산개최를촉구하는시민모임(이하,시민모임)은 IOC 조정위원회 회의가 열린 강릉 샌드파인 리조트에서 IOC 대변인 로버트 록스버그(Robert Roxburgh, Head of Olympic Games Communications)와 아젠다 2020에 따른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와 관련 비공개 면담을 진행하였다.

시민모임은 이날 면담을 통해, IOC에서는 바흐 위원장이 선임 되는 시점부터 IOC 내부에서 아젠다 2020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음을 확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NOC(각국올림픽위원회), NGO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IOC 위원들이 참여하는 분과 논의가 진행되었음에 따라 한국정부가 이를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정황을 확인했다. 또한, 분산개최와 관련해서도 한국정부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결단만 있으면 IOC에서도 충분히 이를 수용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정부 아젠다 2020 논의 흐름 알면서도, IOC 핑계로 시설투자 요구

사실상 지난 2014년 내내 IOC 안에서 다양한 주체와 그룹이 참여하는 아젠다 2020논의가 진행되었는데 한국정부는 이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IOC 핑계를 대며 관련 예산 증액과 시설 투자를 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흐 위원장의 취임 직후, IOC 내부에서 아젠다 2020에 대한 발제를 시작으로 2014년 2월 IOC 총회를 통해 14개 워킹그룹을 개설하여 본격적인 올림픽 개혁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2월 정홍원총리가 바흐위원장을 면담하며, "(바흐위원장) 취임이후 IOC에 개혁과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 조직 내에 좋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안다"면서 "그런 분위기가 평창 대회에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발언한 정황을 봤을 때, 당시 정부는 아젠다 2020에 대한 논의 흐름을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IOC는 워킹그룹 개설 이후, 4월 각국올림픽위원회(NOC)뿐 아니라 NGO들에게도 올림픽 아젠다 2020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6월 워킹그룹별 세부논의 진행, IOC내 분과위원회 논의, 11월 IOC 집행위에서 초안 승인을 받은 후 12월 모나코 총회를 통해 아젠다 2020을 결의하였다.

대한체육회가 6월 두 임원을 IOC 생활위원회와 문화교육위원회 위원으로 선임하였고, 평창조직위원회는 곽영진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선임부위원장으로 선정하여 NOC(각국올림픽위원회)의 역할을 담당하게 한 것에서도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와 체육계 인사들은 IOC 분과위원회나, NOC를 통해 아젠다 2020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거나 이에 대한 흐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리어 평창조직위원회와 정치권에서는 IOC 핑계를 대며 경기장, 도로등 시설 확대를 요구했다. 새누리당 염동열의원은, 2014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논란이 되고 있던 개폐회식장과 관련하여 “IOC헌장에 호스트시티에서 개·폐막식을 개최토록 명시돼 있어 변경 자체가 불가능” 하다며 올림픽 시설 재배치를 둘러싼 문화체육관광부의 논의를 비난한바 있다. 최문순 도지사도 지난 6월 국회 평창지원특위 회의 과정에서 “IOC의 요구로 인해 사업비가 증가”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IOC 면담에 참석한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IOC가 워킹그룹등을 통해 아젠다 2020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와 조직위원회는 IOC가 시설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논리로 무리한 시설투자를 고집했다"?며 "이것은 한국 정부와 평창조직위의 무능이거나 국민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고광헌 시민모임 상임대표 역시, “사실상 한국정부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나서, 아젠다 2020을 평창동계올림픽에 적용하려 마음먹기만 했다면 불필요한 논쟁과 예산 낭비 없이 평창동계올림픽 진행이 가능했을 것”이라 발언했다.

2022년 알마티 동계, 2020도쿄하계 분산개최 진행, 평창도 가능해

정용철 서강대학교 교수는 “면담을 통해, IOC는 분산개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이 아젠다 2020임을 밝혔다”며,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리면 분산개최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정부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가리왕산 파괴, 강원도지방재정 파탄에도 불구하고 기존 안을 고수하며 무리수를 두는 동안 2022년 알마티 동계올림픽, 2020 도쿄올림픽이 분산개최를 제안 결정하여 IOC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음이 외신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도 결단만 내린다면, 아젠다 2020을 발표한 IOC가 이를 막아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IOC와 시민모임의 이번 면담은, 시민모임이 면담요구 서한을 발송한지 나흘만에 성사되었다. IOC가 개최국의 시민사회단체등의 의견을 듣는 동안, 한국 정부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는 자신들의 주장을 할 뿐 어떠한 소통의 노력도 없이 분산개최 불가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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